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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에 참기름을 안 발랐다고?
4000원으로 누리는 만족스러운 한 끼
by
정민유
Sep 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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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김밥애자이다.
이 세상에 김밥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한 개 두 개 입 속으로 들어가서 사라질 때마다 아쉽다. 안다. 김밥 한 줄에 들어가는 밥양이 엄청나다는 걸. 밥 한 공기를 다 못 먹는 난데 김밥 한 줄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동네 마트 한쪽 구석에 김밥집이 생겼다. 마침 맛있는 김밥집이 없었던 터라 조그맣게 쓰여진 김밥이란 사인을 보고 반갑게 들어갔다.
처음엔 참치김밥, 치즈김밥, 크레미김밥 등 돌아가면서 먹어보았다.
질지도 꼬들하지도 않은 밥과 정성껏 조리된 각종 재료들이 잘 어우러진 꽤 맛있는 김밥이었다. 맛있지만 뭔가 2% 오버된 느낌이었다.
내가 원하는 맛은 초등학교 소풍날 싸가서 먹던 바로 그 김밥맛이었는데...
그러다 오리지널 김밥을 시켜봤다. 집에 와서 한 개를 먹었다. '오~뭔가 비슷하다.' 역시 기본 김밥이 더 맛있었다. 어릴 때 먹었던 익숙한 맛이었다. 그런데도 뭔가 아쉬웠다.
'왜일까?'
그때까지는 이유를 몰랐다.
오늘도 필라테스를 마치고 김밥집으로 향했다. 노란색의 배너가 보였다.
" 이 집 김밥은 꼭 먹어야 돼"라고 쓰여 있고 귀여운 캐릭터도 그려져 있었다. 음.. 그 문구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며 마트로 들어갔다.
이제는 10번 정도 갔더니 여자사장님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각종 재료들을 볶고 졸이는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저번에 먹고 제일 맛있다고 느꼈던 오리지널 김밥을 시켰다. 그리고 얼른 집에 와서 쿠킹포일을 열었다. 순간 왜 뭔가 아쉬웠었는지 이유를 알았다. 바로 참기름이 안 발라진 김밥이었다는 걸..
그걸 깨닫는 순간 참기름 병을 꺼내서 손가락에 참기름을 부어서 김밥의 몸통에 마사지하듯 정성껏 발랐다. 이제야 반짝반짝 기름진 익숙한 비주얼의 김밥이 자태를 드러내며 누워있었다.
'이제 한번 먹어볼까?'
잔뜩 기대를 하며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씹는 순간
"와~~ 바로 이 맛이야!!!"
100점 만점에 100점. 익숙하지만 너무 맛있는 완벽한 조합의 맛의 향연이 입속에서 번져갔다.
김과 밥, 계란, 단무지, 시금치, 당근, 우엉, 햄, 어묵의 맛이 어쩜 이렇게 잘 어우러지는지... 감탄하며 한 개, 두 개 먹다 보니 김밥은 금방 배속으로 순간이동해 버렸다. 그 결과 배는 포만감으로 가득했다.
단지 참기름을 발랐을 뿐인데...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삶에서도 이렇게 작은 차이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명품은 디테일이 다르다'라고 하지 않았나?
인생의 중년을 훌쩍 넘기는 시점에서 삶의 디테일을 바꿀 수 있는 것들이 뭐가 있을지...
다시 김밥 얘기로 돌아와서
4000원으로 이렇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다니
.
싸면서 영양가도 풍부하고 반찬도 필요 없는 음식이 있다는 게 새삼스레 감사하다.
갑자기 김밥의 유래가 궁금해지긴 했지만 검색하진 않았다.
요즘 프랜차이즈 김밥들은 내 입엔 너무 크고 맛도 자극적이다. 밥도 좀 딱딱한 느낌도 들고...
그래서 이 집 김밥을 1주일에 1~2번은 먹게 되나 보다. 역시나 기본에 충실한 맛을 만든다는 건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쉽지 않다.
정성껏 좋은 재료로 이렇게 맛있는 김밥을 만들어 주시는 사장님 부부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한 정오다.
" 사장님 날로 날로 번창해서 단독으로 김밥집 오픈하세요
.
그땐 참기름도 좀 발라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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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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