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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Oct 13. 2022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권리

낙화

  “오늘 낮에 병원 다녀오는데, 창 밖의 꽃들을 보니까 나도 같이 가고 싶더라. 봄꽃이 다 질 때쯤이면 나도 같이 지고 싶어.”


  엄마와 함께 했던 마지막 봄날에 나눈 대화는  말만 기억난다. 그때만 해도 엄마가 지쳐서 하는 말이라고만 생각했다. 혼자 제대로 걸을  없는  물론이고, 누워서 숨쉬기조차 힘든 날들을 버티고 있는  버거우셨을 테니까…. 엄마의 입장에서는 육체적 고통 이상의 괴로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렇게 멀쩡히 숨을 쉬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식사를 잘하시고 재활 치료를 받으시면 내년 봄에는 혼자  발로 여기저기 걸어 다니며 꽃구경을 하실  있을 거라고 위로했다.


  그해 여름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중환자실에서 나와서 일반병실로 옮겨지고 나면 엄마는 그만 집으로 가자는 말씀을 반복하셨다. 병원은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통원치료를 받아도 되겠다는 의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엄마는 퇴원해서 집으로 왔고, 며칠 지나지 않아 또다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셨다. 쳇바퀴   짧은 주기로 반복되는 응급실행에 엄마도, 가족들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나 부탁이 있는데, 제발 다음에는 내가 쓰러지면 구급차에 나 좀 태우지 말아줘.”


  엄마는 심폐소생술과 연명치료를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우리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조차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았다. 그 후에도 아빠와 나는 엄마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향했다. 소중한 목숨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는 도의적인 생명존중 의식이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서 그랬을까? 전혀 아니다. 순전히 나의 이기심 때문이었다. 그렇게라도 엄마를 붙잡고 싶고, 엄마 냄새를 하루라도 더 느끼고 싶은 내 욕심 때문이었다. 엄마한테도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눈앞에 꽃만 보이면 핸드폰 카메라를 켜는 나는  사진 수집 마니아이다. 핸드폰 사진첩에는  사진이 수백 장도  된다. 그러나  시들어버린 , 떨어진 꽃잎은 찍어두지 않는다. 싱그러움을 잃고 힘없이 고개를 숙인  마른 꽃잎을 한두 장씩 떨어트리는 꽃을 보면 가슴  구석으로  바람이 스며드는 느낌이다. 슬퍼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테이블 위에 떨어진 꽃잎을 정리한다.


  얼마 전 호야 화분에 핀 꽃을 보고 몹시도 감탄했던 날이 있다. 종이 딱지를 정교하게 접어둔 것 같은 정오각형 꽃봉오리가 펼쳐지면 별처럼 반짝이는 모습이 나타났다. 정성스럽게 빚은 작은 도자기 같은 모습이 참 신기했다. 그런데 더 경이로웠던 순간은 호야꽃의 마지막을 볼 때였다. 물기를 머금은 듯 촉촉하고 도톰했던 꽃잎은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타들어가는 하얀 꽃잎은 분위기 있는 앤틱 갈색으로 변해갔다. 보통의 꽃이라면 이쯤 되면 꽃잎을 주변에 하나둘씩 떨어트렸을 것이다. 호야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머물던 자리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듯 펼쳤던 꽃잎을 하나하나 닫았다. 야위고 말라갔지만 세상에 처음 나올 때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호야꽃이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순간 엄마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여자로서 아빠 앞에서 고운 모습만 보여주다 떠나고 싶으셨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수고스럽게 하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한평생 깔끔하게 살아오신 만큼 돌아가실 때도 말끔하게 뒤처리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병상에 누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식사, 배변과 같이 생존을 위한 기본 생활도 혼자의 힘으로   없었으니 어떤 날은 치욕스러울 만큼 싫어하시는  느껴졌다. 오랜 시간 동안 엄마 곁을 지키며 옴짝달싹 못하는 아빠한테 미안해하시는 날도 많았다.


  어쩌면 봄꽃과 함께 바람에 날아가고 싶은 마음은 가족들을 애태우지 않고 홀연히 떠나고 싶으셨던  아닐까? 고운 아내의 모습, 강인한 엄마의 모습만 남겨주고 싶으셨던  아닐까? 이제야 봄꽃이   같이 지고 싶다던 엄마의 말에 숨은 뜻이 보이는  같다. 꽃잎이  장씩 떨어질 때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체력과 함께 마음도 무겁게 내려앉았을  같다.


  좀 더 편안하고 깔끔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 것 같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호상’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다. 영원한 이별 중인 유가족에게 어떻게 좋은 죽음이라는 게 있을 수 있지 싶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죽음에도 덜 아프고 덜 힘든 죽음이 있다는 걸…. 우리는 그걸 호상이라고 부르나 보다.


  오늘은 돌아가신 엄마 생신 날이다. 보통은 돌아가신 분의 기일만 챙기고 생일은 챙기지 않지만, 아빠랑 나는 여전히 엄마의 생일날이면 엄마를 찾아간다. 엄마가 세상에 온 날, 그래서 우리 곁에 와줄 수 있었던 이 날이 너무도 소중하다. 오늘 엄마 만나면 꼭 말씀드려야겠다. 마지막까지도 내 욕심을 부려 죄송했다고…. 그리고 엄마는 마지막까지도 곱고 아름다웠다는 이야기도 꼭 전해드리고 싶다. 그 모습이 예뻐서 아빠는 차갑게 식은 엄마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은채 살포시 입을 맞추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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