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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팔이 Apr 02. 2024

루스커스 : 변하지 않는 소중함

  조화로운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서는 메인꽃, 서브꽃, 소재를 적절히 잘 섞어야 한다. 메인꽃은 주로 색감이 강렬하거나 얼굴이 큰 꽃을, 서브꽃으로는 한 줄기에 여러 송이가 달린 스프레이형 꽃이나 줄기에 굴곡이 있어 형태감을 더할 수 있는 꽃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소재는? 나는 아무것도 묻고 따지지 않고(아묻따) 루스커스부터 뽑아 든다.


  내가 루스커스를 소재로 자주 (사실 거의 항상) 사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로, 파릇파릇한 느낌이 좋다. 루스커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이파리’다. 손님께서 초록색 이파리 같은 것도 같이 넣어 주세요! 라고 하시면 혹시 이런 거요? 하고 보여드린다. 결과는 백발백중. 정답이 아닌 적이 없다.


  둘째로, 수명이 길다. 생화는 보관 기간이 짧기 때문에 재고 관리가 어려워 항상 숙제와 미션 그 사이 어딘가쯤으로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러나 루스커스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녀석은 자그마치 1년이나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명이 길다. 그렇다고 딱히 싱싱함이나 모양에 변화가 있지도 않다. 꽃말에도 이런 특성이 깃들어 있는 것인지, 우리 가게 꽃 냉장고 한구석을 항상 지켜주고 있는 고마운 초록 이파리의 꽃말은 ‘변하지 않는 소중함’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변함없이 소중한 것이 있느냐 묻는다면, 고양이라고 답하겠다. 난 고양이가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고양이는 실물이든 사진이든 기억이든 상상이든 가릴 것 없이 나를 1초 만에 웃게 만들 수 있다. 봐라. 지금도 이미 웃고 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고양이들에 관해 쓰자면 한도 끝도 없기에 딱 한 명만 골라서 써보기로 했다. 누구를 쓸까… 뽀또? 버찌? 머루? 카레? 찰리? 채플린? 캐리? 하젤이? 삼치? 포당이? 음… 어쩐지 오늘은 카레에 관해 쓰고 싶다. 다른 냥이들은 다음에 만나자.


2018년 4월에 찍은 카레

  카레는 이름처럼 노란 고양이다. 내가 다녔던 대학교 캠퍼스 안에 산다. 카레가 자주 출몰하는 위치는 과학도서관과 산학관 근처 풀숲. 허리를 숙여서 풀숲 사이로 눈높이를 낮추고 카레야~ 부르면 어디선가 노란색 야옹 소리가 들린다. 카레는 혼자 다니지 않는다. 턱시도가 멋진 찰리와 삼색냥 채플린이랑 같이 다닌다. 이유는 간단하다. 셋은 가족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대부분은 아, 카레가 엄마예요? 아니면 아빠예요? 라고 묻는다. 미안하지만 둘 다 틀렸다. 카레는 삼촌이다. (학교 내에 고양이 돌봄 동아리가 있어서 캠퍼스 내 고양이들의 가계도 추적이 가능했기에 카레가 찰리, 채플린의 삼촌인 것이 밝혀졌다)

카레(삼촌냥)과 찰리, 채플린(조카냥들)


  나는 카레를 2017년에 처음 만났다. 그전에는 고양이에 딱히 관심도 없었다. 과 동기 언니가 고양이 보러 가자고 해서 몇 번 따라갔다.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공강 때마다, 저녁에 산책하다가, 심지어는 주말에도 고양이 간식을 들고 카레를 만나러 가는 내가 있었다.


  카레는 착하고 귀엽고 거대하고 따뜻한 고양이다. 나를 처음 봤을 때는 약간 경계하는 듯싶더니 내가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는지 빠르게 곁을 내주었다. 아니, 내 곁으로 왔다. 화단에 앉아 있는 내 옆에 슬며시 다가오더니 엉덩이를 붙이고 기대 앉던 카레의 묵직함과 체온이 아직까지도 귀엽다. 가방을 잠깐 내려놓고 찰리, 채플린이랑 놀다가 돌아보니 내 가방 위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던 어이없는 날도 여전히 귀엽다.

카레가 엉덩이를 붙이고 기대 앉은 날
카레가 가방 위에 올라간 날


  대학교 3~4학년은 누구나 어렵고 모르겠고 방황하고 낯선 시기이지 않은가.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나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내 발소리를 기억해 주던 것은 노란 뚱뚱이 고양이였다. 고양이에게서 위로받아 본 사람은 절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의 학부 고학년 시절은 카레가 있어서 덜 외로웠다. 고마운 동그라미 고양이.


  2022년 초, 팔로잉 해 두었던 학교 고양이 돌봄 동아리 계정에 카레, 찰리, 채플린 모두 고양이 별로 떠났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난 이제 카레 없는 세상에서 어찌저찌 살고 있는 학부 졸업생이지만, 카레 없이도 카레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소중한 존재가 세상에 있을 수 있다니! 라고 생각했던 가을 저녁의 선선한 날씨가 요즘의 계절과 비슷해서일까. 카레가 고양이별에서 잘 지내고 있을지 안부를 전하고 싶다.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소중할 우리 고양이 카레야. 내가 진짜 많이 생각해.


2024.04.02

서울 망원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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