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노력없이 잘하는 사람들?
가끔 이런 사람들이 있다. 태연자약하게 내가 그리도 원하는 것들을 가진 사람들. 자신감 있고 느긋한데 내가 원하는 관계능력, 지위, 실력을 갖춘 사람들. 거기에 멋들어지게 덧입혀진 그들의 여유 덕분일까, 그런 사람들은 나와는 타고난 게 다른, 멋진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언제가... 언젠가는 공부를 더 잘하고 싶던 평범한 학생이었기 때문일까. 안절부절하지 않아 하면서도 가질 건 다 가진 그들의 여유로운 태도가 꽤나 부러웠다. 마치 천재... 그래, 타고난 천재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러 명이 모여서 얘기를 하는 테이블에서도 여유롭게 화젯거리와 오가는 말들을 이끌어나가거나, 다양한 주제를 쉽게 풀어내는 능력, 매일 초조하게 공부하는 것 같지 않더라도 학교 수업을 잘 쫓아가는 친구들 등, 그게 무엇이던 ‘잘하는데 여유로운’ 그들의 작태가 나는 꽤나 부러웠던 것 같다. 뭔가 쉽게쉽게 잘하는 사람들.
이런 생각은 석사과정 공부를 하고 유학 준비를 하게 되면서 심화되었던 듯하다. 나는 석사과정을 국내 소재 국제대학원에서 밟았다. 교수진은 모두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박사를 밟은 분들이었고, 학생 구성도 반은 국제학생, 반은 직장인과 소수의 일반학생으로 구성되었었다. 일반학생들은 대체로 유학파 혹은 영어권 문화에 오랫동안 노출되었던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비록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꽤나 많이 들었다 해도, 나는 미국식 수업 진행, 발표 방식, 리포트 작성 등에 여타 학생들보다는 비교적 덜 익숙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방대한 양의 문서를 읽고 요약정리해서, 유려하게 발표하는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꽤 멋있어 보였다. 나는 영어 서적의 한두 챕터를 읽는 것조차 어려운데, 몇몇 학생들은 여러 가지 책을 읽고 그 의견을 깔끔하게 종합한 뒤 발표까지 막힘없이 해내었던 것이다. 거기다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을 때, 여유있는 태도로 유려하게 다양한 주제에 자기의 의견과 생각을 말하는 모습들이 이 사람들은 ‘천재’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다. 그건, 그들의 능력과 여유로운 태도에 대한 동경이자 부러움이었을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유학에 실패했을 때 뭐든지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 ‘천재성’이란 걸 가지게 되면 나도 공부를 잘하게 되고 심지어 여유롭고 멋져 보이기까지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또,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도이면서 태생이 워낙 호기심도 많다 보니, 천재성이랄까- 그러한 것들이 무엇이고 어떻게 얻어지는지 궁금했던 것 같다. 저런 특성들을 내가 ‘천재성’으로 명명했던 점이 보여주건대, 그건 내게 신비롭고, 또한 한정된 사람들만 가지는 특별한 능력 같은 것으로 보이기도 했었다. 적은 노력을 들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저렇게 잘하느냐 라는 미스터리였다.
이런 나의 천재성에 대한 열망과 호기심에 대해 사람들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그중 재미있었던 것은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의견이었다. 나는 더 잘하고 싶고, 더 여유롭고 싶고, 심지어 그걸 쉽게쉽게 하고 싶었을 뿐인데, 마치 내가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천재성을 궁금해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속도를 그냥 존중하라는 말들. 자존감과 자기만족의 시대에서 나는 모난 돌이자 이해되지 않는, 불행과 걱정의 씨앗을 매번 꽃 피우는 그런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렇게 나의 천재성 획득에 대한 여정은 시작되었다. 나의 탐구는 대략 6개월 정도 이어졌던 것 같고, 공부를 쉽게 잘하는 법, 이야기를 쉽게 잘하면서 대중을 선도하는 능력 이런 것들이 궁금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여유로운 태도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내가 생각한 천재성의 특징은 빠르게 방대한 양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닥치는 대로 읽기’ 연습을 시작했다. 사실, 천재성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탐구력과 시도 자체가 누군가에겐 우스운 시도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막상 이 시도를 해보니까, 예상외의 결과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건 읽기 능력의 엄청난 향상, 그리고 기존의 공부법에 얼마나 허점이 많았는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예를 들어, 이전까지는 내용을 순차적으로 꼼꼼하게 읽으면서 시간을 굉장히 많이 투자하는 방식의 공부법을 썼었다. 그런데 천재의 특징으로 생각했던, ‘빠르게 방대한 양을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니, 내용의 중요도에 따라 순서를 정해 공부하게 되었고, 읽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 문장을 읽어도 집중해서 읽었으며, 문장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에 방점이 찍혔다.
이 과정에서 깨달았던 재미있는 점은 우리는 ’읽은’ 내용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바로 실험을 해보고 싶다면, 지금 제일 가까이에 있는 책을 아무 곳이나 펴서 2장 정도 읽은 후에 책을 보지 않고 내용을 간추려 보자. 내가 잘난 척을 하고 싶은 사람을 한 명 가상으로 앞에 두고 설명해보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지식적으로 구멍이 없도록. 막상 방금 읽은 내용을 떠올려보면 추상적으로만 어떤 내용이었는데... 하고 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눈이 훑어내렸다하더라도 그 문장과 문단, 그리고 챕터, 나아가 그 책의 의도와 의미를 우리는 간결하게 얘기하지 못한다. 바로 앞전에 ‘읽은’ 것임에도 내가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빨리 읽는 것을 시도해보면 한 권의 책에 담겨있는 다양한 내용들에 우선순위를 주고 집중력 있게 읽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모든 것을 빨리 읽어낼 필요는 없다. 중요한 부분은 주의깊게 시간을 투자해서 이해하고, 보지 않고 요약해낼 수 있게 생각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다만, 빨리 읽는 것을 한 번이라도 시도해보면, 최고 독서속도를 늘리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또한 독서 집중도를 내 의도에 따라 조절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천재들은 아마도 지식 습득을 이렇게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하고 있지 않을까.
