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의 첫사랑의 그 아이와 이별을 하고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아이의 존재는 내 기억의 한 페이지에 고이 간직되었다. 그러나 별로 인식하며 살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아이의 이름은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서 잊히지 않았다.
밝고 명랑했던 난 동생들이 셋이나 생기면서 차츰차츰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아이로 변해갔다. 엄마의 사랑을 동생들에게 빼앗기고 무섭고 강압적인 아빠로 인해 주눅이 들고 사회불안증이 생겨버렸다.
급기야 사춘기가 되면서는 우울하고 거의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나를 엄마는 너무 답답해했고 못마땅해하셨다.
외모에 대한 자의식이 생기면서는 내가 너무 못생기게 느껴졌다. 미스코리아 엄마에 연예인 같은 여동생과 비교하니 평범한 모습인데도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꼈던 게 당연하리라.
하물며 고등학교 3년을 매일 붙어 다녔던 베프도 전교에서 제일 예쁜 아이였다. 하루는 반 친구 한 명이 나에게 와서 "넌 왜 맨날 예쁜 정희랑 다녀? 외모가 더 비교되게.." 라며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어보았다. 그때 내가 한 대답은 " 아무리 예뻐도 결국은 한 남자랑 결혼하는 건 똑같은데 모"였다.
나의 외모콤플렉스는 점점 골이 깊어졌다.
그래도 공부하는 것에 재미를 붙여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서 제일 좋은 여대에 입학했다. 아빠는 그런 날 자랑스러워하셨다.
대학에 와서 중학교 때 제일 친했던 친구를 만났다.
" 여름방학 때 기타 배우지 않을래?"
나도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그러겠노라 했다.
기타 레슨을 받은 지 2달 정도 되었을 때였다. 그 동창과 기타 선생님은 그전부터 아는 사이었는데 둘이서 대화를 하는데 " 영준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 어? 나 걔 아는데요. 어릴 때 옆집 살았었어요. 제 첫사랑이었었는데..."
설마 진짜 그 영준이가 첫사랑 영준일 거라는 생각도 할 새 없이 내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 진짜? " 선생님이 깜짝 놀랐다.
" 걔 어릴 때 동교동 살았었대죠?"
" 아마 그런 것 같긴 하다"
"걔네 아버지 군인이셨다고 했는데.." 어린 나이였는데 별 걸 다 기억하는 나.
" 맞아. 군인이셨어"
" 헉!! 진짜 영준이 맞나 봐요" 가슴이 뛰었다.
" 내가 영준이 오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영준이 잘 생기고 S대 다니는 모범생이야"
' 역시 녀석 잘 컸구나..'라고 생각하며 내심 흐뭇했다.
그 후로 몇 주가 흐른 뒤 기타를 연습하고 있는데
남학생 2명이 들어왔다. 키도 크고 외모도 반듯하고 딱 보기에도 모범생처럼 보였다.
' 혹시 쟤가 영준이 아닐까..?' 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걔네들을 보고 선생님이 놀라며
" 어? 영준이 왔네. 민유야 쟤가 영준이야"
눈을 들어 그 애를 쳐다보는 순간 아마도 내 얼굴은
불타듯 빨개졌을 거다. 곧바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부끄러워하는 나와는 달리 그 애는 스스럼없이 내게 말을 걸었다.
" 아.. 선생님께 얘기 들었어. 그런데 난 전혀 기억이 나질 않더라. 그래서 어머니께 여쭤보니 옆집에 나랑 동갑인 여자애가 있었다고 하시더라"
' 바보야 그걸 기억 못 하다니... 나랑 맨날 딴따따다 하고 놀았었잖아..'
실망과 부끄러움이 확 밀려왔다.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도 못 맞추고 앉아있었다.
" 집이 어디야?"
" 염곡동에 살아"
" 면목동?"
" 아니 면목동 아니고 염곡동"
" 아.. 그렇구나"
이게 우리가 나눈 대화의 전부다.
나의 아련했던 첫사랑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재회로 끝이 났다.
' 내가 그때 미모가 뛰어났었다면 그 애와 사귀게 되진 않았었을까?'
하지만 그런 영화 같은 일은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