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의 장점 중 하나는 급할 때 주변 사람이 와서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같은 이유에서 단점이기도 하다) 추운 날씨였던 어느 날 꽃시장에서 사들여온 꽃을 아빠와 함께 정리하고 있었다. 시시콜콜 대화를 나누며 잎과 가시를 떼어내던 중, 마침 안개꽃을 다듬고 있던 나에게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 저번에 꽃집에서 꽃다발 사면서 안개꽃도 좀 같이 넣어달라고 했더니 안개꽃이 비싸서 5천 원은 더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 안개꽃이 비싼 꽃인지 그때 처음 알았네.
- 맞아. 나도 꽃 일 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안개꽃이 고급 꽃이더라고. 그래서 안개꽃 못 넣었어?
- 5천 원 더 줬지. ㅋㅋ
꽃집을 시작하기 전의 나조차도 가지고 있던 큰 오해 중 하나는 안개꽃은 저렴한 꽃이라는 인식이다. 출처를 알 수 없지만 내 주변도 그렇고, 나를 찾아주신 손님도 그렇고, 안개꽃은 싸구려(?) 꽃, 서비스 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꽃다발 제작할 때 ‘안개꽃 좀 서비스로 넣어서 풍성하게 해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흔쾌히 알겠다고 하기에는 속이 쓰리고.. 거절하자니 그것대로 마음이 쓰이고.. 난감하다. 이런 복잡한 나의 마음을 놀리는 걸까. 안개꽃의 꽃말은 ‘맑은 마음’이다.
마음이 맑다는 것은 무엇일까. 근심과 걱정이 없다는 것일까. 그런데 살아가면서 근심과 걱정이 없을 수가 있나. 그렇다면 맑은 마음은 허상인가. 나에게는 신기루, 파랑새로 여겨지는 바로 그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보면 거의 항상 화가 났다. 나는 생각할 것이 이토록 많아 마음도 탁해져서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는데, 감히 맑은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고? 당신같이 생각 없이 맑은 사람들 때문에 나는 당신들 몫까지 탁한 마음을 갖게 된 것만 같아 분노가 일었다. 누군가는 이 뿌연 마음을 열등감이라고 말할 테고 또 다른 이는 선민의식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다른 이름을 붙이겠다.
이 감정은 안개다. 질투하는 마음, 속상한 마음, 서러운 마음, 싫은 마음, 미운 마음… 온갖 부정적 마음이 뒤섞여 공기 중에 뿌옇게 흩어진 이 감정은 안개다. 안개 같은 마음으로는 선명히 볼 수 없다. 내가 누구인지, 누구였는지, 누구이고 싶은지, 당신은 누구인지, 우리는 누구인지. 안개를 걷어야 보인다. 안개를 걷히게 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안개를 뭉치는 것이다. 내가 지금 무엇을 근심하고 걱정할지 선택한다. 선택되지 않은 근심과 걱정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니 날려 보낸다. 이렇게 안개를 여기저기 뭉쳐놓다 보면 조금씩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이 마음을 멀리서 보면 군데군데 하얗게 피어난 안개꽃처럼 보일 것 같기도 하다.
수년을 연습하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의 안개를 꽃으로 만드는 작업은 어렵고 지난하다. 어떤 날은 이 세상 그 무엇도 나를 흔들지 못할 것만 같다가도, 어떤 날은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의 전혀 중요하지 않은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기도 하다. 안개 같은 마음이 꽃으로 피었다가 다시 안개로 흩어지는 날들이 끝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계속해 보려 한다. 맑은 마음의 안개꽃은 꽤 예쁘니까 말이다.
- 꽃다발 나왔습니다. 안개꽃 서비스로 같이 넣어드렸어요. 예쁜 선물 하세요!
2025년 2월 11일
서울 남가좌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