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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Jan 26. 2023

친정엄마는 무슨 음식을 좋아하셨을까?

매생이국

  ‘내일은 또 뭘 해 먹어야 할까?’


  요즘 나의 고민거리는 한결같다. 아이 방학과 함께 시작된 삼시 세 끼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매일 밥상을 차려내면서 희한하게도 메뉴 선정은 내 식성이 아닌, 아이의 식성에 맞춰 결정하게 된다. 어쩌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준비한 날이면 아이의 반응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밥상 앞에 앉아서 깨작거리고 있는 아이를 보면 아휴 한숨이 나온다. 그러고 나면 다음 끼니는 역시나 또다시 아이가 잘 먹는 반찬을 준비하게 되는 게 엄마 마음이다.


  이런 이유로 몇 년째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있다. 찬바람 부는 겨울이면 꼭 한 번씩 생각나는 추억의 메뉴, 매생이국이다. 친정엄마는 매생이국을 겨울이면 한두 번씩 꼭 끓여주셨다. 바다의 우유라고 할 만큼 영양가 있는 굴도 꼭 함께 넣어서 끓여주셨다. 향긋한 바다내음이 나는 매생이굴국을 한입 입에 떠 넣으면 부드럽게 넘어가는 매생이 식감이 참 좋았다. 신랑은 결혼하고 처갓집에 와서 매생이국을 처음 먹어봤다고 했다. 매생이국을 보며 신기해하는 사위에게 장모님이 신신당부를 하셨다.


  “매생이는 끓여도 연기가 안나. 연기가 안 나도 뜨거우니까 호호 불어서 먹어. 어떤 장모는 사위가 미우면 일부러 매생이 국을 끓여주기도 한대. 나는 절대 자네가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니까 미리 말해주는 거야. 입천장 안 데게 조심해서 먹어.”


  매생이국은 나에게 겨울철 추억의 메뉴이자 동시에 남편에게도 장모님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메뉴다. 그런데 우리 딸은 매생이를 참 싫어한다. 매생이를 보면 바닷속 귀신이 생각난다고 한다. 심지어 굴도 입에 대지 않는 아이다. 그러니 내 손으로 직접 매생이굴국을 끓이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며칠 전 남해 여행을 다녀오시던 친정아빠가 연락을 주셨다. 남해에서 매생이를 사 오는 중이니 우리 집 앞에 들려서 한 덩어리 주고 가신다고 하셨다. 아빠의 전화가 이 날따라 참 반가웠다. 어쩔 수 없이 매생이국을 한번 끓여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집 앞에 나가서 매생이를 받아 들고 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렸다. 굴을 한 봉지 살까 하다가 딸에 대한 배려로 굴 대신 바지락을 샀다. 딸아이는 평소 바지락을 넣어서 해주는 음식은 국이든 파스타든 뭐든 잘 먹었다. 굴 대신 바지락 넣고 매생이국 끓여주면 한 끼는 먹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바지락으로 육수를 만들고 먹기 편하게 조개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냈다. 그리고 육수물에 매생이와 다진 마늘, 국간장을 넣었더니 금방 국이 완성됐다. 냉장고에 있던 떡국떡을 한 주먹 넣었더니 바다 향기 가득한 떡국이 만들어졌다. 뜨거운 국을 호호 불어가며 입에 한 입 넣었다. 연이어 시원하고 아삭한 깍두기 한 조각을 곁들이니 입이 마냥 즐거웠다. 딸아이는 몇 년 만에 먹는 메뉴지만 여전히 싫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젓가락을 들고 낚시질하듯 떡만 쏙쏙 건져먹는 아이를 보니, 탄수화물만 먹어서 될까 염려스러웠다. 그래도 이번 한 끼만 눈감고 나를 위한 식사를 즐기기로 했다.


  산후조리하는 사람처럼 큰 대접에 담긴 국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웠다. 정신없이 국 한 대접을 먹고 나니 친정엄마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분명 엄마도 나 때문에 못해먹고 참았던 음식이 있었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엄마는 전을 좋아하시지도 않으면서 명절이면 대가족이 먹을 전을 잔뜩 부치셨다. 설연휴를 보내고 나니 유난히 더 엄마 생각이 난다. 왜 진작 여쭤보지 않았을까, 엄마의 최애 메뉴가 무엇이었는지….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돼서야 뒤늦게 후회가 몰려오니 오늘도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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