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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암수술 체험기

눈물 나게 고마운 사람

by 정민유


2018년 5월에 신장결석 수술을 했다.

혼자 입원을 했고 혼자 수술을 했고 혼자 퇴원을 했다.

이혼 후 혼자 살고 있을 때였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서 놀러 가는 마음으로 입원을 했고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실로 들어갔었다.


하지만 수술을 한 그날 밤 아무리 무통주사를 맞아도 참을 수 없을 만큼의 극심한 통증을 느꼈고 참다 참다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세상에 혼자인 것 같은 느낌.

뼛속 깊이 느껴지는 외로움.

가족들 중 면회를 온 사람은 여동생뿐.

그러면서 내가 아플 때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20년 5월 11일 암수술을 했다.

그땐 내 곁에 10개월 된 남자 친구가 있었다.

입원을 하는데 보호자를 적는 칸이 있는데 남자 친구라고 적기는 좀 그래서 남편이라고 적었다.

그로부터 5개월 뒤에 진짜 남편이 되었지만..


'암수술을 한다'라고 하면 두렵고 암울하고 무거운 느낌이 드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입원을 하고 수술하고 회복하는 시간 내내 남편과 함께 였기에 오히려 즐거웠다.

사실 입원할 때 간호 통합 병실에 있을지 결정해야 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난 누구 입원할 때 같이 자면서 간호해보고 싶었어" 하는 거다.

나도 그러길 은근히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진짜야? 그럼 보호자 있는 병실로 하자" 했다.

1주일의 입원생활 동안 내가 그렇게 바랬던 존재가 나와 함께 해준 것이다.

코로나 시기여서 다른 가족이나 친구 아무도 올 수 없었다.

만약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면 난 또 신장결석 수술을 할 때와 같이 뭐든 혼자였겠지..




암 진단을 받은이후 진료를 받고 입원을 하는 과정 속에서 남편은 한 번도 슬프거나 걱정하는 기색을 보인 적이 없다.

오히려 걱정하는 나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었다.


그런데 수술 당일 수술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남편이 휠체어에 앉아있는 내 맨발을 손으로 잡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아마 그동안 참고 있던 감정이 터져 나왔던 것이리라.

난 같이 슬프기보단 그렇게 우는 남편이 조금 귀여웠다.

"나 씩씩하게 수술 잘 받고 나올 테니 울지 말아요"

내가 그를 위로했다.



그리고 남편과 인사를 하고 나 혼자서 수술실 앞에 있었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이것이 내가 피해 갈 수 없는 시련이라면 당당히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첫째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게 해 주시고요.

두 번째 얼굴이 늙지 않게 해 주세요"


정말 수술 후 회복하고 나서 날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더 좋아지고 건강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방사선 치료만 하고 항암치료는 하지 않아서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다.

내 소원을 들어주신 거다.


수술실로 당당하게 입장해서 4시간 넘는 수술을 잘 마치고 나왔을 때 남편은 혼자 수술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내 수술실에 확진자 간호사가 들어왔었다고 한다.

그래도 난 확진되지 않았다.



입원생활 동안

수술하고 나왔을 때,

처음 죽을 먹을 때,

처음 걷기를 시도했을 때,

처음 밥을 먹을 때,

퇴원할 때 모든 순간을 남편은 동영상을 찍어서 기록을 남겼다.


마치 첫아기를 낳아 뒤집기를 처음 할 때, 이유식을 처음 먹을 때, 걸음마를 처음 할 때 동영상을 찍는 것처럼...

지금도 그때 찍은 동영상을 함께 보며 감격스러워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그러다가 결국엔 눈물이 나오고야 만다.


수술 후 가스가 나오길 기다리다가 내가 화장실에서 겨우겨우 방귀를 뀌고 문을 여니 문 앞에서 남편이 눈물을 글썽이며 서있었던 적도 있을 정도였으니...




퇴원 후 소변줄을 끼고 나왔는데 내가 화장실에 가서 빼내도 된다는데 굳이 남편은 대야를 들고 와서 소변을 빼내 줬다.

그 이후 방사선 치료를 3주 동안 받았는데 매일매일 함께 데리고 가주었다.

이 세상에서 이렇게 날 위해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어제 친한 선생님과 만나 대화를 하다 그때 일을 말하게 되었다.

"남편은 너무 고마운 사람이에요.

부모, 형제로부터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랑을 그 사람한테 받았어요.

암 수술할 때 내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주고 챙겨주고.. 죽을 때까지 난 고마워하며 살 거예요"

그 말을 하는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게요. 두 분은 정말 잘 만나신 것 같아요.

서로에게 귀인인가 봐요"

"맞아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인 것 같아요"


맞다. 남편은 내 인생의 축복 같은 선물이다.

내겐 눈물 나게 고마운 사람이다.

평생 애정결핍이었던 내 인생에서 받아볼 수 있을 거라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사랑을 준 사람.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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