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대신 응원
딸아이는 오늘도 영어 학원에 지각할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시간에 등원했다. 수학은 엄마 등쌀에 못 이겨 기본 수준만 겨우 하는 정도다. 그런 아이가 자발적으로 엄마 잔소리 없이 하는 일이 있다. 발레 수업 시간만 되면 왜 이렇게 일찍 갈까 싶을 만큼 서둘러 집을 나선다. 가는 길에 어디 들려 놀다 가는 건 아닌가 싶어서 나는 괜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알고 보니 일찍 도착해서 스튜디오 한편에서 스트레칭하며 미리 몸을 풀고 본 수업에 들어가는 거였다. 이유를 알고 나니 미안함과 기특함이 내 안에서 동시에 뭉클 올라온다. 너무 뒤늦은 시점에 발레를 시작한 게 아닌가 싶어서 부모인 나는 종종 조급증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아이가 즐거워서 자발적으로 하는 활동이 하나라도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서 오늘도 발레 하러 나서는 아이의 등 뒤에서 파이팅을 외친다.
“어머님, 다음 달 수업부터는 토슈즈 준비해서 보내주세요.”
인터넷 창에 ‘발레 토슈즈’라고 검색해보니 종류가 십여 가지도 더 된다. 같은 브랜드 안에서도 제품 이름이 각각 다르다. 내 눈에는 다 똑같은 핑크색 슈즈인데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건지…. 아이의 발레 레벨이 조금씩 올라가고, 전공 준비생으로서 갖춰야 할 일들을 하나씩 마주할 때마다 나는 걱정이 앞선다. 뼛속까지 이과생이었던 나는 한 번도 예술계 전공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주변에 예술 분야를 전공한 친구도 없다. 내가 오직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정보와 발레 학원 원장님의 조언뿐이다. 내가 모르는 세상으로 아이가 걸어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설레기 전에 무서워졌다.
주말을 맞아 아이 손 붙잡고 발레용품 매장으로 향했다. 걱정 인형을 색깔별로 매일 만들어내고 있는 엄마는 아이 발에 잘 맞는 슈즈를 사 올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반면에 아이는 마치 소풍 가는 것처럼 한껏 들떠있었다. 추운 날씨에 볼이 발그레해진 아이 얼굴은 붕붕 떠다니는 핑크색 풍선 같았다. ‘딸랑딸랑’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연세가 조금 있어 보이시는 점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뭐가 필요한지 나한테 물어보시더니 내 대답을 듣고 점원은 바로 알아채신 것 같다. 내가 발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초보 엄마라는 사실을…. 아이 발을 쓱 보시더니 토슈즈 모델 2개를 여러 개 사이즈별로 가지고 오셨다. 어차피 아는 게 없는 나는 뒤로 물러서 조용히 구경만 하고 있었다.
나무같이 딱딱한 발레 슈즈를 신으면 발가락이 굉장히 아플 텐데 어쩌나 싶었다. 알고 보니 토슈즈를 신기 전에 미리 발가락을 감싸주는 패드를 신는다. 패드도 실리콘, 도톰한 천 등 종류가 여러 가지 있었다. 점원은 패드와 토슈즈를 종류별로 아이한테 신겨보고 발레 기본 동작을 취하게 하면서 어떤 게 가장 편안한지 물어봤다. 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아이는 가장 잘 맞는 걸로 골랐다. 번거로운 기색 한번 내비치지 않고 친절하게 도와준 점원 덕분에 첫 번째 토슈즈 구매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내 아이지만 나 혼자 키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쳤다. 학교, 학원, 심지어 상점 직원까지 이렇게 힘이 되어주는데, 나는 또 왜 겪어보기도 전에 미리 걱정했나 싶었다.
이날 처음 알았다. 발레 토슈즈에 달린 하늘하늘한 리본 끈은 각자 손바느질로 달아야 한다는 사실을…. 토슈즈 가격이 꽤 나가는데, 도대체 왜 바느질을 하지 않고 파는 걸까 싶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인터넷 검색창이다. 검색하자마자 그 이유가 바로 나왔다. 각자 자기 발에 편한 위치를 찾아서 발목을 고정할 수 있는 고무 밴드와 리본 끈을 달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알고 나니 이해는 됐지만 막상 바느질할 생각을 하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발레는 클래식과 아날로그의 정수라더니, 요즘 같은 자동화 시대에도 전통 방식을 고수하나 보다.
