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강화 : 희망

by 꽃팔이

어찌 되었든 다시 또 한 해의 시작이다. 날짜라는 개념은 인간이 편의를 위해 임의로 나눠놓았을 뿐이다. 뻔히 다 알면서도 어쩐지 1월 1일이라는 상징적인 숫자에 반응하는 설렘을 외면하기란 참 어렵다. 12월 31일도 30일도 29일도 사실 날짜 개념이 없었다면 1월 1일과 정확히 같은 의미일 뿐이다. 그러나 달력의 발명 덕분에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약 5일간 송구영신을 핑계로 어영부영 지낼 수 있게 되었고,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시작을 다시금 시작한다.


모두가 새 마음을 먹는 1월 1일의 탄생화는 설강화다. 꽃말도 날짜와 잘 어울리는 '희망'. 1월 1일은 아마 365일 중에서 가장 희망의 감정이 팽배한 하루가 아닐까? 새로운 한 해를 다짐하고 첫 발걸음을 떼는 날. 그야말로 희망찬 하루다. 희망, 희망, 희망… 이 '희망'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적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희망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는 사실이다.


희망 1)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 (예문: 희망 사항, 희망에 부풀다, 희망에 차다)

희망 2)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가능성 (예문: 희망이 보이다, 희망이 없다, 희망이 있다)


언뜻 비슷한 느낌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굉장히 결이 다른 의미를 가졌다. 가장 큰 차이는 희망의 주체가 미래를 의심하는가에 있다. 희망1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저 소망하고 기원하며 온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마치 돌탑을 쌓고 소원을 빌듯 되면 좋지만 아니면 말고다. 그런데 희망2는 자꾸만 미래를 잰다. 가능성이 있나? 없나? 있다면 어느 정도 확률로 있나? 아예 시작도 안 하는 게 나은가?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우리가 1월 1일에 갖는 희망은 대부분 희망1인 듯싶다. 그다지 재고 따지지 않는다. 새해 목표는 일단 크게 잡아본다. 꿈을 크게 가져야 깨져도 그 조각이 크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희망1은 금세 희망2로 옮겨간다. 가능성을 따지고 미래를 점쳐본다. 왜 자꾸 이런 불안을 반복하는 걸까? 불안해할 시간에 뭐라도 하나 더 노력하면 오히려 희망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좀처럼 마음같이 잘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희망을 포기하지도 못하고 그저 의심 속에서 남은 희망을 스스로 갉아먹는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는 이유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해야 희망은 또렷해진다. 우리는 멀티태스킹, N잡러 등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사회에 익숙해져 있다. 심지어는 그게 현시대에서 멋지고 좋은 것이며 추구해야 하는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기도 어렵다. 아니 사실은 요즘 세상에서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 더 어렵다! 여러 가지 방해요소가 수시로 집중력을 흩뜨리고 산만하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내가 새해 계획표로 절대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만다라트 양식이다. 나는 그 모든 요소들을 챙길 정신도 여유도 없다. 애초에 만다라트 표를 다 채워본 적도 없다.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다.


8년 전부터 사용하는 나만의 새해 목표 양식이 있다. 희망1과 희망2를 적절히 섞는 것이다. 우선 희망1인 나의 바람을 생각한다. 나는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싶고, 정신적으로도 건강하고 싶다. 이 두 가지면 끝이다. 다른 것은 전부 부차적인 것이다. 그리고 희망2인 실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정량적인 숫자 목표를 세운다. 올해의 경우는 러닝 130회, 독서 23,000페이지. 1년 동안 살다가 문득 이정표를 잃은 것 같을 때 이 두 가지 핵심 목표를 떠올리며 나아가면 된다. 내 경험상 목표는 최대 3개까지가 좋았고 그 이상이 되면 주의력이 분산되어 결국 전부 포기하고 될 대로 돼라 정신으로 손을 놓게 된다.


호기롭게 썼지만 당연히 나도 희망1이 희망2로 넘어가 수렁에 빠지는 일은 허다하게 겪는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미래를 의심하는 마음을 다시 거둬들이고 현재를 살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복잡하게 생각하기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그저 현재 눈앞의 희망사항에 집중한다. 기지개 켜다가 바라본 저 멀리에 여전히 희망은 보이기 때문에.


추신. 모두의 희망, 각자의 희망이 근미래에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2026년 1월 1일

충청도 천안에서

화요일 연재
이전 15화메리골드 :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