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팔이 Mar 19. 2024

미니 델피늄 : 당신을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서문에서 밝혔듯이 꽃을 사는 손님들께서는 꽃말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우리 가게에서 가장 인기 있는 꽃말을 아무도 의뢰한 적 없지만 나 혼자 비공식적으로 집계해 본 결과, 미니 델피늄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미니 델피늄의 꽃말은 ‘당신을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니… 누군가가 과연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본질적 질문으로 생각이 흐른다. 나는 타인에 의해 행복을 느끼는 존재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것이 내 대답이다.


  [그렇기도 하다 측 입장] 나는 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음에서 행복을 느끼는 타입이다. 직관적으로는 친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겠고, 간접적으로는 책 읽기(작가-독자 관계), 음악 듣기(가수-청자 관계), 영화 보기(감독-관객 관계), 글쓰기(작가-독자가 뒤집힌 관계)가 있다. 사색하기도 참 좋아하지만, 사색한다고 해서 그다지 행복을 느끼지는 못하는 듯싶다.


  [아니기도 하다 측 입장] 내가 기본적으로 심성이 뒤틀리지 않은 사람과만 관계를 맺기 때문일까? 어느 정도 나와 친해졌다 싶으면 자꾸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려고’ 한다. 보통은 저런 상황에 놓이면 감동하고, 그로 인해 정말로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기에 미니 델피늄이 인기 순위 1위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나는 보통이 아니다. 나에게 잘해주려 하는 순간, 속된 말로 짜게 식는다…


  나는 왜 짜게 식는 것인가? 이쯤에서 인정한다. 내가 꼬였기 때문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려 하는 것도 상대방의 이기심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나를 보고 싶으니까. 불행한 나는 보기 싫으니까 그렇겠지. 그래서 나는 항상 그대 앞에서 행복해야 하는가? 행복하지 않은 나는 곁에 두기 싫은가?(…) 이따위 생각이나 줄줄 하고 있으니. 역시 나는 보통이 되기는 글렀다.


  이런 내가, 만약 타인에 의해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좀 더 쉽게 질문을 바꿔보겠다.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너무 올드하고 느끼해서 흠칫하게 되는 이 질문에 대충 얼버무리지 말고 오늘은 제대로 대답해 보자.


  나는 편견과 고집이 없는 사람이 좋다. 내가 가진 혹은 가지지 못한 배경을 토대로 색안경을 낀 채로 대해졌던 순간은 언제나 어처구니가 없던 기억이다. 대학원 선배와 함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길래 바람이나 쐴 겸 따라 나갔다. “너도 필래?”라며 던진 선배의 짓궂은(?) 농담에 내가 “저는 끊었어요”라고 대답하자 헛기침하며 놀라던 선배의 눈동자가 현현하다. (그는 아직도 내가 고급 농담을 한 줄로만 안다)


  그에 반해 편견도 고집도 없는 사람은 어떠한가. 그들은 대체로 나와 편안한 관계를 맺는다. 다른 말로 안정적인 관계다. 내가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하면 ‘그래, 좋아.’하는 사람. 근데 사실 그냥 떡볶이가 아니고 로제 떡볶이야. 하면 ‘그래. 근데 그거 매워?’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오히려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은 굉장한 행복이다)


  이런 사람들은 얼핏 보기에 싱거워 보이고 줏대도 없어 보이고 심지어는 자아까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내 주변에서는 이러한 나의 이상형을 듣고 어딘가에 있을 그에게 ‘무자아남(無自我男)’이라는 애칭(?)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무자아남은 어딘가 치욕스럽게 들리는 단어이지 않은가. 그래서 이 지면을 빌어 정식으로 제안한다. ‘미니 델피늄남’으로 바꿔 부르자. 나와 함께 행복한 순간들을 피울 미니 델피늄남을 부디 이번 생에 발견할 수 있기를.


2023.03.15

서울 서교동에서

이전 03화 스위트피 : 나를 기억해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