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시즌에 가장 인기 있는 꽃은 단연 프리지아다. 왕년에 마케터로 일해본 경력을 살려 나름의 이유를 분석해 보았다. 첫째로, 사진에 예쁘게 찍히는 선명한 노란색이다. 졸업식은 사진 촬영 행사다. 연인끼리 주고받는 일상적 꽃 컬러보다 선명한 꽃의 선호도가 높다. 둘째로, 한 줄기에 여러 송이의 꽃이 달린 화형이어서 줄기 수 대비 볼륨감 있는 꽃다발 제작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가성비가 좋다. 셋째로,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라는 졸업과 상당히 어울리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꽃집을 운영한다고 하면 어떤 꽃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이때 빠트리지 않고 언급하는 꽃이 바로 프리지아다. 내가 프리지아를 좋아하는 이유도 졸업식에 프리지아가 인기 있는 이유와 같다. 우선, 나는 노란색을 좋아한다. 오죽하면 카카오톡 아이디가 shfkd000(노랑000)이다. - 000은 내 생일이다 - 그리고 화병에 꽂을 때 몇 줄기만 꽂아도 풍성해 보인다. 게다가 흔치 않은 ‘응원’의 꽃말을 가진 꽃이다!
응원한다는 말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애정 어린 표현이다. 다른 사람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런 마음은 아무에게나 쉽게 들지 않는다. 내가 진정으로 아끼고 마음과 신경을 쏟는 상대에게만 응원할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 응원한다는 말은 공적인 표현으로 한 겹 싸 놓은 사랑 고백과 다를 바 없다. 그렇기에 어쩐지 사랑해- 보다 응원해! 라는 말에 더 진정성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족이 아닌 완전한 타인으로부터 오롯한 응원을 받은 거의 최초의 기억은 대학에 다닐 때다. 나는 어울리지도 않게 락밴드 동아리(심지어 메탈에 근간을 둔…)에서 활동했는데, 지도교수님이 참 좋은 어른이셨다. 교수님을 만나 뵌 지 10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더 좋은 어른은 만나지 못했을 정도다. 교수님께 새해 인사, 스승의날 인사 등 연락을 드리면 마무리 문장으로 쓰시는 말씀이 있다. “선생님은 항상 응원할게.”, “선생님은 늘 그 자리에서 응원과 지지할테니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 받을 때마다 눈물짓게 만드는 이 문장은 언제나 나를 더 밝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누군가의 응원을 받는 일은 발밑에 그물망을 설치하는 일 같다. 삐끗하더라도, 넘어지더라도, 주저앉더라도, 심지어는 떨어질지라도. 너무 아래까지는 가지 못하도록 막아 주는 안전장치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어도 재촉하지 않고 함께 나의 무게를 버텨내 주는 그물망이 있기에 그간 수도 없이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한편, 나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안전한 그물망이 되어 주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괴롭다.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응원하지도, 그렇다고 증오하며 저주하지도 않는 어정쩡한 어른이 된 내가 새삼스럽고 부끄럽다.
괴로워하는 와중에, 프리지아는 ‘순진함’, ‘천진난만’이라는 꽃말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순진하고 천진난만하게 마음을 전하는 자세가 지금 나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조금은 나사를 풀고 살아갈 나의 새로운 시작을 스스로 응원하며, 내일 꽃시장에서 노란 프리지아를 사 와야겠다.
2024.03.05
서울 망원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