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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기서 살까? 병

우리들의 고질병

by 정민유


여행을 좋아하고 음식을 좋아하는 우리는 함께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다. 전국의 유명한 노포는 거의 다녀 봤을 정도로..

거의 1달에 한 번 정도는 다닌 것 같다. 둘 다 여행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자연에서 힐링을 해야 했다.

첫 여행에서부터 우리의 '여기서 살까? 병'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처음 여행을 갔던 곳은 강원도 정선, 태백.

보통 강원도는 속초나 강릉을 많이 가지, 정선, 태백은 흔하게 가지 않는 곳이다. 어쩌다 그곳으로 목적지를 정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벌써 3년 반전이어서...


처음 우리를 매료시켰던 곳은 태백이었다.

그땐 한참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8월이었는데 태백은 에어컨을 틀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선선했다.

물론 공기도 좋았고 산으로 둘러 쌓인 동네도 아늑하게 느껴졌다.

두 사람 마음속에 '여기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동시에 생겨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요일이어서 교회를 찾다가 갔던 교회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빨간 벽돌로 아담하게 지어진 곳이었는데 이미 태백이란 곳이 우리 마음에 쏘옥 들어와 버린 상태라 모든 게 다 완벽해 보였다.

우리 마음속엔 이미 거기서 살고 있는 우리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살 집을 마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담실은 작게 차려야 할까?

카페를 해 보는 건 어떨까?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로 가슴이 벅찼다.


서울로 돌아온 후 만나는 사람들에게

" 우리 강원도 가서 살 거예요" 라며 말을 하고 다녔다.

" 강원도 어디요?"

" 태백이요"

" 거기 겨울에 엄청 추워요"


헐... 여름에 안 더운 것만 생각했지 겨울에 엄청 춥다는 건 생각을 못했다.

참 해맑은 우리 부부는 " 너무 추운 건 싫지?'

" 나도 추운 건 싫어. 그럼 태백은 안 되겠다"

그리곤 태백에서 살겠다는 말은 쑥 들어갔다.


그 이후에 강릉에 여행을 갔을 때는

" 예전엔 몰랐는데 강릉이 참 좋네. 우리 강릉에서 살까?"

" 당신도 그렇게 느꼈어? 느낌이 참 좋지?"

돌아다니다 사천해변 앞에 빌라를 분양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 한 번 들어가 보자"

둘은 들어가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거실의 큰 창으로 사천해변이 앞마당인 것처럼 눈앞에 떡하니 펼쳐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사를 올 것처럼 둘 다 호들갑을 떨었다.

이 빌라는 마음속에서 한동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스윽 사라져 버렸다.


속초로 여행 갔을 때는 오피스텔을 구경 가서 곧 살 것처럼 얘기를 했다.

" 속초 오피스텔은 투자가치가 높아. 사놓으면 무조건 오를 거야"

대전에 여행을 갔을 땐 " 대전이 가깝고 좋겠어"

공주로 여행을 갔을 땐 " 계룡산 옆에 살면 세상 근심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아"

가는 곳마다 " 여기서 살까?"라고 말하고서는 서울에 들어오면 " 그래도 용산이 좋긴 좋다"라고 한다.


어쩜 그렇게 죽이 잘 맞는지 처음에 태백에 산다고 했을 때부터 가는 곳마다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둘이 똑같았다.

나중에 진짜 어디 가서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은 더 많이 다니자는 것에 합의를 한 상태다.

하지만 우리 여기서 살까? 병은 언제 또 도질지 모르는 잠재된 우리 부부의 고질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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