반짇고리함을 열었다. 허접한 나의 반짇고리에는 살구 핑크색 발레슈즈와 어울리는 실 색깔이 없었다. 흰색이나 검은색으로 꿰매면 확 튀어 보일 것 같았다. 실 굵기 역시 도톰한 거로 꿰매야 튼튼하고 좋을 것 같았다. 발레리나에게 발목은 목숨과도 같은데, 행여라도 허술하게 바느질해서 아이가 다칠 수도 있다고 상상하니 끔찍했다. 그 순간 불현듯 떠오른 실타래가 있었다. 친정엄마의 유품 같아서 차마 버리지 못했던 손뜨개 실이 장롱 깊숙한 곳에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친정엄마는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 분이셨다. 하루 일과를 다 끝내고 드라마를 보며 쉬는 시간에도 엄마의 두 손은 늘 바쁘게 움직였다. 눈은 TV를 향하고 있지만, 뜨개질바늘과 실은 마치 엄마의 손과 하나가 된 듯 쉬임 없이 움직였다. 드라마 한 시리즈가 종방 되기도 전에 엄마는 작품을 하나씩 만들어내곤 하셨다. 내가 아이를 낳기 전 까지는 항상 내 카디건이나 조끼를 떠주시다가, 손녀가 생기자마자 그 사랑은 곧장 아이에게로 옮겨갔다. 아이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사계절 무관하게 아이는 할머니의 손뜨개 옷을 입고 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귀한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건 큰 복인데, 그때는 별거 아니라 여겼다. 어떤 날은 옷가게에서 파는 기계로 짠 니트가 더 예뻐 보이는데 엄마는 왜 자꾸 투박해 보이는 손뜨개 니트를 만들어주냐며 불평하기도 했다. 감사할 줄 모르던 철없던 시절을 떠올리면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엄마는 암 투병을 하는 동안에도 손에서 실과 바늘을 놓지 않으셨다. 항암치료받으러 가시는 분이 가방에 항상 실과 바늘을 챙겨가셨다. 병상에 기대앉아서도 체력이 허락되는 날은 뜨개질을 하며 무료한 병원 생활을 이겨내셨다. 그렇게 엄마의 마지막 손길이 닿았던 실이 발레 슈즈와 잘 어울리는 살구색 실이다. 결국 엄마는 기력을 잃고 살구색 옷을 완성하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가셨다. 몇 년 동안 장롱 속에서 잠자고 있던 실이 이렇게 의미 있게 쓰일 줄은 몰랐다. 한결같이 손녀를 사랑하시던 할머니의 마음이 전달되길 바라면서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토슈즈에 바느질을 했다. 발레리나를 꿈꾸는 손녀의 첫 토슈즈에 리본을 꿰매 주는 실이 되다니, 이제야 할머니의 마무리되지 못했던 작품이 완성된 것 같았다.
“우리 손녀딸은 참 기특해. 이제 할머니가 많이 아픈 걸 알고, 요즘은 낮에 할아버지를 많이 따르더라.”
갓난아기 때부터 할머니가 온갖 정성으로 키운 아이였다. 할머니가 아프다고 할아버지만 찾는 손녀를 보며 서운하셨을 거다. 고작 5살짜리 아이도 본능적으로 이제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은 할머니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릴 만큼 기력이 쇠했다는 사실에 서글프셨을 거다. 그 상황에서도 아이의 칭찬할 점을 찾아 말씀해주셨던 엄마가 생각나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고운 발레 슈즈에 행여 눈물 자국이라도 남을까 봐 얼른 고개를 치켜올렸다.
친정엄마는 나를 키우시면서 한결같이 응원해주셨다. 우리 엄마라고 걱정과 두려움이 없었을까? 자식이 걸어가는 길이 옳은지, 아이가 선택한 길이 맞을지…. 엄마도 혼자 수없이 머릿속에 물음표를 그려보셨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다. 그저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시고, 넌 할 수 있다고 힘을 실어주셨다. 엄마의 신뢰와 응원 덕분에 나는 엄마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왔지만, 스스로 뚜벅뚜벅 발걸음을 잘 내디뎌왔다.
이제야 아이의 미래에 대한 답답한 마음과 걱정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엄마처럼 하면 되는 거다. 무대에서 점프하고 턴을 돌 사람은 내가 아니다. 나는 그저 발레리나에게 필요한 고단백 저칼로리 식단으로 밥상을 차려주고, 오늘도 연습하느라 고생했다고 안아주기만 하면 된다. 엄마의 영역을 벗어난 부분까지 걱정하며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오늘도 하늘에서 내게 필요한 조언과 응원이 내려온다. 사랑스러운 살구색 실타래를 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