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용감한 심리상담사입니다

by 정민유


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용산역 앞 작은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상담사가 되었던 건 아니고요. 대학 졸업 후 24살에 결혼을 해서 22년 전업주부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40대 중반에 상담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10년 이상 마음이 아픈 분들을 만나며 그분들의 상처를 보듬고 새살이 돋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 어린 시절부터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하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찾아내는 걸 좋아했습니다. 게다가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소위 촉이 좋았던 거죠. 감추고 있던 마음을 내가 알아채서 얘기하면 남동생은 “어휴 무서워. 돗자리 깔아”라고 했던 기억도 납니다. 감수성도 예민하고 공감도 잘하는 게 좋기도 했지만 힘든 면도 많았습니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단체 관람으로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엄마가 없이 동생들을 돌보는 소년 가장의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영화가 끝나고 다들 돌아가는데 영화 중반부터 울기 시작한 난 계속 우느라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었죠. 사람 좋아하고 정 많고 눈물도 많았던 내가 심리상담사가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거였을지도 모릅니다.



심리학이라는 학문에 매력을 느끼고 교육심리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졸업하자마자 결혼했습니다. 결혼만 하면 행복할 거라는 환상을 가지고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선 거죠. 겁도 없이.

아이를 셋을 낳고 나름대로 극성 엄마처럼 양육에 전념했습니다. 그냥 나의 삶은 그렇게 흘러갈 거라 느꼈었는데.




40살 생일에 내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기독교 서적을 읽으며 내가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은 ‘상처 입은 영혼의 위로자’라는 확실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아이들만 키우며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기에 대학원에 간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한 대학원에서 운영하는 ‘상담 전문과정’을 알게 되었고 바로 등록하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뭐든 이거다 생각되면 바로 행동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상담 공부는 그야말로 나에겐 신세계로 느껴졌습니다. 나이가 들어 하는 공부는 꿀맛처럼 달다더니 정말 그랬습니다.

그 과정을 마치고 상담대학원에 들어가고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따고 모든 게 순조롭게 착착 이루어졌습니다.



자격증만 따면 취업이 바로 될 거라 예상했지만 경력단절녀에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40~50군데 계속 떨어졌지만 거기서 그냥 좌절하지 않고 잡초처럼 계속 지원한 결과 유명한 정신의학과 상담센터에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전업주부로 살 때 그렇게도 바라던 명함이 생긴 것입니다.


초보 상담사로서 좌충우돌하며 경력을 쌓아갔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 와도 얼마나 어렵게 취직이 되었는지 생각하며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4~5년의 세월이 흐른 후 어느 정도 상담사로서 자신감이 생겼을 때 문득 머리를 '탁' 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 맞다. 상담대학원에 들어오면서부터 난 심리상담 카페를 차리고 싶었지?”

향긋한 커피 향이 나고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고 자연스레 상담도 받을 수 있는 복합공간을 꿈꿨었다는 게 생각난 거죠.


그때 남자 친구를 만나고 4개월 정도 되었을 때여서 둘이 의기투합하여 구체적으로 그 꿈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남자 친구가 없었다면 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을 일이었죠. 그는 정신적으로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내가 불도저처럼 일을 추진해가는 스타일이라면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는 생각이 깊고 세심하게 챙기는 스타일이거든요.


일단 자리를 알아보는데 학창 시절 10년을 보냈던 나에게 고향 같은 용산 쪽으로 마음이 이끌렸습니다. 몇 군데 돌아다니다가 한 오피스텔 2층 상가를 들어간 순간 둘 다 '여기다!!'라는 느낌을 받았고 계약을 해버렸습니다. 통창을 통해 용산역이 보이는 구석진 자리에 있는 20평 남짓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는 동생을 통해 인테리어 하는 분을 소개받고 계약했습니다. 매일매일 인테리어가 진행됨에 따라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예쁜 공간이 하나, 둘 완성되어 갔습니다.


화이트톤으로 벽을 칠하고 아치형 중문을 만들었고 프렌치 스타일 타일을 붙여 바를 만들었습니다. 엔틱한 조명과 가구로 장식하자 완전 내 취향 저격이었습니다.

