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상품이 그렇듯 꽃에도 유행과 트렌드가 있다. 새로운 색상의 신품종 꽃이 생기기도 하고 인기가 없던 꽃이 많이 쓰이는 시기가 돌아오기도 한다. 기왕이면 손님께서 만족하는 상품을 팔고 싶어서 자투리 시간에 요즘 어떤 꽃이 인기 있는지 살펴보곤 한다. 그러다가 특이한 모양의 꽃을 발견했다. 꽃 같기도, 소재 같기도. 정리가 잘 안 된 것 같기도, 잘 다듬어진 것 같기도. 요상한 생김새를 가진 꽃의 이름은 ‘니겔라’다.
니겔라의 모양과 느낌을 언어로 표현해 보자면 들꽃 감성, 야생화 같은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삐죽삐죽 가시처럼 보이는 잎과 신비로운 푸른색 꽃, 중심부에서 뻗어 나오는 약간은 오싹한 모양의 수술과 암술. 누구든지 본다면 생전 처음 보는 꽃이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독특한 외형의 꽃 니겔라의 꽃말은 무엇일까? 신비로운 생김새처럼 꽃말도 신비롭다. 바로 ‘꿈길의 애정’이다. 니겔라라는 꽃의 모양도 이름도 특이한데 꽃말도 꿈길의 애정이라니. 역시 범상치 않다. 처음 들었을 때는 꿈길과 애정이라는 두 단어가 주는 몽환적인 느낌에 얕은 탄식을 뱉었다. 그러고 나서 드는 생각. 근데 이게 도대체 뭔 말이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은 대개 풀어서 생각하면 좋다. 꿈길부터 해보자. 꿈길을 어학사전에서 찾아보면 ‘꿈에서 이루어지는 일의 과정 또는 꿈을 꾸는 과정’이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꿈과 꿈길은 무엇이 다를까? 정확한 설명을 찾기는 어렵지만 예문을 보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꿈과 함께 쓰이는 동사는 꾸다, 깨다처럼 정신활동과 관련된 단어가 주로 쓰인다. 반면에 꿈길과 함께 쓰이는 동사는 헤매다, 접어들다, 인도하다와 같은 신체 동작과 관련되어 있다. 국어에서 얻은 힌트를 들고 과학으로 가보자.
꿈은 우리가 자는 동안 내내 꾸는 것이 아니고 렘수면 단계에서 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렘수면은 안구가 급속히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며 뇌파가 마치 깨어 있을 때와 유사하지만 전신 운동이 억제되기 때문에 악몽을 꾸더라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반면에 꿈길은 신체활동이 수반되어야 하므로 비렘수면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비렘수면의 다른 이름은 깊은 잠이다.
깊이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이것은 애틋한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그때는 꿈을 꾸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뇌파도 깨어있을 때와는 다른 패턴을 그린다. 인간 세상에서의 사고 체계와는 완전히 다른 외계 세상에서의 사고 체계일 수 있겠다. 외계적 생각으로조차 애정을 느끼는 내계인이라니… 기이하고 로맨틱하다. 직관적 이해와는 어쩐지 거리가 더 멀어진 것 같지만, 나는 니겔라의 꽃말을 ‘내가 외계인과만 대화를 나눌 수 있어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멋대로 해석하겠다.
대화가 되지 않는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애초에 우리네 삶이 전부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떠올린다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지 싶다. 나 또한 인생에서 논리와 당위성을 항상 우선적으로 따지는 인간유형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그 어떤 역법도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분명히 있으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여기는 강원도 고성의 바닷가다. 창문 밖으로 파도 소리가 선명히 들리는 책상에 앉아 푸른색 펜으로 쓴 글을 마무리한다. 언젠가 누군가의 꿈속에서 내가 바다의 언어로만 말할 수 있어도, 심지어 물거품으로 바스러져 사라질지언정 파도치고 넘실대고 표류하듯 사랑해 보겠다는 물기 어린 문장으로.
2025년 3월 31일
강원도 고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