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면 알게 되는 것

by 푸른새벽


건강상의 이유로 커피를 끊었다. 커피 좀 줄여야지 줄여야지 할 때에는 커피가 그렇게 그립고 줄지가 않더니 의사에게 한 마디 듣고는 정신이 번쩍 들어 끊기로 했다. 금단증상인지 약간의 두통이 있긴 했지만 수월하게 커피를 끊어내는 중이다. 커피를 끊어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이렇게 수월했던 적은 처음이다.


커피를 완전히 끊어낸 후에야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나는 의외로 커피를 안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중독인가 싶을 정도로 커피를 끊어내지 못했지만 사실 맛으로 마셨다기보다 몸이 쳐질 때마다 피로감을 쫓기 위해 커피를 찾았다. 피곤한 날이면 커피를 더 찾고 카페인 특성상 순간적인 각성효과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몸은 더 피곤해졌다.


끊고 나서야 내가 실은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참을 끊은 후 다시 마셔본 커피는 내가 생각했던 맛이 아니라 몇 모금 맛 보고는 더 마시지 못했다. 그러고 커피를 대체할 음료를 찾아보겠다고 편의점 음료 매대를 어슬렁거리고, 카페에 갔을 때에도 논 카페인 음료 메뉴를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선택한 음료마다 그렇게 큰 만족감은 없었다. 이것도 충격이었다. 나는 평생 음료를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고 살았다. 갈증을 느낄 때도 물 대신 음료를 찾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커피를 끊고 나서야 음료에도 그렇게 큰 맛을 못 느끼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미니멀리스트다. 어려서부터 정리하고 비워내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미니멀라이프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 있다. “버리고 나면 내가 비로소 보인다."라는 것이다. 욕심으로 이것저것 손에 가득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나면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나를 묶고 있는 결박이나 사슬 같은 것들을 끊어내는 것과도 같다. 내가 속고 살아왔던 것들에 대한 조명이 이루어지는 일과도 같다.


커피를, 음료를 좋아하는 줄 알고 평생 살아왔지만 버리고 나니 내가 어쩌면 속고 살아왔구나 싶다. 물론 마시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 요즘은 보리차, 옥수수수염차 같은 것들이 편하고 좋다. 진짜 나를 찾아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내가 나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또 있진 않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세 아이를 십여 년째 홈스쿨링 중이다. 교육에 그만큼 관심도 많아 이런저런 부모 훈련도 받고, 책도 많이 읽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훈육’에 대해 생각이 많아 아이들을 어떻게 보면 잡을 때도 있었다. 규칙을 세우고 야단치고 하는 것이 훈육의 전부인 줄 알았다. 아이들이 크면서 부모인 나의 지경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지만 내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질 때면 순간순간 아이를 잡으려고 들 때가 있다.


아이가 말을 잘 들어야 내 마음이 편해지는 줄 알았다. 물론 말 잘 듣고 손이 안 가게 알아서 잘하는 아이를 싫어할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사실 나는 아이들을 우격다짐으로 말을 잘 듣게 하는 것보다 말을 잘 들을 수 있도록 상황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쪽이 더 마음이 편하다. 다시 말해 나는 실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실랑이할 필요 없이 내가 먼저 말 잘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무 명이 넘는 학급의 아이들에게 공 하나 던져주고 싸우지 말라는 것은 아이들에게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것이다. 공을 적어도 두세 개는 던져주고 그룹을 만들어주는 배려 정도는 해줘야 한다. 싸우지 말라고 했으면 싸우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주라는 것이다. 교직생활을 하며 아이들을 대할 때 늘 기억하려고 애쓴 부분이다.


아이들을 억지로 바르게 잡아야 내 마음이 편해지는 줄 알았다. 한참을 그렇게 속고 살아온 것 같다. ‘아참, 나는 실랑이를 안 좋아하지.’라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알아가는 일은 참 기쁜 일이다. 내 눈을 가리는 덮개를 벗어던지는 일이고 어쩌면 내 몸을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게 하는 결박을 끊어내는 일이다. 결박이 끊어진 곳에서 새로운 살 길이 열리기도 한다. 쓸데없는 품을 들이지 않고도 걸어갈 수 있는 새 길이다. 미니멀라이프에서 시작한 단상으로 아이들과 함께 걷는 길에서 내가 억지로 지고 있던 무거운 멍에를 벗게 되었다. 쉽고 가벼운 멍에와 함께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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