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럽혀졌어요: 성폭력상담
성폭력 피해자 심리상담
상담 2~3회기쯤 발달력 검사를 진행한다.
첫 기억부터 시작해서 단계별로 가장 떠오르는 장면이나 인상적인 기억들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어린 시절 기억이 하나도 안 나신다는 분들이 계시다.
그러면 그 시기에 어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 있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성추행이나 성폭력은 여성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충격적인 이기 때문에 그 기억들을 지워버린 것이다.
"난 더럽혀졌어요"
"내가 걸레 같이 느껴져요"
"난 이제 매춘부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나 자신이 너무 수치스러워요"
이렇듯 자신의 자아정체감에 심한 상처를 받게 되고 그 이후의 삶 또한 고통스럽다.
거기다 더럽혀졌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되고 함부로 무분별한 성관계에 빠지기도 한다.
"00 씨 잘못이 아니에요. 00 씨는 피해자라고요"라고 말해주지만 그걸 받아들이기가 정말 쉽지 않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거나 더 나아가선
"나도 그 상황을 즐겼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성추행이나 성폭력으로도 성적인 자극을 받으면 몸이 반응을 하고 그 쾌감을 느낀 자신이 잘못되었던 거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왔지만 평생 그들이 겪는 대가는 너무나 가혹하다.
수경 씨는 어린 시절 친척 아저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그 상처 때문에 겉으로는 일부러 밝은 척 가장하며 살았지만 오랜 시간 깊은 우울증으로 힘들어했고 급기야는 자살사고가 심해져서 상담에 찾아왔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그녀는 예쁜 얼굴이었지만 얼굴에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평생 수치스러운 자아정체감과 싸우느라 그 고통이 얼굴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얘기를 엄마에게 했을 때 나를 째려보며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아라"했던 엄마의 태도가 더 견디기 힘든 상처였다고 했다.
보통 보호자로부터 2차 가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이게 내 잘못이구나'라는 생각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가해자가 오빠 거나 아버지일 경우 어머니가 피해를 당한 딸에게 비난하는 경우도 많다.
"네가 도발한 거 아니냐?"
이럴 경우엔 내담자가 받는 상처는 치명적이다.
"수경 씨 수경 씨는 성폭력의 피해자지 가해자가 아니잖아요. 수경 씨 잘못이 아니라고요."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에서는 그 순간 거부하지 못했던 내 잘못이라고 느껴져요.."
하며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그 사건을 당했을 당시 7살이라고 했죠? 7살 아이가 성인 남자에게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있었을 까요?"
"없었겠죠.."
" 수경 씨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성폭력의 피해자라고요"
" 음... 조금은 객관적으로 그 상황이 느껴지네요. 나는 너무 어린아이였어요. 진짜 나쁜 놈이네요. 그 사람을 지금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어요"
"그래요 그런 마음이 들 것 같아요"
"또 그런 어린아이가 충격적인 일을 당했는데 그 마음을 보듬어 주지 않고 방치했던 엄마도 너무 미워요!!"
"그런 엄마에게 뭐라고 말하고 싶은가요?"
"나는 엄마가 날 안아주고 괜찮아..라고 말해주길 바랬어요. 그런데 엄마는 오히려 내 잘못이라고 느끼게끔 했어요. 그런 엄마도 너무 미워요!!"
" 그래요. 나를 달래주지 못했던 엄마에 대한 분노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거예요. "
" 이 분노감을 미술로 그려보고 싶어요!!"
"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글이나 그림을 통해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는 건 아주 효과적이거든요"
상담을 하면서 성추행이나 성폭력 경험이 내 잘못이 아니고 난 피해를 당했다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2차 가해를 했던 대상에 대해 분노감을 표출하고 그런 상처를 가지고도 애를 쓰며 살았던 자신을 인정해주게 된다.
" 그런 상처를 가지고 어떻게 이런 성취를 하며 살 수 있었을까요?"
" 사실은 사람들이 나의 이런 비밀을 알까 봐 너무 불안하고 두려웠어요. 날 더러운 사람이라고 할까 봐서요. 그래서 내가 더 완벽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공부에 집중했던 걸까요?"
" 맞아요. 그래서 더 미친 듯이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 그렇게 힘든 상처를 가지고서도 이런 성취를 이뤄냈네요. 그런 자신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 좀 대단한 것 같긴 하네요."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수경 씨가 상담 과정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게 되어감을 느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간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가지고 우울증, 불안장애를 겪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용기 내어 상담을 와서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고 보고 싶지 않았던 기억들을 끄집어내서 상담을 하게 되면 그 상처가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히지 못하게 된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뭔지 이제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어요. 나 자신을 더 소중하게 대해줄 거예요"
" 그래요. 아주 좋네요"
그 말을 하는 수경 씨의 얼굴이 유난히 예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