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댁 방문에 '5광'한 예비 며느리
가족들의 환대
남편과 사귀고 처음 맞이하는 구정이었다.
그때까지 남편의 집안에 우리의 사귐을 알리지 않고 있었다.
남편은 그때쯤엔 날 소개하고 싶었나 보다.
" 이번 구정 때는 함께 우리 집에 가자"
" 응... 근데 나 만나는 거 아셔?"
"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자기는 고스톱 연습이나 해둬. 우리 집은 명절 때만 연례행사처럼 고스톱을 쳐. 울 엄마는 자식들이 모여 고스톱 치는 걸 보는 게 제일 좋으시대"
" 난 고스톱 못 치는데.."
그때부터 남편의 스파르타식 고스톱 레슨이 시작되었다. 둘이서 식탁에 담요를 깔고 치기 시작했는데
난 너무 재미가 좋아서 거의 3~4시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쳤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새는 것 모르는...
"울 형수님도 처음 시집올 땐 못 쳤었는데 이젠 고수가 다 되었어"
"난 생초보인데 어떡하지?"
"괜찮아 내가 도와주면 되니까.."
(그런데 그날 나의 첫 고스톱은 내가 남편을 이겼다는 거)
시댁에 처음 방문하는 날!!
긴장되고 떨리고 어떤 분들 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날 마음에 안 들어하시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얌전한 원피스도 챙겨 입고 최대한 참한 여자의 이미지로...
'두근두근'
내 긴장된 표정을 본 남편은 " 괜찮아. 울식구들 다 조용하고 따뜻한 분들이셔. 당신 좋아할 테니까 걱정 마"
드디어 남편 집에 도착했다.
"나 오늘 오는 거 식구들이 아시지?"
"엄마한테 누구 한 명 데려갈 거라고 했으니 눈치채셨을 거야?"
"그렇게만 얘기했어? 여자 친구 데려가는 거라 생각 안 하시는 거 아니야?"
"아니야 울 엄마 눈치 빨라. 걱정 마"
(그건 남편의 오산이었다는 게 잠시 후 밝혀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모든 식구들이 일시 정지한 느낌이었다.
날 보며 '저 여자는 누구지?' 하는 표정들.
"누구시냐?"라고 묻는 어머니께
"같이 사는 여자야"라고 답하는 남편(못살아...)
그 순간 어머니는 너무 충격을 받으셨는지 소파에 펄썩 앉으시며 눈가가 촉촉해지셨다.
"아이고야.. 난 네가 누구 데려온다카길래 같이 일하는 사람 데려온다는 줄 알았다 아이가"
" 추석에 내가 뭘 같이 일하는 사람을 데려오겠슈?
척하면 척 눈치를 채셔야징"
남편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신이 났다.
아버지는 워낙 말씀이 없으신 분이신데 그냥 살짝 미소를 머금으신 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만 보고 계셨다.
남편의 큰 형님은 " 어서 오세요. 너무 반가워요. 우리 홍이가 여자를 데려온 게 처음이라 다들 깜짝 놀라셨을 거예요. 잘 오셨어요"라며 활짝 웃으셨다.
어머님도 좀 진정을 하셨는지 밝은 표정이 되셨다.
아들이 데려온 여자니까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50살이 된 아들이 결혼할 생각이 없는지, 제대로 연애는 하는지, 물어보지도 못하시고 가슴 졸이며 기다리셨으리라.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귀는 여자라고 데려왔으니 어머니가 그렇게 놀라시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시끌벅적하게 신고식을 하고 모든 가족들의 시선은 막내아들이 데려 온 여자를 향해 반짝반짝 빛났다.
사실 궁금한 게 많으셨을 텐데 그런 궁금증보다
아들, 동생이 데려 온 여자이기 때문에 환대해 주시는 느낌에 내 긴장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역시 따뜻한 가족들 사이에서 커서 남편도 이렇게 따뜻한 거구나.'
드디어 기다리던 고스톱이 시작되었다.
남편의 큰형과 둘째 형의 형수님 그리고 나와 남편이 선수로 출전했다.
2~3판쯤 하고 분위기가 활기차졌을 때
광이 1~2개 들어오더니 5광을 해버린 거다.
남편은 자기가 한 것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난 어리둥절하면서도 엄청 신이 났다.
"평생 하기 힘든 게 5광이야. 나도 한 번도 못해봤어"
"나 잘한 거지?"
남편의 칭찬을 들은 예비 며느리감은 천진난만하게
우쭐거렸다.
그때쯤엔 이미 오래된 가족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 어머님은 정성껏 만든 음식을 차곡차곡 싸주셨다.
남편은 그 음식들을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히 집으로 데려왔다.
남편의 식구들과의 첫 대면에서 난 가족의 따뜻한 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분들의 환대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서 기쁨의 비눗방울이 퐁퐁 터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