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로우 Sep 16. 2022

제멋대로 난 털과 세번째로 맛있는 음식의 공통점

자유의 행복

어떤 설문을 보니 한국 직장인들이 일하면서 제일 힘든 부분은 자기 생각을 말하기 어려운 환경이란다. 성정체성도 그렇다. 옥스퍼드에 보면 수염을 기르고 치마를 멋쁘게 입은 남자들이 너무나 많다. 머리털, 얼굴털, 옷, 종아리털도, 겨드랑이털도 다 제멋대로 해둔다. 그 이유가 멋 때문일 수 있고, 정체성의 표현 혹은 사회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인간으로 살면서 자연스럽게 살게 되는 모습일 수도 있다. 한국만큼 세련되고 정제되어 있고, 어떤 틀에 맞추기 위해서 너무 노력해도 되지 않는 사회가 세상에는 많으니까. 


저번 어떤 행사에서는 너무나 아름다운 밴드 보컬이 실크 초록 드레스를 입고 재지한 노래를 부르는데, 팔을 번쩍 드니 겨드랑이에 털이... 그런 트렌드를 알고는 있었지만 본 건 사실 처음이라 정말 깜짝 놀랐다. 무대 위에 정말 우아하고 멋지게 노래하던 보컬이으니까. 그리고 그런 보컬들을 보통 매끈한 다리와 겨드랑이, 우아하게 구부러져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있었으니깐. 그러나 이내, 사람이 사람 몸을 가지고 사는데 언제부터 털을 밀어야 했지? 싶었다. 또한 반대로, 표현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이도 있다. 그것 역시 존중되어야 하는 자기 본연의 모습이겠지? 잘 돌아가는 사회라는 건 그런 개인들이 자기 본연이 될 수 있으면서도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회가 아닌가 싶다. 그만큼 타인에 대한 존중과 희생도 필요하고 말이다.


옥스퍼드에 돌아와 벌써 2주가 되었다. 옥스퍼드가 조금씩 재미가 없다고 느낀 것은 내가 나를 있는 대로 표현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멋대로, 생각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즐기기가 어렵다...뭐 이런 거랄까? 사람들이 의사소통하는 방식이 다르고, 신뢰가 깊은 친구의 유무,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친구의 유무가 또 영향을 크게 준다. 내가 별난 부분도 있을 것이요, 나이 좀 먹은 이민자의 초기 정착이라는 것이 대체로 이렇기도 할 것이다. 조금 더 익숙해지고 바운더리를 설정해나갈 수 있을수록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만.


그래서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알아가고, 상대방 입장에서 바라봐주는 연습이 더 필요하면서도, 또 그와 동시에 내가 생각하는 바, 원하는 바를 분명하게 더 표현하기로 했다. 사실 난 은근 예스맨이라 내가 나를 위해 쓰고 싶은 시간을 곧잘 포기했다. 그러나 때로는 '노'라고 하는 나를 '그러면 안 된다' 하는 이도 있었다.


보수적인 문화일수록 개인이 원하는 것을 어떠한 구실로 누르는 경우가 많다. The Righteous Mind라는 책을 정말 감명 깊게 읽었는데(!), 요는,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것보다 'gut feeling'상 틀리면 틀리다고 말하기 위해 집단이나 종교의 규율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데 오래 노출될수록 개인의 개성이나 분명한 생각이 많이 떨어지게 되고, 자기 불신이나 자존감의 하락 같은 것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이곳의 개인적인 문화에서 원하는 대로 살기란 적어도 내게는 시도가 필요한 부분이다. 모든 것을 팀원, 친구, 어른과 함께 하다가 옆에 앉은 이와 밥을 같이 먹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렇기에 때로는 당황스럽지만 대신 내가 원하는 것을 먹고 입고 소비하고 생산하며 그 시간을 보낼 수 있기도 하다. 내가 뭐가 먹고 싶은지, 뭐를 하고 싶은지 표현할 기회가 많고, 그렇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내 취향을 알게 된다. 나는 내가 한 번도 표현하지 않고 주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내 일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부분이 이렇게 커본 적이 있나?


당신이 고른 메뉴보다 다른 메뉴가 사실 이 음식점에서 더 유명하다고 하는 이도 없고, 사실 다른 활동이 더 유익하다고 하는 이도, 사실 다른 게 더 효율적이라고 계-속 말해대는 이가 없다. 우리는 언뜻 교육의 분위기만이 생각의 표현을 돕는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놓고 제일 유명하지 않고, 제일 가성비가 떨어지는 음식을 단지 원하기 때문에 시켜본 적이 나는 없는 것 같다. '핫플'에 줄 서지 않아도 된다. 한층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코로나 마스크 거부 시위가 보여준 것처럼 개인이 원하는 것이 우선시된 사회의 이면도 있다. 부스터까지 맞은 이 시대에 아직도 지나친 법적 규제를 하는 국가들 혹은 사회구성원간 지나친 간섭과 비난을 하는 국가들의 모습은 반대로 경제사회와 개인 간 밸런스가 무너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뻔한 말일지는 몰라도 행복한 사회, 행복한 개인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결국 나와 상대의 욕구간 밸런스, 존중, 그리고 표현이 결국 중요한 것 같다. 사람은 자기 본연일 수 있을 때 제일 행복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