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브런치북
50대 신혼부부의 사랑법
13화
첫 시댁 방문에 '5광'한 예비 며느리
가족들의 환대
by
정민유
Feb 24. 2022
남편과 사귀고 처음 맞이하는 구정이었다.
그때까지 남편의 집안에 우리의 사귐을 알리지 않고 있었다
.
남편은 그때쯤엔 날 소개하고 싶었나 보다.
" 이번 구정 때는 함께 우리 집에 가자"
" 응... 근데 나 만나는 거 아셔?"
"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자기는 고스톱 연습이나 해둬. 우리 집은 명절 때만 연례행사처럼 고스톱을 쳐. 울 엄마는 자식들이 모여 고스톱 치는 걸 보는 게 제일 좋으시대"
" 난 고스톱 못 치는데.."
그때부터 남편의 스파르타식 고스톱 레슨이 시작되었다. 둘이서 식탁에 담요를 깔고 치기 시작했는데
난 너무 재미가 좋아서 거의 3~4시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쳤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새는 것 모르는...
"울 형수님도 처음 시집올 땐 못 쳤었는데 이젠 고수가 다 되었어"
"난 생초보인데 어떡하지?"
"괜찮아 내가 도와주면 되니까.."
(그런데 그날 나의 첫 고스톱은 내가 남편을 이겼다는 거)
시댁에 처음 방문하는 날!!
긴장되고 떨리고 어떤 분들 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날 마음에 안 들어하시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얌전한 원피스도 챙겨 입고
최대한 참한 여자의 이미지로...
'두근두근'
내 긴장된 표정을 본 남편은 " 괜찮아. 울식구들 다 조용하고 따뜻한 분들이셔. 당신 좋아할 테니까 걱정 마"
드디어 남편 집에 도착했다.
"나 오늘 오는 거 식구들이 아시지?"
"엄마한테 누구 한 명 데려갈 거라고 했으니 눈치채셨을 거야?"
"그렇게만 얘기했어? 여자 친구 데려가는 거라 생각 안 하시는 거 아니야?"
"아니야 울 엄마 눈치 빨라. 걱정 마"
(그건 남편의 오산이었다는 게 잠시 후 밝혀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모든 식구들이 일시 정지한 느낌이었다.
날 보며 '저 여자는 누구지?' 하는 표정들.
"누구시냐?"라고 묻는 어머니께
"같이 사는 여자야"라고 답하는 남편(못살아...)
그 순간 어머니는 너무 충격을 받으셨는지 소파에 펄썩 앉으시며 눈가가 촉촉해지셨다.
"아이고야.. 난 네가 누구 데려온다카길래 같이 일하는 사람 데려온다는 줄 알았다 아이가"
" 추석에 내가 뭘 같이 일하는 사람을 데려오겠슈?
척하면 척 눈치를 채셔야징"
남편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신이 났다.
아버지는 워낙 말씀이 없으신 분이신데 그냥 살짝 미소를 머금으신 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만 보고 계셨다
.
남편의 큰 형님은 " 어서 오세요. 너무 반가워요. 우리 홍이가 여자를 데려온 게 처음이라 다들 깜짝 놀라셨을 거예요. 잘 오셨어요"라며 활짝 웃으셨다.
어머님도 좀 진정을 하셨는지 밝은 표정이 되셨다.
아들이 데려온 여자니까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50살이 된 아들이 결혼할 생각이 없는지, 제대로 연애는 하는지, 물어보지도 못하시고 가슴 졸이며 기다리셨으리라.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귀는 여자라고 데려왔으니 어머니가 그렇게 놀라시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시끌벅적하게 신고식을 하고 모든 가족들의 시선은 막내아들이 데려 온 여자를 향해 반짝반짝 빛났다.
사실 궁금한 게 많으셨을 텐데 그런 궁금증보다
아들, 동생이 데려 온 여자이기 때문에 환대해 주시는 느낌에 내 긴장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역시 따뜻한 가족들 사이에서 커서 남편도 이렇게 따뜻한 거구나.'
드디어 기다리던 고스톱이 시작되었다.
남편의 큰형과 둘째 형의 형수님 그리고 나와 남편이 선수로 출전했다.
2~3판쯤 하고 분위기가 활기차졌을 때
광이 1~2개 들어오더니 5광을 해버린 거다.
남편은 자기가 한 것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난 어리둥절하면서도 엄청 신이 났다.
"평생 하기 힘든 게 5광이야. 나도 한 번도 못해봤어"
"나 잘한 거지?"
남편의 칭찬을 들은 예비 며느리감은 천진난만하게
우쭐거렸다.
그때쯤엔 이미 오래된 가족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 어머님은 정성껏 만든 음식을 차곡차곡 싸주셨다.
남편은 그 음식들을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히 집으로 데려왔다.
남편의 식구들과의 첫 대면에서
난 가족의 따뜻한 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분들의 환대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서 기쁨의 비눗방울이 퐁퐁 터지는 느낌이다.
keyword
남편
시댁
부부
Brunch Book
50대 신혼부부의 사랑법
11
50대 신혼부부의 못말리는 사랑법
12
나의 암수술 체험기
13
첫 시댁 방문에 '5광'한 예비 며느리
14
나는 황혼이혼을 했다.
15
울엄니 맛이랑 똑같아!!
50대 신혼부부의 사랑법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22화)
53
댓글
13
댓글
13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정민유
연애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심리상담사
직업
에세이스트
강릉이 좋아 아무 연고도 없는 강릉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강릉에서 노는 언니가 되었습니다. 중년 부부의 강릉살이를 씁니다.
구독자
892
제안하기
구독
이전 12화
나의 암수술 체험기
나는 황혼이혼을 했다.
다음 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