어느 날 우연찮게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난 그 친구의 여유로운 제스처와 표정이 꽤나 멋지다고 생각했다. 경청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과 의도를 빠르게 이해하고 그에 알맞은 답을 척척 해주는 그 모습도 멋있었다. 그리고 어디서 누구와 대화를 하던 그의 여유로운 태도는 일관적이었다. 새로운 가게에 들어가 새로운 음식을 먹는다거나, 조금 어색한 상황에 처해져도 항상 여유로운 태도를 견지했다.
그게 내게는 신비로웠던 것 같다. 그 과정이 궁금했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는 조금 더 쉽게쉽게 뭐든 해내는 것 같았으니까. 특히, 한국에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서구권 사람들과 일하거나 친구가 된 나에겐 더 그랬다. 어떻게 내 의견과 생각을 전개하고, 혹은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고민도 가지고 있었다. 조금 더 자연스럽고 재미있으면서도 여유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여유로운 태도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그 친구에게서 내가 조금 더 발전시키고 싶던 대화술의 원리를 캐내고 싶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여유로워? 넌 어느 상황에서도 자신이 넘치고 여유로운 것 같아. 그건 어떻게 하는 거야?”
약간은 바보같은 질문이었겠지만, 지긋이 듣고 있던 그 친구의 답변은 꽤 심플했다. 그건 바로, “익숙해서.”였다.
알고 보니 이 친구는 영국, 호주, 프랑스, 미국에서 자란 친구였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전학도 자주 다니다 보니,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문화권에서 생활하는 것이 차츰 익숙해졌다고 한다. 그렇게 옮겨 다니면서 그 친구는 다양한 문화와 사람을 경험한 것뿐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 처하는 것 자체가 익숙해졌던 것이다. 그 친구는 대화할 컨텐츠가 많았고, 전달력이 훈련되어있었고, 무엇보다 새로운 상황에서 의견을 전달하는 것 역시 익숙했던 것이다.
이런 작은 발견들을 통해 나는 내가 갖지 못한 지식이나 능력을 쉽게 획득하고 사용하는 이들을 ‘천재’로 부르며 키워온 환상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보니 깨닫게 된 것은, 천재는 단순히 타고난 능력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 빠르고 효율적으로 습득해내는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잘하는데 다 이유가 있더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연구원인 나는 업이 공부이기 때문에, 그리고 논리적이고 자신감 있는 대화가 도구인 사람이기 때문에, 공부법과 대화에 대해 특히 많이 고민해보았던 것 같다. 내게는 새로운 공부법이나 독서법, 대화술의 발전이라고 볼 수도 있는 여정이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다른 분야에 종사하시더라도 누구나 동경과 환상의 대상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들 역시 사람이고 그들의 능력도 사람의 능력이라 생각하며 차분히 퍼즐을 풀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과정이 절대로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주변에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진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곤 한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은 나와 달라. 그래서 그렇게 힘들이지 않아도 잘하는 걸 거야.”라고 쉽게 애기하기도 한다. 내가 여태 이야기했던 천재에 대한 환상 자체가 이런 생각을 내포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록 출발선은 다를지 몰라도 ‘천재’ 역시 능력을 발전시킬 계기와 과정을 거치게 된다. 과정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물질적, 환경적 차이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고, 타고난 성격적 장점이 능력적 재능에 날개를 달아줬을지도 모른다. 그 길을 아주 효율적으로 닦아준 멘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요소들이 나의 능력을 결정하도록 두고 싶지는 않다. 난 잘하고 싶은 열망이 너무 강해 다른 요소가 얼마나 한정적이었는지보다,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 데 초점을 두었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바가 있다면 한 번 해보면 되는 것이니까. 그래서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분법적 접근을 버리고 ‘그냥 해’보면서 점차 더 나은 습관과 행동, 생각 패턴을 익히면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들의 능력을 모방하고자 했던 나만의 실험을 돌이켜보건대, ‘천재’들이 효율적이고 빠르게 뛰어난 능력을 만드는 과정은 천천히 달리는 것과 빠르게 달리는 차이와 같은 고통이 수반된다. 당연히, 빨리 많은 것을 하려면 그만큼 힘이 드는 것이다. 다만 ‘천재’들은 그 과정을 일일이 광고하고 다니는 것 대신, 홀로 열심히 꾸준히 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혹은 타인들은 그저 결과밖에 볼 수 없기에, 그 과정을 잘 보지 못한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누가 노력 없이 갑자기 수준을 높일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그저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안 보이게, 경험과 실패, 자기의심을 거치며, 힘들여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면 이 과정이 조금은 수월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익숙해지고 습관화될수록 지식의 축적과 능력 향상에 ‘가속’이라는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다.
내 자가실험에 대한 결론은 이렇다. ‘천재’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나와 다른 방식으로 능력을 쌓는 사람들이며, 그 과정에는 그만큼의 댓가가 따른다. 내가 가지고 있던 ‘그들’은 쉽게, 잘, 할 수 있다는 환상은 나의 단순한 어림짐작이었을 뿐이다.
아마도 많은 현명한 분들이 세상에 ‘천재’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이미 아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면서 조금은 기운이 빠지고 있다면, 이제 한번쯤 ‘될 때까지 모방’해보며 ‘천재성’을 터득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