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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팔이 Mar 15. 2024

스위트피 : 나를 기억해주세요

  최근에 분홍색 스위트피를 넣은 꽃다발을 주문하고 싶다는 의뢰를 받았다. 꽃 냉장고에 스위트피 재고가 없어서 비슷한 톤의 다른 꽃으로 대체하여 제작해 드릴지 여쭈었다. 꽃말 때문에 꼭 스위트피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하, 그러시면 따로 스위트피를 추가로 사입해와서 꽃다발을 준비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스위트피 꽃말이 뭐더라? 핸드폰을 들어 검색해 보았다. ‘나를 기억해주세요’. 아름답고 향기로운 스위트피는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꽃말을 가지고 있었다.


  이쯤에서 뜬금없는 정보를 하나 흘리자면, 스위트피는 SG워너비 이석훈 씨의 팬클럽 이름이기도 하다. 나는 이석훈 씨가 데뷔한 해부터 그의 열렬한 팬이었던 과거가 있다. (물론 지금도 꽤 좋아하는 편이다) 한평생을 좋아할 내 천년의 이상형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애석하게도 세월은 흘러 그와 그를 좋아했던 나를 과거에 남겨둔 채로 살아왔다.


  그러다가 작년 2월, 놀면뭐하니를 통해 다시금 제2의 전성기를 맞은 SG워너비가 드디어 완전체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관심이 있기도 없기도 했다. 티켓팅에 참전하지는 않았지만 매진 소식이 괜스레 약간 아쉬웠다. 아니다. 사실 많이 아쉬웠나 보다. 자다가 깬 새벽에 공연히 인터파크티켓 예매 창에 들어가서 딱 한 장 남아있는 누군가의 취소 표를 얼른 주워 망설임 없이 결제까지 한 것을 보면 말이다.


  콘서트는 그로부터 두 달 정도 후인 4월 초였다. 다녀오고 나서야 내가 기어이 잊고 지냈던 것은 이석훈 씨가 아니라 그 시절의 나였음을 문득 깨달았다. 절대로 잊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음에도 어느새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은 서글프다.


  그날 적었던 콘서트 소회록의 표현을 빌리자면, “별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SG워너비 콘서트를 무려 14년 만에 다시 갔던 것인데, 그간 내가 잊고 지내던 시간이 흐리고도 선명히 떠올랐다. 14년 동안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석사과정을 공부해 보기도 했고, 취직해서 근로소득을 벌어보기도 했고, 창업해서 사업소득을 얻고 있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 한순간도 쉬웠던 1년이 없었다. 언제나 치열하게 고민하며 결정했던 순간들이었고 그럼에도 내가 이 콘서트장에 다시 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날의 콘서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또 무엇을 잊고 지내는 중일까? 한때는 내 모든 과거를 다 잊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어찌 되었든, 좋든 싫든,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기인한다. 잊어야만 하는 기억, 잊고 싶은 기억은 없다. 기억의 조각들이 켜켜이 쌓여 나를 이루고 있다는 뻔한 사실을 이제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나를 기억해 달라는 꽃말의 스위트피가 14살 나의 최애 연예인 이석훈 씨의 팬클럽 이름인 것은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 우연조차 나에게는 필연이었음을 안다. 어린아이였던 나를 토닥이며 잘 데리고 오늘을, 내일을, 모레를 또 지내보기로 한다.


2024.03.06

서울 방배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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