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지금은 3월 말이다. 며칠 사이에 갑자기 날씨가 따뜻해졌다. 겨우내 돌아가던 보일러를 외출 모드로 전환했다. 벚꽃축제가 언제 시작되는지에 대한 뉴스들이 화제다. 그런데 벚꽃보다 먼저 개화해 봄이 왔음을 알려 주는 꽃나무가 있다. 목련이다.
사실 목련은 대중적으로 그다지 인기 있는 꽃이 아니다. 목련이 언제 피는지 일부러 검색해서 챙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만개해 ‘우와! 저기 봐. 목련 피었네.’라고 이야기하는 꽃이다. 그마저도 보통 목련이라 하면 하얀 백목련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오늘은 자주색의 자목련에 대해 써볼까 한다.
내가 자목련의 존재를 인지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봄 생물 수업 시간이다. 당시 생물 선생님은 괴짜 과학자(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기질이 있었다. 산새 소리를 녹음해 그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지역별로 방언이 있는지 연구한다든지, 한국 토종 개구리의 생태를 연구한다든지… 지금 생각하면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대입을 앞둔 사춘기 학생들의 이목을 끌지는 못했다.
봄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생물 선생님께서 뜬금없이 야외수업을 선포하였다. 엥? 진짜 나가래? 어디로? 왜? 이런 웅성거림의 끝에 우리는 학교 정문 앞에 옹기종기 모였다. 생물 선생님은 학교를 한 바퀴 돌면서 자연생태 수업을 진행하셨다. 가장 먼저, 학교 앞에 핀 자목련 나무에 멈추어 서셨다. 이게 무슨 꽃인지 아는 사람? 목련이요. 오, 그렇지. 목련은 백목련과 자목련이 있다. 둘 중에 무슨 꽃이 먼저 필까, 혹은 똑같이 필까? 정적. 자목련이 먼저 핀다. 왜 그럴까? 정적. 나도 모른다. 자, 연못 앞으로 이동.
그날 자목련 나무 앞에서의 수업이 왜 10년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히 기억날까. 난 여전히 자목련이 백목련보다 먼저 피어난다는 말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어서 보여 주신 연못의 도롱뇽알과 개구리알을 기억한다. 도롱뇽은 1급수에만 알을 낳는다는 사실도 기억한다. 그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자연’ 과학 수업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자목련의 꽃말은 ‘자연애’다.
생물 선생님이 괴짜 과학자였다면, 국어 선생님은 괴짜 문학가였다. 일단 교과서로 수업하지 않으셨다. 월든, 육식의 종말 등 1년간 5권의 선정 도서를 읽고 토론하는 것이 커리큘럼이었다. 괴짜답게 가을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몇 주 뒤, 야외수업을 선포하셨다. 그것도 전교생 야외수업을 말이다. 엥? 나오래? 국어가? 응. 나오래. 국어 수업 시간을 3, 4교시로 바꿔서 다 같이 밖으로 나갔다. 수업 미션은 학교 뒷산을 오르며 단풍 구경을 하기. 그리고 그 감상을 시로 쓰기. 그리고 중턱 즈음 공터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발표하기였다. (우리 학년 전교생이 60명이었기에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발표할 수 있었다) 학기 중의 서프라이즈 단풍놀이는 여전히 소중하고 즐거운 기억이다.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 돌이켜 보면 학창 시절에 자연과 꽤 가까운 생활을 했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계룡산 근처였다. (당연히 교가에서 계룡산의 푸른 정기를 받는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했고, 아침 6시 45분에 기상송(아리랑)이 울리면 나가서 점호 후 구보를 돌았다. 항상 아침마다 안개가 자욱했는데, 금강이 학교 앞이 아닌 뒤로 흐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풍수지리가 괜히 나온 학문이 아니었음을 (배산임수) 깨달았다.
1년에 한 번씩은 ‘계룡산 쓰레기 줍기 봉사활동’이라는 숙명 아래 전교생 체력 증진 및 교직원의 합법적 알밤 막걸리 시음회가 열렸다. 요즘 시대의 멋진 단어로 바꾸면 플로깅이다. 당시에는 공교육의 부당한 횡포(아님)라고 느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한편, 나는 생물반 곤충동아리 회장이었다. 학교 앞 하천에서 수서곤충을 채집해 직접 시료를 만들어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귀여운(?) 연구 활동을 했다. 학교에서는 여름이 되면 ‘자연 탐사’라는 이름의 근교 소풍을 갔는데, 부여의 개울에서 각종 곤충과 유충을 잡았다.
왜 우리는 과학을 ‘자연’ 과학이라 부르는지. 그리고 좋은 선생님과 교육 시스템이 과학의 기초에는 자연이 있음을 늘 강조해 주었다는 사실을 인제야 또렷하게 알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지금 자연의 부산물을 팔고 있는 것도 자연 교육의 영향이 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며 오늘 글을 마친다.
2024.03.26
서울 서교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