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엄마꺼 같이 쓸래?
1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을 휴직자의 신분으로 지내왔다. 첫 아이를 출산하면서 시작된 육아휴직이 둘째 아이, 셋째 아이를 낳고 기르기까지 계속되어온 것이다. 둘째 아이를 낳고 얼떨결에 시작한 홈스쿨링 때문에 복직이 불투명해지고 셋째 아이의 발달문제로 엄마손이 더 많이 필요한 상황에 처하면서 복직에 대한 마음을 거의 접었다. 그럼에도 아직 몇 달 남은 휴직기간 동안 마음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지내왔다.
“선생님,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되세요?”
오래간만에 연락하신 교감님께서 복직계획을 물어오셨다. 그리고 수없이 기도하고 확인받고 다시 기도해 왔던 문제와 그답을 교감님께 말씀드렸다. 복직계획이 없노라고. 놀란 교감님이 전화를 주셨고 종이 위로 꾹꾹 눌러 적듯 한번 더 말씀드렸다.
퇴직이 아니라 의원면직이라고 하신다. 자진하여 일을 그만두는 상황. 하던 일을 그만두고 홈스쿨링의 길로 넘어온 지인으로부터 “휴직 상태와 퇴직 상태는 느낌이 완전 달라요. 그 상실감이란..” 으로 시작하는 하소연을 자주 들어왔다. 복직과 퇴직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해주시는 걱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의외로 교감님께 의사를 전하는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은 ‘해방감’이었다. 홈스쿨링과 교직 두 개를 모두 쓸 것도 아니면서 한 손에 쥐고 질질 끌고 왔던 10여 년의 결과였다.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 (사도행전 4:32)
신약성경 중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초대교회에 대한 말씀이다. 공동 소유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왜 초대교회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이상적으로 잘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눈에 들어온 대목은 ‘공동’으로 사용하였다는 부분이다. ‘공동’에 해당하는 원어 ‘코이노스’의 의미에는 ‘(제의적으로) 더럽혀진, 불결한’의 뜻이 있다.
내 물건을 나 혼자서 사용할 때에는 깨끗하게, 흠없이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내 물건을 공용으로 내어줄 때에는 깨끗하게 유지하는데 큰 수고가 필요하다. 어쩌면 혼자 사용할 때처럼 무결하게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럽혀질 것을 감수하고 내어놓는 것, 그것이 코이노니아(‘사귐’의 헬라어)를 이룬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는 10여 년 내내 그 싸움을 한 것 같다. ‘내꺼야’싸움. 내 삶을 내 것으로만 쓰고 싶고 완전 무결하게, 마치 결혼하기 전 혼자 살던 그때처럼 삶을 영위하고 싶은데 아이들이 하나둘씩 치고 들어온다. 내 삶을 자기네 손에 쥐고 흔드는 아이들에게서 ‘내껀데.’, ‘이것만큼은 안돼.’하고 필사적으로 지켜내기 위한 싸움. 어쩌면 말도 못 하는 아기시절부터 ‘엄마꺼 같이 쓰자, 같이 쓰면 안 돼?’로 일관하는 아이들에게 시달려온 것 같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아이들에게 내꺼라고 생각했던 것을 온전히 내어주라고 하신다. 이제는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내어주라고 하신다. 그게 온전한 사귐을 이룬다고.
일부러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써도 같이 일찍 일어나 엄마를 몇 번이나 찾고 내 루틴이라고 생각했던 흐름을 몇 번이나 끊어놓는다. 하지만 그렇게 내 삶을, 내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함께 쓰는 것으로 내어줌이 온전한 사귐, 초대교회의 그러한 사귐을 이 시간 우리 가정에 이루신다고 하신다.
아이야, 이제 엄마꺼 같이 쓸래? 엄마꺼가 이제 네꺼야. 엄마만 쓰려고 해서 미안해. 이제 같이 쓰자. 아버지의 것이 다 내 것인 것처럼 내 것을 너에게 내어주고 건네줄게. 위로부터 부어질 그 사귐을 이제부터 누려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