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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새벽 Oct 25. 2024

내 눈보다 아이들의 눈

 며칠 사이 제법 날씨가 쌀쌀해졌다. 오래간만에 저녁운동을 하는 호사를 누리고 씻고 나오는데 둘째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남편에게 뭔가 야단을 맞는 분위기이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니 어떤 상황인지 대충 파악이 된다. 웬만해선 쉽게 화내지 않는 남편에게 크게 야단맞은 둘째는 자러 들어가 잠자리에 괜한 화풀이를 한다. 늘 아빠 옆에서 자더니 아빠와 가장 먼 자리로 베개를 홱 옮겨가는 것이다.


 내가 야단칠 때에는 몰랐다가 남편이 야단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이에게 이것도 과해 보이고 저것도 심해 보인다. 그렇다고 섣불리 아이를 감싸줄 수도 없는 노릇. 누워있는 둘째 옆에 잠시 누웠다. 아빠와 둘 사이를 풀어주려고 조곤조곤 시작한 대화가 다시 꾸중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아이도 자신의 잘못이 인정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의 수긍에 내 마음이 흡족하다. 그런데 그 흡족함이 이상하게 조금 찝찝하다.


 아이들 오전 일정이 끝난 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막내가 엄마를 찾지 않는 동안 부리나케 읽어 내려간 책에서 특별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일상 가운데 행복을 찾는 것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었다. 어렸을 때에는 너무도 당연해서 진부하게 느껴졌던 행복론이 세 아이를 돌보는 엄마가 되어서는 참 오랜만이고 신선하게 느껴진다. 내가 실제로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것에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양 살아왔기 때문에 그 행복론의 진면모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 가운데 행복한 순간을, 보석 같은 순간을 찾아보자고 다짐하던 때가 있었다. 그 보석 같음은 누가 봤을 때 보석 같은 것이며 행복한 순간인 것인지 묻게 되었다. 그 찝찝한 흡족한 마음에서 말이다. 아이에게는 최악일지도 모를 그런 순간에서조차 내 마음이 흡족하도록, 내 마음을 만족시키라고 아이에게 요구한 것 같다. 다시 말해 내 마음이 조금 흡족하던 그 순간은 아이에게는 엄마에게 다시 야단맞는 최악의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행복한 순간은 아이에게도 행복한 순간일까. 아이에게는 어떤 순간이 보석 같은 순간일까. 적어도 내게 만족스러운 시간이 아이에게는 최악의 순간이 아니어야할텐데 말이다.


 온 가족이 함께 보았던 아름다운 공원의 녹음들이 아빠와 엄마 눈에는 흡족했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에게는 초여름의 더위에 공원 길모퉁이의 작은 구멍가게에서 사 먹은, 시원하고 단 쭈쭈바가 더 기억에 남을지 모른다. 편의점이나 슈퍼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경치만 아름다운 공원에서 수풀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갔더니 짜잔 하고 나타나듯 구멍가게가 갑자기 나타났다. 담배와 음료수만 팔 것 같은 가게 한 귀퉁이에 아이스크림 냉동고가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쭈쭈바 하나씩 입에 물고 다시 나온 공원의 녹음은 아이들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엄마인 나에게는 그 공원의 눈부신 녹음이 강렬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쭈쭈바의 달콤함이 더 강렬한 기억일 것이다.


 내가 원하는 홈스쿨링과 아이들이 원하는 홈스쿨링이 다른데도 아이들은 어떤 행복을 찾고 있었는지 이제야 돌아보게 된다. 요 며칠, 일상에서 도대체 어떤 보석을 찾을 수 있는지,  아이들에게 화만 푹푹 내고 있는 이 현실에서 어떤 아름다운 게 있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아름다운 것,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것을 먼저 들여다보라는 것은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일상에서 아름다운 것을 찾는 일은 내 안의 것을 비우고 내가 찾던 이상을 내려놓고 아이들의 것을 내 안에 채울 준비, 아이들에게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시작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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