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로리나 Oct 10. 2022

나비바늘꽃처럼 살고 싶다.

가우라

  예전에는 꽃집에서 파는 꽃이 좋았다. (물론 여전히 좋다 ㅎㅎ) 꽃집에서 파는 꽃들은 대체로 화형이 크고, 보는 순간 무슨 꽃인지 확실히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테이블 위에 잘 어레인지 해두면 세련된 분위기를 집안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운 좋게도 회사 근처에는 저렴하게 싱싱한 꽃을 살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퇴근길이나 점심시간이면 참새 방앗간처럼 들려서 꽃구경하고 한 다발씩 품에 안고 오곤 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일까? 시간적 여유가 늘어서일까? 더 멀리까지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조급함을 내려두고 천천히 주위를 거닐다 보니 계절마다 동네 길가에 피는 꽃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무슨 꽃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지만,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져서 계절 특유의 색을 자아내는 게 참 좋다. 꽃으로 계절을 기억할 수 있도록 철마다 찾아오는 꽃들이 반갑다.


  요즘 산책 나갈 때마다 내 눈에 들어오는 꽃이 있다. 가을바람에 한들한들 거리는 가우라(Gaura)이다. 초여름부터 보이기 시작했는데 완연한 가을이 된 지금까지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통은 한 계절을 꽉 채우지 못하고 꽃이 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가우라가 여름부터 가을까지 두 계절을 꿋꿋하게 견뎌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해준 것도 없으면서 내 마음이 흐뭇하다.


  가우라의 여리여리한 꽃잎 끝에는 바늘처럼 가는 꽃술이 여럿 달렸다.  모습이 날아다니는 나비를 연상케 하다 보니 ‘나비바늘꽃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춤추는 나비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한자어 이름이  있다. 하얀 꽃은 백접초, 붉은 꽃은 홍접초라고 한다. 여러 이름   마음에  드는 건 순우리말 이름인 나비바늘꽃이다.


  가을바람에 살랑이는 나비바늘꽃의 꽃잎은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발레리나와도 닮았다. 발레리나들은 하나도 힘들지 않은 듯 사뿐사뿐 춤 동작을 취한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여리여리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 클로즈업된 발레리나의 팔과 등 근육을 보고 화들짝 놀란 기억이 있다. 여자 무용수들의 몸은 대리석 조각처럼 매끄럽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가느다란 팔다리는 탄탄한 잔근육으로 이루어진 밀도 높은 근육의 집합체였다. 마냥 신기했다. 그렇지만 나와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니까 감탄하는 것도 잠시였을 뿐,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넘겼다.


  3년 전쯤이었다. 나도 이제 살기 위해서라도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현관문 앞에 붙은 성인 취미 발레 수업 홍보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왕에 운동을 할 거라면 평생 로망이었던 발레를 한번 배워볼까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발레 클래스 수강이 어느덧 만 3년을 채워가고 있다. 그 사이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내 몸에 지방과 수분 함량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게 됐다. 근육 없이 발레 동작을 따라 하려니 매 수업 시간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사실은 발레리나의 가벼운 몸짓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힘이 들어가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발레리나들의 움직임이 다르게 보였다. 그들은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은 가뿐한 몸짓으로 보는 관객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지는 않을까, 힘이 없어 주저앉지는 않을까 걱정하게 하는 무용수는 무대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이다. 무대 위에서 그들은 힘들지 않은 척 하지만 알고 보면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끌어모아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내부는 강한 힘으로 꽉 들어차 있어서 그 모습이 더 우아하고 아름다워 보이나 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겉보기에 요란하지 않고 잔잔해 보이지만, 속 안은 내공으로 꽉 들어찬 사람. 쉽사리 주저앉지 않는 날갯짓으로 오랜 시간 동안, 계절을 거듭해서 제 자리를 지키는 나비바늘꽃처럼 살고 싶다.


  이제 날씨가 쌀쌀해지면 아쉽게도 나비바늘꽃과 잠시 이별을 하게 된다. 다음 해 초여름에 다시 만날을 때는 나도 꽃들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그래서 더 반갑게 인사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 근육을 더 탄탄하게 다져두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이 만들어놓은 과녁에 겨냥할 필요는 없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