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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Oct 20. 2022

우리 아빠는 기도하는 가을 여인

층꽃나무

  오늘도 친정아빠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신다. 칠순이 넘어 이제는 자식 걱정을 내려놓으실 때도 됐는데, 오늘도 딸내미 차 점검을 위해 바쁘게 집을 나서신다. 이제 내 차는 내가 알아서 관리할 때가 된 것 같다. 하지만 가끔씩 차에 이상 징조가 보이면 나는 제일 먼저 아빠한테 전화를 걸게 된다. 새로운 물건 조립부터 고장 난 물건 수리까지 아빠의 손을 거치면 뭐든 뚝딱 완성됐다. 일명 ‘우리 집 맥가이버’라고 불리는 우리 아빠는 반짝이는 금손을 두 팔에 달고 계신다.


  금손 아빠는 우리 딸에게도 세상 가장 든든한 보호자이자, 애틋한 친구 같은 분이시다. 신혼 때부터 친정 근처에 집을 얻어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출산 후에 친정 부모님께서 아이를 돌봐주셨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아빠는 출근시간 우리 집 앞에 미리 차를 끌고 나와계셨다. 손녀딸 감기 걸릴까 봐 걱정되시는지 차를 따뜻하게 데워두시고, 아이 옷에 바람 들어가는 구멍은 없는지 두 손으로 꼼꼼하게 확인하셨다. 친정집은 우리 집보다 더 아이가 놀기 좋은 환경이었다. 행여라도 아이 다칠만한 것이 있으면 눈에 보이는 즉시 위치를 바꾸고 손질해두셨다. 부지런하고 손끝 재간이 좋은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시는 오므라이스는 아이의 최애 메뉴다. 갖은 채소를 잘게 다져 밥을 볶고 그 위에 계란옷을 덮어주신다. 계란 옷 위에는 빨간 케첩으로 하트를 예쁘게 그리고 아이 이름까지 써주신다. 할아버지의 정성스러운 손길에 자란 아이는 아플 때면 할아버지한테 연락해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심심할 때도 할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수다를 떨곤 한다.


  지난주는 돌아가신 엄마 생신날이었다. 아빠와 함께 엄마가 계신 곳을 찾았다. 평소 같으면 손주들을 양 옆에 데리고 가는데 이날은 평일이라 나랑 단둘 이만 갔다. 그래서 아빠의 억눌렸던 감정이 증폭되었을까? 엄마한테 생일 축하 노래를 조용히 불러주시다 말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모은 아빠의 두 손이 이 날따라 연약해 보였다. 매일 무덤덤하게 잘 지내고 계시는 것 같았는데 아닌가 보다. 많이 외롭고 허전하신 모양이다. 보통은 납골당에 걸린 엄마 사진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는데, 이날은 쓸쓸한 아빠의 모습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엄마를 보고 돌아오는 길, 아빠는 점심 약속이 있으시다고 하셨다. 근처 지하철역에 나를 내려주시면 알아서 집에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빠는 갑자기 백화점 앞에 나를 내려주셨다. 집에 바로 들어가지 말고, 아이쇼핑이라도 하면서 기분 전환하고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 상태로 나만 혼자 집에 들여보내기가 마음이 쓰이셨나 보다. 아빠한테 등 떠밀려 가듯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화려한 조명에 반짝이는 새 옷을 구경하는 게 어색하기도 했지만 두 눈은 즐거웠다. 갑자기 핸드폰 진동이 느껴진다. 친정아빠였다.


  “구경하고 있니? 그러지 말고, 아빠 친구랑 셋이 같이 초밥 먹을래? 초밥집에 왔는데 이 집 맛있어 보여.”


  나이가 마흔이 넘은 딸이어도 식사 시간에 밥 굶기는 게 싫고, 자식 외롭게 하는 건 싫은 게 부모 마음인가 보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내게 하신 말씀이 얼른 가서 밥 먹고 오라는 이야기였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순간까지도 내 새끼 밥 먹일 걱정을 하는 부모의 마음에 죄송하고 동시에 감사했다.


  팔십 넘은 할머니가 돼도 환갑 된 아들이 집 나갈 때면 차조심하라고 하신다더니…. 자식을 향한 걱정과 고민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끝나지 않나 보다. 자고 있는 신생아를 볼 때면 숨은 잘 쉬고 있나, 배변 상태는 양호한가 매일 점검했다. 아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자 어디 부딪히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뒤를 따라다녔다. 또래보다 걸음마나 말하는 게 조금 늦어진다 싶으면 혹시 무슨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어린이집에 가서 엄마 찾지 않고 잘 노는지, 학교 가서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는지,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이다음에 내 자식은 어떻게 밥 벌어먹고 살지…. 아이가 클수록 걱정의 모양이 조금씩 바뀌기만 할 뿐, 걱정의 시간은 좀처럼 끝나질 않는다.


 이런 부모의 인생을  닮은 꽃이 있다. 바로 층꽃나무이다. 깨알 같은 자잘한 꽃망울이 층마다 옹기종기 모여있다. 제일 아래층에 있는 꽃부터 피어나기 시작한다.  층의 꽃이  피고 나면  위층 꽃이 핀다. 서툰 손길로 유아기의 아이를 키우고 나면, 학부모가 되어 자녀 교육에 신경 쓰고, 자식이 성인이 되어도 곁에서 챙겨주고 사랑을 부어주는 부모의 과정을 보여주는  같다. 여름날 피는 야생화 종류인 층꽃나무 척박한 곳에서도  자란다고 한다. 자식 키우다 보면 별의별 일을  겪게 되는데,  힘든 과정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내는 것까지도 부모와 닮았다.


  한 고비 넘기고 나면 또 그다음 과제가 기다리고 있는 게 자녀 교육이다. 이 과정을 불평하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곁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부모다.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하는 부모의 노력은 위대하다. 그래서 기도하는 그 모습 뒤에는 후광이 비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층꽃나무 꽃이 피면 잔잔한 꽃잎 가운데 가늘고 긴 암술과 수술이 솜털처럼 올라온다. 햇살이 비치면 자잘한 솜털이 빛에 반짝인다. 숭고한 부모의 사랑이 빛나는 순간처럼 말이다.


  시간을 인내하며 층마다 꽃을 피워내서 그런지, 층꽃나무의 꽃말은 기도하는 가을 여인이다.  자식의 삶이 평온하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조용히 기도하는 부모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에게는 기도하는 가을 여인이 바로 우리 아빠다. 친정엄마가  계시는 허전함을 채워주시려고, 할머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주시려고 오늘도 매일 딸과 손녀를 위해 애쓰시는 우리 아빠. 부성애에 모성애까지 더해 두배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아빠가 계셔서 오늘도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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