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뜻밖의 만남

by 화진


최초 신전으로 돌아간 시스는 곧장 클라비스 대사제에게 불려갔다.


“시스. 널 만나게 해달라는 사람이 있단다. 매우 급한 용무라고 하더구나. 타키툼 동쪽 신전의 클레멘스 사제의…… 편지와…… 이것을 가져왔다.”


대사제의 말이 가끔씩 끊겼다. 그녀는 참기 힘든 감정을 참는 것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사제가 가리키는 탁자 위에 검은 리넨으로 둘둘 말아 묶은 작은 무언가와 황동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래서, 타키툼에서 온 사람은 누구고 왜 절 만나겠다는 겁니까?”


시스는 검은 리넨 묶음이 주는 서늘하고 불길한 예감을 애써 억눌렀다.


“넬리사 켄트, 레이디 다피넬의 시녀. 너와 잘 지냈다고 하더구나.”


“넬리사라고요? 정말 넬리사가 왔어요? 만나겠습니다. 지금 당장이요.”


대사제는 눈빛으로 대답하고 방을 나갔다. 시스는 넬리사가 가져왔다는 두 가지의 물건을 외면한 채 멀찍이 서 있었다. 그렇게 혼자 있자니 느낌이 이상했다. 마치 그 물건들이 자신에게 눈 없는 시선을 던지고 입 없는 말을 거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었다.


잠시 뒤 대사제가 넬리사와 함께 들어왔다. 검은 색으로 몸 전체를 가리고 장검을 든 한 명의 데아 세쿠토도 함께였다.


“레이디 시스!”


넬리사는 시스를 알아보자마자 달려와 얼싸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넬리사. 어떻게 된 거죠? 무슨 일이에요?”


“정말 두렵고 겁이 났다고요. 그래도 이렇게 여기까지 왔으니까 나, 잘 해낸 거예요. 그렇죠? 저기 저 여신의 기사가 동행하면서 지켜줘서 가능했던 것이긴 하지만 나도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짜냈어요.”


여기까지 말한 넬리사가 시스를 놓아주고는 어깨를 떨며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울음이 섞이긴 했지만 넬리사의 말은 알아듣기에 무리가 없었다. 시스는 손수건을 꺼내 넬리사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진정이 되면 천천히 차근차근, 하나씩 말해줘요.”


시스가 넬리사를 의자에 앉히고 자신도 앉았다.


“레이디 시스와 말리티아 님이 갑자기 사라지고 나서 레이디 모데샤께서는 돌아가셨어요.”


데세르가 시스에게 흑주술을 쓰면서 반력을 고모할머니인 모데샤에게로 돌린 탓이었다. 피의 흑주술을 쓰면 반드시 반력이 발생하므로 마가나 마구스는 그 반력을 직접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과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을 이용해 왔다.


시스와 눈이 마주친 대사제가 입모양으로 ‘반력’이라고 말했다. 시스는 애석하고 화가 난다는 낯빛이었다.


“그리고 데세르 공작님께선……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아니 이 표현은 맞지 않아요.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변하셨어요. 아주 잔인하고 무서운 사람으로요. 시녀장 마르타 님과 시종 레투스를 죽였어요.”


“그들을 왜?”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두 사람이 레이디 다피넬을 다른 곳으로 피신시키려고 했다나 봐요.”


“피신? 무엇으로부터? 설마 데세르 공작으로부터?”


시스는 마르타를 떠올렸다. 그녀는 백주술을 구사하는 주술사였다. 그다지 수준 높은 주술사는 아니었지만. 그 마르타가 눈치챘을 가능성은 있었다. 데세르가 피의 흑주술을 구사하는 강력하고 사악한 마구스로 각성한 것을.


“아마도요. 레이디 다피넬을 제외한 모두가 공작님을 두려워하고 꺼리게 되었으니까요. 레이디 다피넬만이 공작님께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직언을 하셨으니까요. 두 분은 많이 다투셨어요.”


“넬리사를 여기 보낸 건 레이디 다피넬이군요. 맞죠?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고?”


“클레멘스 사제께서 알려 주셨다고 하셨어요.”


“클레멘스 사제께서는 어떻게 아셨을까?”


의문에 잠긴 시스에게 대사제가 말했다.


“내가 단서를 준 것 같구나. 그렇지만 클레멘스도 확실히 알고 넬리사를 여기로 보낸 것은 아닐 게다. 내가 준 단서라고 해 봐야, 네가 오티움에서 청동 상자를 열었던 건으로 급한 보고를 받고 나서 클레멘스에게 전서매를 보내 ‘시스는 잘 지내는가?’라고 물어본 게 다니까.”


대사제는 차가운 레몬수를 컵에 따라 넬리사와 시스에게 건넸다. 넬리사는 목이 꽤 말랐던 모양으로 숨도 쉬지 않고 한 컵을 훌쩍 비웠다.


“시스 네가 나에게 각별한 아이라는 걸 클레멘스 사제는 알고 있지. 그런데도 클레멘스는 네가 타키툼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나에게 알리지 않았고, 난 오티움의 연락을 받고서야 네가 타키툼에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클레멘스를 떠본 거야. 그 편지를 받고서라도 타키툼에서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른대로 고하기를 바랐던 거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네가 여기 최초 신전에 도착하던 날 나는 클레멘스에게 사제 소환장을 보냈고, 그녀는 또 무응답이었지. 그래서 저 데아 세쿠토를 타키툼에 파견했던 거야.”


이후의 상황을 시스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클레멘스 사제께서 데아 세쿠토에게 도움을 청했나 보군요. 저것들을 넬리사에게 맡겨 저에게 전하려고 클레멘스 사제와 레이디 다피넬이 미리 계획을 짰을 거예요. 틀림없어요.”


“그랬던 것 같아요.”


넬리사가 동의했다.


“클레멘스 사제가 저 아이 편에 나에게 보낸 편지에, 타키툼에서의 일이 정리되면, 그때 자신이 살아 있으면 반드시 사제 소환에 응하겠다고 씌어 있었다.”


대사제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제가 데아 세쿠토와 함께 출발할 때는 무사하셨어요. 클레멘스 사제도 레이디 다피넬도요. 레이디 다피넬은 조금 다치시긴 했지만요.”


곁눈으로 흘깃 검은 리넨 묶음을 보며 넬리사가 말했다. 그녀는 또 다시 어깨를 가늘게 떨고 있었다.


“다치셔? 왜? 어떻게?”


다급하게 묻는 시스의 시선도 검은 리넨 묶음에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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