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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Sep 22. 2022

다시 이 계절이 오면…

엄마 생각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여름이 떠나기 싫은지 자꾸 질척거리는 느낌이었다. 게으른 탓에 아직 여름옷을 정리하지 않은 게 참 다행이었다. 그러더니 며칠 사이 가을이 성큼 다가오듯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 찾아오려는 모양이다. 한 계절을 보내고 새로 맞이하는 계절의 향기는 항상 그리운 사람을 불러오곤 한다.


  왜 사람들은 특정 계절이 되면 떠나간 옛사랑이나 이별한 가족을 그리워할까?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는 해마다 새로운 추억을 쌓아나갈 수 있다. 행여 안 좋은 일이 있었더라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다. 다음 해 돌아오는 같은 계절에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을 덮어버릴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을 다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 너무 바빠서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제대로 떠나지 못했다 해도 크게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내년 여름에는 멋진 곳으로 휴가를 떠나면 되니까….


  현재 진행형의 관계와 다르게 이미 종결되어버린 관계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아쉬움을 넘어 쉽게 아물지 않는 생채기로 남아있기도 하고,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사무친 그리움으로 남기도 한다. 그래서 해마다 같은 계절이 돌아오면 헤어진 누군가가 유난히 떠오른다.


  나한테는 사계절이 모두 엄마의 향기로 가득하다. 연초가 되면 명절날 엄마와 전 부치던 기억과 함께 고소한 기름 냄새가 느껴진다. 엄마는 사교적인 성격으로 모임의 구심점이 될 때가 많았고, 정이 많아서 무엇이든 나누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명절마다 일가친척이 모여 맛있게 명절 음식을 먹고, 집에 돌아갈 때는 두 손 무겁게 음식을 싸갈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셨다. 난 엄마 곁에 앉아서 열심히 전을 뒤집으며 시집가기 전부터 전 부치기 내공을 쌓았다.


  봄이 되면 아기자기한 꽃이 핀 모종을 사 와서 화분에 옮겨심으시던 엄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이면 현관문으로 향하는 계단 양 옆에 엄마의 손길이 닿은 꽃화분이 날 항상 반겨줬다. 어느 해에는 층층이 꽃 화분이 자리 잡고 있는 계단이 보기 좋아서 엄마랑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었다. 봄날의 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엄마와 나를 보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더위를 많이 타는 엄마는 여름이면 늘 샤워를 하루에 두세 번씩 하셨다. 외출했다 들어오시자마자 시원하게 한번 씻으시고는 곧장 또 부엌으로 향하셨다. 더운 날에도 불 앞에 서서 식구들을 위한 반찬 준비를 소홀히 하시는 날이 없었다. 더위에 몸이 지치는 계절일수록 식구들을 잘 챙겨 먹여야겠다는 마음으로 식사 준비를 하시며 땀을 흠뻑 흘리셨다. 이렇게 여름날 엄마의 역할을 다 하고 나면 또 개운하게 샤워를 하신 뒤 선풍기 바람을 쐬며 드라마를 보셨다.


  엄마를 떠올리면 내 머릿속은 주로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요즘처럼 여름과 가을 사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만 되면 누가 내 심장을 비틀어 옥죄는 것같이 가슴이 몹시 아프다.


  아직은 여름의 기운이 남아 한낮의 날씨는 후덥지근하다. 하지만 확실히 해가 빨리 지는 게 느껴진다. 그날도 딱 지금처럼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던 때였다. 퇴근하고 친정집 근처 지하철역 밖으로 올라오니 이미 거리에는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선선한 저녁 바람이 불어오면 애엄마도 가끔은 분위기 있는 가을 무드에 빠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다르게 두 발은 종종걸음으로 친정으로 향해야만 했다. 내가 빨리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야 친정 부모님도 퇴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친정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이는 해맑게 나를 맞아줬다. 그런데 엄마는 보이질 않고 아빠는 밖에 나갈 채비를 하고 계셨다. 알고 보니 엄마는 병원에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시고, 아빠는 내가 퇴근할 때까지 손녀를 보고 계셨던 거였다. 이런 날은 좀 일찍 오라고 미리 연락 좀 하시지 왜 말도 안 했냐고 쏘아붙였다. 가족한테는 미안한 마음을 왜 이렇게 짜증 섞인 투덜거림으로 표현하게 되는지, 참 알 수 없다. 아빠는 엄마 데리러 병원으로 가시고, 나는 아이 손을 붙잡고 집으로 향했다.


  가방 속에서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 친정엄마였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이제 어떻게 하지? 내 인생은 왜 이렇니?”


  “왜? 병원에서 뭐라는데?”


  “나 백혈병이래….”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백혈병이라니, 그거는 눈물 짜내려고 만드는 슬픈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병명 아닌가? 그게 현실에서 이렇게 쉽게 마주치게 되는 병이야? 우리 집에 찾아올 병이냐고?’ 믿기지 않는 현실에 아무나 붙잡고 따지고 싶었다.


  더 화가 나고 속상한 건 그렇게 끔찍한 검사 결과를 엄마 혼자 병원에 가서 들었다는 것이다. 엄마는 10여 년 전 대장암 수술을 하고, 2년 뒤 난소로 전이되어 또 한차례의 암수술을 받으셨다. 두 번의 암수술과 항암치료를 다 견뎌낸 엄마는 그 누구보다도 강인한 마음을 갖고 계신 분이셨다. 그 후로 10년간 재발 없이 건강관리를 잘하셨기 때문에 이제 큰 병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고 계셨다. 그래서 이날도 용감하게 혼자 병원에 가셨던 것 같다.


  내가 미리 엄마 스케줄을 여쭤보고 챙겨봤어야 했다. 회사에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겠다고 엄마한테 작은 관심조차 드리지 못했는지….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엄마한테 큰 상처를 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딸이 행여라도 직장에서 눈치 보일까 봐 휴가 쓰라는 말씀도 못 하시고 엄마는 외롭게 검진 결과를 들으러 가셨나 보다. 아이를 두 번 키우게 하는 것만 해도 죄송한데, 엄마의 가장 힘든 시기에 외롭게 혼자 계시게 했던 게 너무나도 죄송했다. 상상도 못 했던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두렵고 마음이 힘드셨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후끈한 여름의 기운이 다 가시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찬 공기가 가슴에 훅 들어온 것처럼 이 계절만 되면 내 심장은 갑자기 시리고 쓰라리다. 그날 엄마의 마음은 지금 내 마음보다 훨씬 더 많이 아팠겠지? 이다음에 하늘나라에서 다시 엄마를 만나면 아픈 기억을 다 쓸어내릴 수 있는 행복한 가을의 기억을 만들어드리고 싶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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