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남자는 5살 때 옆집에 사는 남자아이였다. 우리 집과 걔네 집은 담벼락이 붙어 있었다. 햇살 좋은 어느 봄날 걔와 누나가 담을 넘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우린 알게 되었다. 그 아이와 난 동갑내기였다.
처음 본 순간부터 큰 키에 착하게 생긴 그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 걔도 그때만 해도 밝고 명랑했던 내가 좋았던가보다. 그 아이와 매일 만나 서로의 집을 오가며 함께 놀았다. 죽이 잘 맞는 커플이었다.
얼마나 좋았으면 매일 그 아이와 팔짱을 끼고 결혼한다며 "딴따따따"를 했다. 그러면 엄마들도 "고 녀석들 조숙하네" 하며 깔깔 웃었던 기억도 난다. 어린 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의 성품은 참 선하고 착했다. 결혼하고 싶을 만큼.
그 마음결이 지금도 느껴지는 걸 보니...
그 당시는 조기교육 같은 거 없던 시절이었으니 마음껏 뛰어노는 게 우리들의 일이었다.
동네에 나가면 또래친구들이 넘쳐났다.
숨바꼭질, 치기 장난, 다방구, 신발 뺏기, 땅따먹기, 색깔 찾기 등 놀 수 있는 놀이는 너무나 많았다.
내 인생에서 놀이를 통한 희열을 최고로 경험한 시간이었고 내 옆엔 항상 그 애가 있었다.
어느 날 한참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병원을 가자고 날 불렀었다.
난 병원을 가기도 무섭고 놀고도 싶어서 안 가겠다 고집을 피웠다. 그러자 그 아이는 나를 부드럽게 설득하며 "병원 다녀와서 또 놀자"라고 따뜻하게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동물모양의 설탕사탕을 사줬다. 그게 얼마나 내 마음을 안심시켜 주었는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이 난다.
이사 가기 전까지 매일 만나 놀았지만 한 번도 다툰 기억이 없다.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아마도 최초의 상실 경험이었으리라.
가슴이 미어지게 아팠다. 하지만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린 그때 단지 5살이었기에...
그 이후 "이사 가던 날"이라는 유행가를 들을 때마다 그 아이가 떠올랐다. 그 아이는 내 유년시절 마음껏 , 그것도 서로 똑같은양으로 좋아했던 사랑의 원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 초등학교 시절엔 같은 반 남자아이를 남몰래 짝사랑했고 중, 고등학교 땐 선생님들을 짝사랑했다. 짝사랑이긴 했지만 그 열정은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도 넘칠정도였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남자친구와 이런 사랑을 불태울 수 있을 거라 꿈꿨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성인이 된 이후 이런 존재를 만나지 못했다. 연애하고 싶은 욕구는 가득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섣부르게 한 첫 번째 결혼 이후엔 상황이 더 안 좋았다. 전남편은 날 사랑해 주긴커녕 밖으로 돌기 바빴고 날 귀찮아했다. 난 그런 남편에게 사랑을 갈구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결핍 때문에 더 목숨을 걸고 사랑받고 싶어 했으리라.
어느 날 "사랑중독"이라는 책을 읽으며 내가 사랑중독자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병적으로 사랑에 집착하는...
사랑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공허감으로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상태.
사랑을 받고 싶다는 건 생명만큼 강렬한 가장 원초적인 욕구라는 걸 알게 되면서 내 마음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구나...'
그러면서 사랑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면서 모든 것의 해답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이전 결혼생활에서 아주 기본적인 사랑을 받았더라면 이런 생각을 안 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전 결혼상활에선 이런 내 욕구는 채워질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걸 깨닫게 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난 진정한 사랑을 찾아 이혼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