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두 분께서는 풀게트 관문을 통과하셨습니까?”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 물었다. 라무스 일행도 불새 페로의 도움이 없었다면 풀게트 관문에서 검은 기사의 제물이 되었을 터였다. 라무스는 예쿠르와 스피리티가 자신과는 다른 경로를 통해 번개 반도에 접근했으리라는,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알기고 풀게트 관문으로 들어갔다 살아서 나온 자는 없어.”
라무스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파보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어떻게……?”
“말했잖니. 내 어머니께서 강신 사제셨다고. 어머니께도 한 가지 능력이 있었다더구나. 신수와의 교감, 그것이 어머니의 능력이었다. 다만 강신 사제의 길을 거부한 탓에 어머니의 능력은 연마되지도 발전하지도 못했지. 처음 주어진 그대로였어. 다루기도 어렵고 미약하고. 아무튼 내 어머니께서 택하신 경로는 바다였어.”
“바닷길이라면 초승달 호수에서 모루스해로 나가셨겠군요. 하지만 모루스해는 암초와 해무 그리고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폭풍우로 선박의 항해가 불가능합니다.”
모루스해로 나간 선박은 오래지 않아 암초에 충돌하고 폭풍과 비에 휩싸여 난파하고 만다. 바다와 하늘이 일부러 심술을 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애초에 티토니아 대륙의 동쪽은 해안 지형도 거의가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초승달 호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선박의 왕래가 여의치 않았다.
따라서 동쪽 바닷가에는 마을이 별로 없고, 드물게 보이는 해안 마을의 어업이라는 것도 작은 배를 이용한 연안 어업이었다. 그나마 초승달 호수를 둘러싸고 어업이 조금 활성화되어 있는 형편이다.
“노를 젓는 조각배를 타고 나가셨겠군요.”
“그렇단다. 아래 송곳니에 있는 작은 마을 콩카에서 출발하셨다더구나.”
콩카는 가끔씩 진주를 품은 조개가 잡히는 마을이었다.
옛날에는 진주를 노리고 외지인들이 콩카로 몰려들기도 했지만 그들은 결국 빈손으로 떠났다. 콩카의 진주조개는 외지인들의 손에 잡히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외지인들이 바다에 들어와 있을 때는 콩카 사람들도 진주조개를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라무스는 예쿠르와 스피리티가 번개 반도 가까이에 있는 물방울 섬을 두고 굳이 먼 쪽의 콩카를 통한 이유를 이해했다. 스피리티는 이름을 바꾸고 숨어 사는 도피자였으니 물방울 섬까지 가기 위해 상선을 이용하는 건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있었으리라.
“결국 번개 반도에 닿으셨다는 건 바다에 스피리티 님께 응답하는 신수가 있었다는 뜻이군요. 어떤 신수였습니까?”
“피스키볼라.”
파보르의 대답에 라무스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벌어졌다. 아는 이름이었으므로. 만나본 존재였으므로. 낯빛은 변하지 않았지만 라무스의 심장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물고기새의 이름을 조용히 반겼다.
“물고기새라더구나. 물고기의 몸과 새의 날개를 가진. 그리고 예의를 중시하고 연민이 깊은.”
“물고기새, 피스키볼라, 라고요?”
라무스는 놀란 척 중얼거렸다. 사실 그의 눈에는 아직도 생생했다. 피스키볼라의 커다란 비늘이 반사하던 무지갯빛 광채와 구름처럼 부드럽게 펼쳐진 날개와 바람보다 가볍던 활공과 세상 누구보다 자비롭던 눈빛이.
“그래. 폭풍우가 휘몰아쳐 조각배가 산산조각이 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풍랑에 휩쓸려 버렸다더구나. 어머니께서는 간절하게 신수를 불렀지. 어떤 신수가 응답할지도 모르면서. 어쩌면 영영 응답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 말이다.”
스피리티는 이미 지어 놓은 아기의 이름을 비명처럼 외치면서 마음속으로는 신수를 향한 영적 신호를 보냈다. 입과 코로 바닷물이 밀려들고 숨을 쉴 수 없을 때까지. 예쿠르는 잃어버린 아내를 찾으려고 안간힘 써 파도에 저항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그 역시 익사 직전이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두 분의 목전까지 왔을 때 몸이 바다 위로 솟아올랐다고 하더구나. 피스키볼라였지. 아버지는 꼬리지느러미에, 어머니는 활짝 편 날개 위에서 마침내 서로를 발견하셨단다. 피스키볼라는 반쯤 바다에 잠긴 채로 유영하고 있었는데 폭풍우가 피스키볼라를 피해서 몰아쳤다고 하더라. 두 분이 피스키볼라의 등에서 만나자 그제야 하늘로 날아올랐다지.”
피스키볼라는 순식간에 예쿠르와 스피리티를 번개 반도에 데려다 주었다. 파트로나를 비롯한 도채비족들은 피스키볼라가 그랬듯 연민을 베풀었다.
“번개 반도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자신의 명이 다했음을 깨달으셨지. 다급하고 절박하게 도채비족들에게 부탁했단다.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파트로나가 준 약을 먹은 스피리티는 곧 파보르를 낳았다. 이쪽 땅에서라면 일곱 달 정도 만에 세상에 나온 셈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번개 반도였다. 갓 태어난 파보르는 예쿠르가 보기에 적어도 여덟 달은 넘긴 아기로 보였다. 그리고 파트로나가 안고 어르는 사이 금세 미숙아 티를 벗고 달을 꽉 채워 나온 건강한 갓난아기의 모습을 갖추었다.
“아버지는 도채비족들의 부탁에 따라 지체 없이 번개 반도를 떠나야 하셨단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거기에 남긴 건 아버지의 뜻이었다더구나. 어머니께는 이쪽 땅보다 거기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셨던 게지.”
한밤의 어둠과 해무 속에 피스키볼라는 예쿠르와 파보르를 콩카 마을까지 배웅했다.
“그러니까, 네가 피리 부는 자임을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내가 번개 반도에서 태어나 그곳의 물로 눈과 코와 입과 귀를 처음 씻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물론 강신 사제였던 어머니의 영향인지도 모르고.”
이야기를 다 한 파보르는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댄 채 맞은편 벽에 걸린 그림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기묘한 그림이었다. 몇 백 살은 된 듯 고비늙은 노인의 형체 같기도 하고 나비의 빈 고치 같기도 했다. 라무스는 스승을 따라 그 그림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도채비족의 금제를 깬 예쿠르 님께서 치른 대가는 무엇이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