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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Sep 29. 2022

세상이 만들어놓은 과녁에 겨냥할 필요는 없잖아

핀쿠션

  이제 쉴 만큼 쉬었나 보다. 다시 경제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접어뒀던 본업에 대한 감을 살려보겠다며 전공 관련 서적을 오랜만에 펼쳤다. 이왕이면 공부하면서 자격증을 하나 손에 쥐면 좋을 것 같아서, 데이터 분석 전문가(ADP) 수험서를 샀다. 오랜만에 익숙한 용어와 개념을 보니 반가웠다. 이 정도쯤이야 지난 세월 동안 수도 없이 많이 듣고 써먹었던 내용이니까, 당장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필기시험도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1단원 학습을 끝내고 기출문제를 풀어봤다. 좀 전까지 넘치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좌절감만 남았다.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했다. 문제 중에는 특정 용어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세미나의 개최 연도를 묻는 질문도 있었다. 해당 기법이 사용되던 시기가 대략 언제쯤인지, 그 배경과 흐름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확히 그게 1975년인지, 1980년인지를 꼭 알아야 하는 걸까?


  아이들 대학 입시에서나, 전문가 양성을 위한 자격증 시험에서 누군가는 떨어트려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만들어내는 문제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 심지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있는 빅데이터 분야에서 이 정도 수준으로 문제를 만들어내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다. 물론 학문의 본질을 묻는 질문도 많았다. 중간중간 함정이 될만한 문제를 섞어둔 건데, 꼭 이렇게 수준 낮은 방법으로 시험의 난이도를 높여야 하나 싶어서 씁쓸했다.


  답답한 내 마음에 쏙 들어온 공자님의 말씀이 있었다.



  활쏘기에서는 과녁 가죽을
뚫는 일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논어> 제 3편 16절 문장이다. 활쏘기를 해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 활을 쏘는데 어떤 수양 덕목이 요구되는지 잘 모르겠다. 만약 지금부터 내가 활을 쏘아야 한다면 무슨 준비를 해야 할까 잠시 생각해봤다.


  과녁판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

  왜 저 위치에 놓여있는지,

  과녁판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누구를 위한 화살인지,

  활쏘기를 누구와 함께 해야 할지,

  내가 지금 활시위를 당길 적당한 타이밍인지,

  정중앙이 아니라 다른 곳에 화살을 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


  활시위 하나를 당기기 전에 고민해봐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여러 가지 이유와 정황을 살피지 않고 무작정 빠른 속도로 화살을 과녁에 맞히려고만 한다면 어떨까? 어느 순간 구멍 뚫린 과녁을 보며 허무해지거나 후회스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과거의 내 삶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폭넓게,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시야를 좁혀 과녁 정중앙만 바라봤다. 남들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점하고 싶어서 빨리 활시위를 손에서 놔버렸다. 성급하고 생각이 짧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가끔은 미워지기도 한다.


  지금이라도 조준점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고 싶다. 이왕이면 과녁판을 나 스스로 직접 만들고 싶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목표점에 더 빠르고 정확하게 화살을 쏘기 위해 스킬을 연마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얻기 위한 활쏘기인지, 내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야 할지 시간을 갖고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다.


  다행히 나의 활쏘기 마당에는 외롭지 않게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다. 나의 성장 메이트들은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획일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여유를 갖고 나만의 과녁을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떤 모양의 과녁을 만들어야 할지, 목표지점은 꼭 한 군데여야만 하는지, 과녁판을 어느 방향에 놓아둘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활쏘기를 즐길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어제도 나의 성장 메이트 몇 분을 만나 긍정 에너지를 잔뜩 받고 돌아왔다. 지금의 이 기운이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마음으로 부적 같은 꽃 사진을 한 장 꺼내본다. 바늘꽂이를 닮은 핀쿠션이다. 사방에 저마다의 위치를 잡고 있는 다홍색 핀 모양 수술이 하나하나 모두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각자 서있는 자리는 다르지만 핀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전부 다 구의 중심이다. 바로 ‘행복’이라는 지점을 향하고 있는 게 아닐까?


  오묘하고 화려한 매력을 풍기는 열대식물, 핀쿠션의 꽃말‘어디에서나 성공을’이라고 한다. 누구나, 어디에서나 성공을 이루고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에는 다양한 과녁판이 존재할 것이다. 나도 나만의 과녁을 만들고, 나의 활쏘기 마당에 좋아하는 이들을 초대하기 위해 오늘도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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