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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골드 :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by 꽃팔이

늘 이야기하지만 손님들은 꽃말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래는 우리 가게에서 실제로 나눈 적 있는 대화다.

- 사장님, 혹시 꽃말이 좋은 것으로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 그럼요~ 오늘 있는 꽃 중에서는 꽃말로 인기가 많은 게 리시안셔스랑 스토크예요. 둘 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어요. 어떠실까요?

- 아… 그냥 남사친이 공연을 하는데 거기 가서 선물할 거라서..ㅎㅎ

- (아뿔싸!)


남친이었다면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의 다발이 참 좋은 선물이 되었겠지만, 남사친이라니. 그것도 ‘그냥’ 남사친이라니. 안 될 일이다. 그렇게는 안 된다. 오해의 여지를 주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자, 추천해 드려야 할 꽃의 조건은 (1)꽃말이 좋지만 (2)사랑과 관련된 꽃말이 아니어야 한다. 이럴 때 퐁실퐁실하고 향기도 좋은 메리골드가 꽃 냉장고에 있다면 참 좋은 해결책이 된다. 선명한 노란색과 주황색이 매혹적인 메리골드의 꽃말은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다.


‘그냥’ 남사친에게 할 선물로 메리골드를 추천해 드리면 대부분 “오, 좋아요!”라고 하신다. 그러면 나는 “포장 색상도 오해하지 않으실만한 색으로 골라서 해드릴게요 ㅎㅎ”라고 센스 있게(?) 말씀드리고 작업실로 들어간다. 블루, 그린 계열 포장지를 꺼내며 슬며시 드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왜 반드시 오고야 마는 형태로 행복을 맞이해야 하는가? 그냥 지금 당장 오면 안 되는 걸까?


사실 나는 메리골드의 꽃말이 그다지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말은 지금은 오지 않았다는 말과 나란히 놓인다. 행복을 기다리는 것도, 찾아 헤매는 것도, 쫓아가는 것도, 몽땅 다 싫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성취가 아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해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하고 실제로 성취했을 때 오는 기쁨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내 예상보다 쉽고 빠르게 이뤘을 때는 시시하고 김이 샜다. (에게, 이게 다야?) 반대로 내 예상보다 너무 어렵고 더디게 해냈을 때는 다음 목표는 또 어떻게 달성해야 할지 막막하고 불안했다. (이 짓거리를 또 어떻게 해?) 행복이 있다는 믿음으로 달렸던 길의 끝에는 언제나 거울이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행복은 없었다.


이럴 때마다 내가 주문처럼 외우는 노래 가사가 있다.

- 모든 게 그렇듯, 행복도 습관이거든 (아이유 - Teacher (feat. Ra. D))

무려 2011년에 발매된 이 문장은 2025년을 살아가는 나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유효성이 연속적이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이 노랫말을 잊은 것처럼, 아예 처음부터 몰랐던 것처럼 살았던 시절도 있다. 그래도 내 인생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문장 중에서 꽤 상위권에 위치할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여기 또 한 줄의 흥얼거림이 있다.

-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롤러코스터 - 습관)

나는 이 문장도 참 좋아한다. 행동이든 감정이든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왜 무섭냐면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고 물리학적 해석이다. 습관을 물리학 용어로 치환해 보자면 가장 유사한 것이 관성일 것이다. 그리고 관성으로 인해서 관성력(力)이 생긴다는 엄청난 사실! (말장난이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습관은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나와 평생을 함께 할 것이다. 새로운 습관이 생기기도, 이전의 습관을 없애는 일도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나에게는 모종의 습관이 있다는 것, 그리고 습관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행복이라는 습관을 항상 곁에 두려 한다. 거울을 마주한 곳이 막다른 길일지라도 행복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습관적으로 행복을 찾는다고 해서 막다른 길이 뚫리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지개 한번 시원하게 켜고 다시 뒤돌아 걸어갈 수는 있겠지. 그 순간을 믿는다.


2025년 4월 14일

서울 남가좌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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