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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지금 심리상담실에서는요
21화
좌충우돌 초보상담사의 기억
by
정민유
Feb 23. 2023
“선생님 차트를 여기다 놓으시면 어떡해요?”
제일 무서운 병원 데스크 실장님이 또 뭐라고 혼낸다.
“아…. 몰랐어요. 죄송해요.” (아.. 난
왜
맨날 실수하는지….)
“상담 스케줄표에 적어 놓으셔야죠. 몇 번을 말씀드렸는데요”
이번엔 20대 후반의 데스크 직원이다.
“네 꼭 잊지 않고 적을게요”
초등학교 학생이 선생님께 혼나듯 딸뻘의 직원에게 절절매며 야단을 맞는다.
오랜 경단녀 시절을 지나 50살에 시작된 직장생활. 내가 취직한 병원은 강남에서 꽤 유명한 정신의학과였다. 미녀 원장님도 매스컴에 많이 나오고 환자도 항상 많았다.
20년 넘게 전업주부로 살았기에 모든 게 얼떨떨하고 익숙지 않았다.
떳떳하게 명함이 있는 심리치료사가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차트 찾는 것, 스케줄표 적는 것, 상담일지 기록하는 것 등 해야 할 일들이 엄청났다. 그전에도 상담 일을 하긴 했지만, 병원에서 환자를 연계해 줘서 하는 상담은 훨씬 신경이 쓰였다.
" 선생님 어제 그 새로 온 환자가 상담사 바꿔달라고 하네요"
원장님과 협업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환자가 기분이 상하거나 불편하면 바로 원장님께 가서 얘기했다.
" 저 정신과에서 상담해요"
" 어떻게 들어가기 힘든 곳에 취직이 되었어요?"
일주일에 4번 출근하는 시간제 상담사였지만 직장이 생겼다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다.
새로 산 원피스를 입고 구두를 신고 출근할 때면 세상이 환해진 느낌이었다.
상담을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었다. 좋은 선생님이라는 얘기도 듣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불안도가 상당히 높았으리라.
그런 나를 지켜보던 센터장님이
“선생님 왜 그렇게 잘하려고 하세요?”라고 했다.
난 화들짝 놀라며 하지만 당황하는 티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당연히 잘하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티 났나?)
“그냥 편하게 하세요. 너무 애쓰시지 말고요”
나이 들어 너무 애쓰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던지 센터장님은 긴장을 풀어주려고 하셨으나 그 힘이 풀리기까지는 1~2년은 족히 걸린 듯하다.
게다가 이혼을 하며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된 거라서 병원 원장님과 다른 동료 상담 선생님들께는 이혼한 사실을 숨겼다. 뭔가를 숨기고 지내려면 죄지은 사람처럼 더 눈치를 보게 된다.
이혼한 게 죄도 아니고 면접할 때는 당당하게 아무렇지 않다고 밝혔으나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가 보다.
‘왜 굳이 그 사실을 밝히지 못했을까?
이혼녀라고 하면 불이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스스로 이혼녀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병원에서 뿐 아니라 대학원 동기 선생님들에게도 1~2명을 제외하고는 말하지 못했으니까….
그 사실을 밝히게 되기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연결된 환자들은 대부분 약을 먹고 상담까지 진행하는 분들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기존에 만났던 내담자들과는 좀 다를 것이라 느껴서 더 조심스러웠다. 그건 나의 잘못된 선입견이라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게 되었다.
잠이 안 와서, 면접을 보는데 떨려서, 연주를 하는데 불안해서 감기 걸려 내과 가서 약을 타먹듯 약을 먹는다는 걸...
병원 부설 센터에는 나까지 5명 정도의 상담 선생님이 계셨다. 대부분 병원 상담 경력만 4년~8년 정도 되신 분들이셨다. 그러니 나이는 내가 제일 많았지만, 상담 경력은 내가 제일 초보였다.
당연히 병원 상담은 처음이니 모르는 걸 당연히 물어봐야 하는데 서로 상담하느라 바쁘고 얼굴 볼 시간도 별로 없어서 혼자서 전전긍긍한 적도 많다. 그 공간이 안전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새로운 직장에서도 마음 붙일만한 사람이 없었다.
하루에 7~8명까지 상담을 하게 되는 날은 진짜 뇌가 쪼그라드는 느낌도 들고 안 그래도 디스크가 있는 목과 허리는 경직되고 통증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버텼는지 신기할 정도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극심한 통증으로 걷기도 힘들었던 때도 있었지만 나를 버티게 해 준 건 취직이 되지 않았던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그 당시‘나에게 상담할 내담자를 한 명만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했던 걸 떠올리면 일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힘 빼는 시간이 꼭 필요한가 보다.
심리상담카페를 오픈하려고 독립하기 전까지 4년 반을 묵묵히 일했다. 다양한 케이스의 내담자들을 많이 만나고 상담센터의 운영시스템도 배우고 힘든 만큼 값진 시간이었다. 그러는 동안 몸이 많이 망가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신과 심리치료사로 일한다는 자긍심이 힘든 시간의 훈장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일하면서 오는 성취감으로 행복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꿈이었던 심리상담카페를 오픈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전업주부가 커리어우먼으로 거듭나는 시간.
지금도 그 시절의 내가 대견하다.
“정민유선생님은 경력단절녀의 표본이에요”
원장님이 내게 자주 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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