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손님들께서 나에게 깜짝 퀴즈를 낼 때가 있다.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게 무슨 꽃인지 아세요? 라고 묻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마주한 퀴즈는 약간의 난이도가 있었다. 사진의 화질이 낮기도 했고 어둡기도 했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꽃의 뒷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2년 차 꽃집 사장 아닌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거베라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말씀드렸다. 결과는? 야호. 정답이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고 에피소드를 끼워서 맞춘 것도 아니지만 거베라의 꽃말은 수수께끼다. 수수께끼의 정답이었던 꽃의 꽃말이 수수께끼라니. 정말 우연하고도 재미있는 상황이다. (물론 나만 웃긴 것일 수 있다) 사랑과 희망과 감사와 애도를 표현하는 수많은 꽃말 속에서 수수께끼라는 천진함을 가지고 있는 거베라가 마음에 든다.
수수께끼는 답이 정해진 질문이다. 올바른 정답을 말할 때까지 땡! 을 외치는 것이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이하 답정너)’ 라는 태도이다. 상대방의 의도를 잘 파악해서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어야 수수께끼를 풀 수 있고 나 자신도 수수께끼로부터 풀려날 수 있다.
아직 인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논할 나이는 아닌 것 같지만, 지금까지의 인생 중에서는 현재가 가장 늙은 상태이기 때문에 감히 몇 자 적어보겠다. 산다는 것은 각종 수수께끼를 푸는 일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 생각했냐고? 사회에서 겪는 대부분의 상황은 답이 정해져 있다. 나는 그저 그 수수께끼에 맞는 답을 외치면 된다. 정해진 답을 기꺼이 말하고 행동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이렇게 하면 대부분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트러블이 생긴다고 하여도 좋게 좋게 잘 넘어갈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수수께끼 천국 속에서 살아간다. 무럭무럭 어른으로 자랄수록 수수께끼의 달인이 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도 줄어든다. 모터를 끄고 돛을 펼쳐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이끄는 대로 두둥실 떠다닐 뿐이다. 타인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흘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속으로 주워 담는다.
그래서 다들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다고 표현하는 걸까? 하지만 나는 오히려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으로 더 또렷한 내가 되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마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으나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과도한 에너지를 외부 상황에 일일이 대응하느라 스스로를 소진하면 정작 스스로를 돌보는 데에 쓰일 에너지가 고갈된다. 그래서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상황의 답정너에게는 그냥 정답을 외쳐주고 에너지를 아끼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이건 무조건 사회에 적응하라든지 가만히 있으라든지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수께끼 천국에서의 생존법에 대한 이야기다. 절약한 에너지를 조금 더 꼼꼼히 나 자신을 살피는 데에 써야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내 취향과 가치를 찾아 삶을 구석구석 누리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과 같은 격언처럼 나를 잘 알아야만 외부 상황에도 더 잘 대응할 수 있다.
그러니 나와 같은 초보 어른들이 수수께끼 앞에서 좌절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답을 외치는 것은 현실과 타협하는 못난 어른이 아니다. 길게 보고 멀리 생각하는 현명한 우리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난 이제 더 이상 수수께끼가 두렵지 않다. (물론 달갑지도 않다) 적당한 때에 알맞은 정답을 말하고 다음으로 가겠다.
2024.04.12
서울 망원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