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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왜 낡고 오래되고 촌스러운 것에 열광하는가?

용산 땡땡 거리 산책

by 정민유


난 젊은 시절엔 낡고 오래되고 촌스러운 건 질색이었다.

옷차림이건 물건이건 인테리어 건 촌스러운 건 용서가 안되던 시절이었다.


"미팅 나갔던 건 어떻게 되었어?"

"아... 그 사람? 엄청 촌스러웠어"

그럼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역사 과목도 너무 싫었고 음악도 국악이 나오면 깜짝 놀라며 채널을 돌려버렸다.

드라마도 사극은 절대 안 봤다.


물건도 조금 낡아지면 새것으로 바꾸고 싶어 했고 싫증도 엄청 빨리 느꼈었다.

어릴 때 한국으로 유학 온 일본 여자분이 우리 집에서 지낸 적이 있었는데 아주 닳고 닳은 조그만 지우개를 보여주며

"이거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쓰던 겁니다"라며 자랑을 하는 거다.

새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일본 학용품들이 얼마나 예쁜데.. 평생 같은 지우개를 쓰다니..'

그때 난 좀 신기한 사람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대학생 시절 이대 앞 카페들은 좀 더 모던하고 좀 더 세련되고 럭셔리하게 인테리어를 했고 새로운 곳이 생기면 무조건 가봐야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느꼈었다.


그런 풍조는 내가 30~40대까지 쭉 이어졌던 것 같다.

특히 강남 쪽에 새로운 음식점이 생기면 무조건 모임은 그런 곳에 예약을 해서 만났고 핫한 곳은 금방 또 새로운 곳이 생기면 소위 물이 갔다고 느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을지로가 힙지로로 뜨고 오래된 노포들이 SNS로 유명해지고 오래된 것일수록 특히 젊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분위기를 '좀 희한하다'라고 생각은 들었지만 그냥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오늘 아침 드라마 <나의 아저씨> 촬영지로 유명한 용산 철길 동네를 산책했다.


페인트가 벗겨진 벽,

울퉁불퉁한 바닥,

아무렇게나 집 앞에 놓여있는 화분들,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골목,

지금은 보기 힘든 황토색 대문.

오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풍경들.


예전의 나였으면 못 본 것처럼 재빨리 지나가 버렸을 풍경들.

하지만 그런 풍경들이 주는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감정 때문에 한참을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최첨단의 높은 건물들이 있는 용산역 근처에서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마치 시간여행을 온 듯한 동네가 나타난다.


60~70년대 느낌의 동네.

유치원, 국민학교 시절 고무줄놀이를 하고 피아노 교실을 다니던 익숙한 동네의 모습이다.

그런 동네의 모습을 보노라니 저만치 밀어놓았던

궁금증이 올라왔고 깊은 생각으로 빠져들어갔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오래되고 낡고 촌스러운 것에 열광하는 걸까?



그래서 레트로(복고주의)에 대해 검색을 해봤다.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흐름을 레트로(Retro)라고 하는데 레트로 경향은 최근 들어 더욱 확장되면서 뉴트로, 힙트로, 빈트로 등의 새로운 개념도 등장했다.


최고조의 복고주의 유행 속에 느림과 안정, 자연으로 회귀하고 본성으로 돌아가자는 의지가 낳은 레트로는 현대인들에게 위안이 되고 있으며
그들을 치유하고 있다.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고 각박해지고 정서가 메말라가는 시대이기에 그래도 낭만이 있었고 정이 있었던 시절을 회상하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거였구나...

삭막한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이 시골의 낭만과 정을 그리워해서 시골 살기가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보다.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오래된 동네, 투박하지만 정을 느낄 수 있는 음식, 촌스럽지만 점점 사라져 가는 물건, 또 그 시절을 그린 드라마에 열광하는 사람들.

<응답하라 1988>을 최애 드라마로 여기시는 분들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40대 후반 50, 60대 분들이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시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이 이런 것에 열광하는 건 왜지?


뉴트로라는 것은 레트로를 즐기는 젊은 세대(MZ)를 일컫는 말인데 이들에게 복고풍은 인생에서 처음 접하는 신상품 같다.


아하!!

이거였구나..

그래서 젊은 세대들이 이토록 레트로를 좋아하는 거구나!!

그들에게 옛것은 오히려 신선한 신상이라는 거지.


나도 요즘은 레트로 감성인 사람으로 변했다.

시골생활을 동경하고 자연이 좋고 오래되고 낡은 것들이 예뻐 보인다.

물론 남편 덕분에 3년 전부터 전국에 있는 오래된 노포들은 거의 다 다녀보았다.

나의 이런 변화들이 반갑고 소중하다.

그리고 이런 레트로의 유행이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용산구민으로서 용산 땡땡 거리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사라지지 않았으면...

그래서 우리 후손들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이런 동네에서 크고 자랐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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