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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Mar 06. 2024

굴솥밥 먹으러 서산 가려다 일산 간 이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


얼마 전 남편과 함께 TV를 보는데 밥이 나왔다.

" 와~나 굴솥밥 좋아하는데.. 먹고 싶다"

이렇게 말하는 나의 말을 남편은 항상 허투루 듣지 않고 마음에 간직한다. 그리고 전국에 밥을 하는 맛집을 검색했으리라.


"이번주 수요일에 스케줄 없지? 서산으로 굴솥밥 먹으러 가자."라는 남편.

" 아.. 그때 내가 먹고 싶다고 해서 검색한 거야?"

" 그럼 나는 당신이 먹고 싶다고 하면 무조건 먹으러 갈 거다." 요즘 말로 '서윗남'인 울 남편.


드디어 굴솥밥을 먹으러 가기로 한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여행 갈 마음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티맵으로 우리가 가려고 하는 식당을 검색해 보니 2시간 반이 걸린다고 했다.


' 왕복 5시간이네. 내 허리로는 힘들 수도 있겠다."

순간 걱정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하지만 날씨도 좋고 며칠 전부터 벼르고 있는 남편의 마음에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 씻으러 들어간 사이 난 얼른 고양이 털을 제거하기 위해 청소기를 돌렸다. 그리고 침대에 이불을 정리하려고 허리를 굽히는 순간

" 아아악" 오른쪽 옆구리 쪽이 찌릿하며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오른쪽 손으로 허리를 받치며 조심조심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핫팩을 켜서 허리 밑에 놨다.

'에휴.. 이 상태로 서산까지 가기는 글렀다.' 난 너무나 낙심이 되었다.


샤워를 하고 나온 남편을 보며

"여보  나 이불 정리하다가 허리를 삐끗했어. 서산까지는 못 갈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해서 울듯이 말했다.


" 괜찮다. 괜찮다. 많이 아프노?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니고?" 남편은 실망한 기색을 전혀 내비치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어제 밤늦도록 서산에 가면 여행할 곳을 찾아보았을 남편. 나보다 더 실망했을 텐데..


"뜨거운 핫팩하고 진통제 먹고 조금 기다려보자"

라고 말하는 내게 "그래 가까운 곳에 굴솥밥 있는지 한번 검색해 보라"라며 남편은 달래듯이 말했다.


검색해 보니 일산에 굴솥밥을 하는 곳이 있었다. 티맵으로 시간을 보니 35분 걸렸다.

" 여보 일산에 굴솥밥 하는 곳이 있네 여기 가볼까?"

"좋다. 한번 거기 가보자."

허리보호대까지 하고 조심스레 차에 앉았다.

리뷰가 좋긴 했지만 좋은 리뷰에 낚인 적이 많은 난 가면서 불안한 마음이 올라왔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도착해 보니 일산호수공원 쪽에 있는 식당이었는데 엄청 넓고 인테리어도 현대식으로 깔끔했다.

'제발 맛있어야 될 텐데...'

해물솥밥, 굴솥밥, 게딱지장솥밥, 간강게장솥밥등 메뉴가 다양했다.


우리는 굴솥밥과 간장게장솥밥을 주문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음식을 먹고 있는 손님들의 표정이 밝아 보여 조금 안심이 되었다.

드디어 음식이 나오고 굴솥밥에 간장을 비벼 김에 싸서 한입을 먹었다.

그 순간 남편과 난 웃음이 터졌다.

"맛있다." 굴의 향이 잘 배어있는 밥은 기대이상으로 맛있었다.


" 생각해 보니 아주 오래전에 나도 집에서 해물밥을 만들어 먹은 적이 있어. 밑에다 해물과 야채를 깔고 그 위에 쌀을 얹어서 밥을 했었어." 맛난 음식을 먹으며 기분이 좋아진 난 의기양양하게 남편에게 말했다.


허리만 삐끗하지 않았다면 굴밥을 먹는 긴 여행이 되었겠지만 그랬다면 안 그래도 아픈 허리가 더 안 좋아졌으려나?

서산 가려다 일산을 다녀와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상태가 나쁘지 않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 하루하루 소중히 여기며 더 사랑하며 살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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