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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순이가 빵에게 이별을 고하다.

정제 탄수화물 중독

by 정민유


'바삭!!'

이 소리는 아침에 일어나 갓 구운 식빵에 버터를 발라 한 입 베어 먹는 소리입니다.


나에게 이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확행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먹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였는지 내가 빵을 먹는 걸 탐탁지 않아하는 남편도 차마 먹지 말라는 말을 못 할 정도였다니..


어린 시절 얼마나 빵을 좋아했으면 빵집에 시집가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하물며 집에 엄마가 없고, 빵도 없고, 돈도 없으면 난 너무 먹고 싶어서 거의 울다시피 할 정도였다.

국민학교 시절 한참 클 나이인 5~6학년 땐 도시락을 먹자마자 바로 매점으로 달려가서 빵과 우유를 사 먹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디를 가야 하면 가방 속에 비상식량인 빵이 들어 있었다.

대학시절 점심시간에 밥은 안 먹고 식빵을 친구들과 뜯어먹으며 다이어트하는 거라고 했다.

살을 빼야겠다고는 했지만 빵이 살을 찌게 하는 주범이란 걸 몰랐던 거다.


결혼을 하고 큰애를 임신했을 때는 다이어트 걱정이 없이 정제 탄수화물, 그러니까 빵, 과자, 떡 등을 쉴 새 없이 먹었다.

그래서 몸무게가 30kg 이상 늘었었다.

의사 선생님이 아기는 정상체중인데 엄마만 살이 너무 쪘다고 약간의 질책 어린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오랜 시간 정제탄수화물 중독자였다!!



이런 나도 빵을 끊었던 적이 있다.

40대 중반에 헬스장에 가서 PT를 받을 때였다.

선생님이 살을 빼려면 식이조절도 꼭 해야 한다고 했다.


"아침에 한 번만 식빵을 먹으면 안 될까요..?"

"안 되는데요"

"잡곡식빵으로 먹을게요"

"꼭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안 드시는 게 좋아요"

아싸!! 내가 이겼다!!

그런데 헬스를 2~3개월 하면서 몸 만드는 재미에 빠진 난 결국 빵을 끊고 다이어트 식단을 하게 되었다.



그때의 몸은 내 인생 최고였다.

안 빠지던 허벅지 살도 빠지고 배에는 세로 복근이 나타났다.

꽤 오랫동안 그런 몸을 유지하며 살았다.

자신감이 넘쳤고 체력도 좋아졌다.

10개도 못하던 스쿼트를 100개나 너끈히 할 수 있게 되었다.

30분도 못 걷던 사람이 2~3시간을 걸어도 멀쩡했다.


이런 경험이 있기에 폭식증 상담을 하게 되었을 때 내담자의 마음이 너무 잘 느껴졌었다.

폭식증은 대부분 정제탄수화물 중독이었기에..


하지만 습관이란 건 다시 예전 패턴으로 돌아가게 만드나 보다.

다시 아침을 빵과 우유로..

하물며 암수술을 하고 나서 아침식사였던 빵과 우유를 잠시 끊었지만 슬그머니 또 먹기 시작한 거다.




최근에는 아침뿐 아니라 중간에 간식도 빵으로, 수시로 과자도 당겼고 식사를 하면 달달한 케이크의 유혹도 뿌리치기 힘들어졌다.

그러니 당연히 몸은 점점 빵을 닮아 빵빵해져 갔다.

뭔가에 홀리듯 빵집으로 가는 날 발견하고는

'이거 완전 중독이구나!! 폭식증까지는 아니지만 정제탄수화물 중독은 확실해'

그 모습이 마치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찾아 헤매는 모습 같았다.

'그래 밀가루를 끊어보자' 결심했다.


2~3일간 금단현상인 듯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뭔가 빵을 먹고 싶어 하는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식욕도 조절이 되고 미각이 살아나고 야채가 맛있어졌다.




"여보 우리 두부랑 배추랑 시금치 살까?"

" 이제 됐네 두부랑 배추 얘기 나오면 된 거야.

이제 걱정 없다"

식생활을 완전히 바꾼 날 누구보다 환영해 준건 남편이었다.

아침마다 빵을 먹는 나를 따라 자기도 같이 먹어보려 시도했지만 도저히 안되더란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 그동안 정제탄수화물 중독이었던 것 같아.

이젠 건강한 음식 먹고 더 건강해질 거야"


이제 밀가루를 끊은 지 5일 차.

중독물질이라 생각하니 빵을 봐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

금단현상도 없어지고 몸무게도 3kg이나 빠졌다.

6000 보이상 걷기도 2개월째 숙제하듯이 열심히 하고 있다.

몸이 기뻐하는 게 느껴진다.


"빵들아 이제 너희들과 헤어질 때가 된 것 같다.

너 없이도 나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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