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코르누의 소유권

by 화진


“저 검은 리넨에 싸인 것을 꺼내 저에게 건네시려던 참에 데세르 공작님께서 들이닥치셨죠. 공작님이 레이디 다피넬로부터 저것을 빼앗으려 하셨고, 두 분 사이에 과격한 실랑이가 벌어졌어요. 공작님께서 레이디 다피넬의 안간힘 써서 움켜쥔 손아귀에서 저것을 빼내려고 단검으로…….”


넬리사의 눈에 눈물이 방울지더니 또르르 뺨을 타고 굴러 떨어졌다. 아들이 어머니의 손가락 사이를 단검 끝으로 헤집는 장면은 참으로 슬픈 충격이었다. 아들을 그토록 아끼고 위했던 어머니였는데.


“정말로 미쳤나 보군. 세상없을 어머니께 그런 짓을…….”


탁자로 다가가며 시스가 중얼거렸다. 가까이에서 보니 검은 리넨에 어둡고 칙칙한 얼룩이 배어 있었다. 다피넬의 피였다.


“레이디께서 제게 도망치라고 눈빛과 표정으로 지시하시는 걸 어쩐 일인지 저도 단번에 알아들었죠. 밖으로 나가서 창 아래로 오라는 뜻이라는 걸요. 그래서 그렇게 했고, 제가 방을 뛰쳐나가기 직전에 클레멘스 사제님께서 주석 촛대로 공작님의 뒤통수를 후려갈기셨어요.”


대사제가 작은 소리로 ‘저런. 클레멘스 사제.’ 하고 중얼거렸다.


“공작님은 잠깐 타격을 입으신 듯했지만 심각하진 않았어요. 제가 창 아래로 갔을 때 레이디께서 저것을 창밖으로 던지셨는데, 그러자마자 공작님의 모습이 창에 나타났거든요. 클레멘스 사제님이 어떻게 되셨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곧바로 저 분이 타고 기다리던 말을 향해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달렸으니까요.”


데아 세쿠토를 눈짓으로 가리키면서 넬리사는 눈가와 얼굴을 닦았다.


“저 황동 상자 안에 든 건 대대로 포르투나 가문의 수장에게 전해지는 보물이래요. 저것을 내세우면 포르투나 가의 땅인 코르누의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대요. 레이디 다피넬께서 이르시기를, 레이디 시스에게 코르누를 맡기노라, 하셨습니다.”


타키툼 북서쪽의 작지만 부유한 영지 코르누. 그곳은 티토니아 제일의 활 생산지로 이름이 난 곳이었다. 다피넬은 키테르 프레케스와 결혼해 타키툼으로 떠나면서 자신을 대리하여 코르누를 통치할 권한을 먼 친척이자 활 장인인 네루스에게 위임했다.


“어쩌죠? 나와 데세르티온의 결혼은 이미 무효가 됐는데. 난 이제 레이디 다피넬이나 프레케스 가와 아무 상관이 없는 몸이거든요.”


시스의 말에 넬리사는 깜짝 놀랐다.


“결혼이 무효라고요? 어떻게 된 거예요?”


“넬리사도 알잖아요. 신전에서 나와 결혼한 남자가 데세르티온 공작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그걸 밝히고 신전과 왕으로부터 공식적으로 결혼의 무효를 인정받았어요.”


“아아, 그랬군요. 그럼 이제 어쩌죠? 저 두 물건을 레이디 시스에게 전하라는 데까지가 내 임무였어요. 난 그걸 완수했고, 이제 와서 다시 레이디 다피넬에게 돌아갈 수는 없어요.”


난감하다는 듯 넬리사가 시스와 대사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들 중 누구라도 좋으니 자신에게는 이 일과 관련한 더 이상의 의무나 책임이 없다는 말을 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서.


“시스. 비록 프레케스 가문과는 아무 상관없는 남남이 되었지만 그래도 역시 저것들은 네가 받아야 할 것 같구나.”


클라비스 대사제가 넬리사의 바람을 이루어주었다.


“어째서요?”


시스가 불평하듯 물었다. 지금도 충분히 난해한 갖가지 문제에 둘러싸여 있는 시스로서는 달갑지 않을 만도 했다.


“글라키에사 가의 문장은 칡부엉이고, 포르투나 가의 문장은 부엉이지. 그게 우연이 아니라는 건 너도 역사를 공부했으니 알고 있을 게다.”


대사제가 무슨 근거를 대려는지 시스는 바로 간파했다.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포르투나는 글라키에사의 지가였다. 그렇긴 해도 두 가문이 완전히 다른 가문으로 자리잡은 지가 이미 오래였다. 더구나.


“엄밀하게 따지자면 저는 글라키에사가 아니잖습니까.”


님파 라쿠스의 님페이아꽃에서 온 나이아시스. 어쩌면 물의 요정 나이아스일 수도, 어쩌면 복수의 화신일 수도 있는.


“레이디 다피넬에게는 글라키에사지.”


온화하지만 완강한 말투였다.


“그리고 말이다, 시스. 중요한 건 다피넬의 마음이다. 내 생각에 그녀는 네가 글라키에사가 아니었어도 너에게 저것들을 맡겼을 거다. 다피넬이 너에게서 본 것은, 글라키에사도 프레케스 가문의 며느리도 아닐 게야. 그녀는 네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보았기에 너에게 자신의 가장 귀중한 것을 맡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나에게는 이 상황이 그렇게 보이는구나.”


넬리사가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레이디 시스. 제 생각에는 대사제님 말씀이 옳은 것 같아요. 그리고 레이디 다피넬께서 당부하시기를 우선은 반드시 상자를 열어 보라고 하셨어요. 상자를 열어 안에 있는 것을 들어서 만져보라고요.”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넬리사도 알고 있나요?”


황동 상자를 이리저리 살피며 시스가 물었다.


“몰라요. 말씀해주지 않으셨어요. 저 검은 리넨에 싸인 건 레이디 다피넬의 언니가 남긴 유품이라고만 들었어요.”


“잠금장치 같은 것이 없어요. 어떻게 열어야……!”


알겠다는 듯이 시스가 검은 리넨을 풀었다. 거기서 나온 것은 회백색의 울퉁불퉁한 구슬 같은 것이었다. 모양이 굳이 끌어다 붙이자면 부엉이와 비슷했다.


“이게 열쇠일지도 몰라요.”


시스가 구슬을 들어 올렸다.


“그건 사람의 뼈에서 나오는 구슬이구나. 레이디 다피넬의 언니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던 듯하구나.”


대사제가 구슬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탄복했다.


“굉장히 선하고 뛰어난 분이었다고 들었어요.”


구슬을 보기 위해 시스의 옆으로 온 넬리사가 말했다.


“여기 부드럽게 패인 부분에 이걸 놓아 볼게요.”


황동 상자 표면의 일그러진 면과 구슬의 울퉁불퉁한 면이 딱 맞았다. 이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희미하게 ‘달칵’ 소리가 나면서 상자 뚜껑과 몸체 사이에 미세한 틈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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