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꽃같이 생긴 캐모마일은 주로 메인 꽃보다는 곁들여서 함께 넣는 소재로 자주 활용되는 편이다. 몇 달 전에 캐모마일로만 꽃다발 제작이 가능한지 묻는 연락을 받았다.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정성껏 포장해 드렸다. (우리 가게에 안 되는 것은 없다) 이번 손님도 꽃말이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 주문하셨다고 했다. 캐모마일의 꽃말은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이다.
사실 나는 캐모마일 알러지가 있다. 그래서 캐모마일을 다룰 때는 매번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고 꽃 작업을 한다. 이런 나에게 캐모마일 의뢰는 역경 그 자체이며, 결과물로 만들어진 꽃다발은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 즉, 캐모마일의 꽃말 그 자체인 것이다.
작년인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하 중꺾마)’이라는 표어가 유행처럼 퍼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보고 INTJ의 대표주자 박명수 씨가 ‘중요한 것은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이하 중꺾그마)’이라고 정정(?)해 준 표어 또한 유행했다. 내 MBTI도 박명수 씨와 같아서인지, 중꺾마보다는 중꺾그마 쪽에 마음이 더 간다.
여기서 잠깐 삼천포로 빠져볼까. 나는 온갖 상황을 대머리에 비유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러면 바로 시작해보겠다. 머리카락이 빽빽한 사람은 대머리가 아니다. 반대로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사람은 대머리다. 그런데 머리카락이 딱 한 가닥 있는 사람은? 음… 대머리다. 그러면 두 가닥 있으면? 대머리다. 세 가닥 있으면? 네 가닥은? 열 가닥은? 백 가닥은? 도대체 머리카락이 어느 정도로 없어야 대머리인가? 대머리와 빽빽함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지만 그 외형적 특징은 뚜렷하게 구분된다.
꺾이지 않는 마음과 꺾인 마음도 비슷하다. 1도 정도 휜 마음은 꺾인 마음인가? 음… 안 꺾인 것 같다. 2도는? 3도는? 10도는? 30도는? 도대체 어느 정도 각이 서야 꺾인 마음인가? 누군가는 1도만 휜 마음도 꺾인 마음일 테고 다른 이는 45도 정도는 되어야 꺾였다고 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런 무의미한 자기검열을 그만두기로 했다. 꺾여도 그냥 하련다. 그래. 중꺾그마다!
자, 캐모마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이라… 일단 역경이라는 단어 자체가 꺾임을 내포하는 듯하지 않는가? 굴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꺾였어도 그냥 함을 의미하는 듯 싶고. 강인함은 마음을 뜻한다. 그렇다. 벌써 눈치챘을 것이다. 캐모마일의 꽃말은 중꺾그마가 아닌가.
우리는 일상을 지내며 얼마나 수많은 꺾임을 경험하나. 정말이지 별의별 역경이 다 있다. 이러한 역경들의 카오스 속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조차 또 다른 역경일 지경이다. 꺾이든지 말든지 인제 그만 신경 쓰자. 오늘 꺾인 마음이 내일 다시 바로 설 수도 있다. 아니면 말고다. 정말 중요한 것은 꺾였는가 아닌가보다는 그럼에도 그냥 하루를 또 살아가는 것이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흘려보내고 또 다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마음이 꺾일 때마다 캐모마일 차를 한 잔 마시면서 꽃말을 상기해 보자. 잊지 말아주시길. 중꺾그마다. 아, 미안하다. 나는 알러지가 있으니 페퍼민트 차로 대신하겠다.
2024.03.18
서울 망원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