카페에 필요한 커피머신과 원두 선정, 커피잔과 주방용품을 구매하는 것 등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10월 초에 상담 카페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11월 25일 오픈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처음 결정하고 2달 만에 나의 꿈인 상담 카페가 눈앞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오픈 예배를 드리며 그곳이 주님이 함께하시는 치유의 공간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모든 과정 안에서 주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진하는 능력이다"라고 스카펙 박사님이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전진하는 것!

난 누구보다 용감한 사람이니까.’




막상 카페를 용감하게 오픈은 했지만, 마케팅에 대해 하나도 아는 게 없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죠. 사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상황이 많이 안 좋은 상태라 내가 상담 카페를 오픈한다는 얘기를 들은 분들은 대부분 다 말렸습니다. 하지만 한번 마음먹으면 해야 하는 성격이니 아무도 내 뜻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오픈을 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SNS 마케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랴부랴 블로그를 시작했고 인스타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겁 없이 자영업자의 길로 뛰어들었고 처음엔 의기양양하게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할인쿠폰을 만들어 돌리고 데이팅 앱에 소개하고 커플 상담도 했습니다. 예전 내담자들과 오픈 축하 파티도 했습니다. 꿈을 이루었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고 신이 났습니다.



다행히 처음엔 쿠폰 영향인지 카페 손님도 많았고 예전 내담자들의 상담 신청도 계속 있었고 카페에 왔다가 상담을 신청해서 하게 되는 내담자도 생겨났습니다.

"역시 심리상담 카페를 오픈하길 잘했어!!"

처음엔 바리스타가 있었으나 3개월 만에 그만두게 돼서 남편이 그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우린 그야말로 하루 종일 붙어 있었고 환상의 궁합이었죠. 손님이나 내담자들은 공간이 너무 예쁘다고 감탄하니 마음은 둥둥 풍선을 탄 느낌이었죠.


그런데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더니.

오픈하고 3개월 만에 코로나가 시작되었습니다. 거리두기로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심지어는 하루에 커피를 1잔 판 날도 있었습니다. 상담을 해서 번 돈으로 월세를 내고 나면 거의 남는 게 없었습니다. 섣부르게 시작한 걸 후회하는 마음도 들기 시작했습니다.


안 좋은 일은 겹쳐서 일어난다는 말이 있던가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개월 후에 암 수술을 하게 되는 상황까지 생겨버렸습니다. 남편의 극진한 간호로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잘 받고 건강은 빨리 회복했습니다. 남편은 낮에는 카페 운영을 하고 퇴근해서는 병실에 와서 나를 챙겨주고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하지만 1달 이상 상담을 쉬면서 월세 내기도 힘들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남편과도 카페 문제로 크게 다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지?‘


결국 1년 7개월 만에 카페를 접게 되었습니다. 카페 공간을 원상복구 하는 날 그 예쁘던 공간이 부서지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나의 꿈도 함께 사라지는 느낌이랄까요? 다행히 금전적으로 크게 손해를 보지는 않았습니다. 코로나 시국이었지만 권리금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나의 꿈이었던 상담 카페를 오픈하고 마음고생도 많이 했지만, 자영업자로서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들도 많이 했습니다. 상담 카페를 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경험들.

나의 지경이 넓어졌다는 것!! 돈 주고 살 수 없는 커다란 수업을 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때 열심히 했던 블로그 덕분에 지금도 내담자들이 꾸준히 상담에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나의 꿈을 이루어 보았다는 건 평생 여한이 없을 소중한 경험이었죠.

너무 좋아하는 커피와 음악과 대화하는 나만의 쿼렌시아.

심리상담사 샘 중에 심리상담 카페를 운영해보는 게 꿈이신 분들이 많습니다. 블로그에서 알게 된 몇몇 분들은 카페로 찾아와 만나기도 했습니다. 다들 대단하다며 부러워하셨습니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난 꿈을 이루어 보았기에 행복했습니다. 상담 카페를 오픈하려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난 똑같은 선택을 할 겁니다.



지금도 남편과 그곳을 그리워합니다.

우리 카페의 진하고 고소한 아메리카노도 마셔보고 싶고요. 카페에서 울리던 스테이시 켄트의 부드러운 재즈 선율도 듣고 싶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남편과 연애 초기에 둘이 함께 했던 그 공간에서의 예쁜 추억들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서 반짝거릴 것입니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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