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방법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세상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
살다 보면 진실과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진실들 사이에 있는 거짓을 알아보고 가려내거나, 진실인척 하는 거짓과 진실을 거짓으로 보이게 하는 거짓들을 분별해 내는 것은 참 어렵지만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그것에 대한 주체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결국 내 인생을 안전하고 발전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개인의 삶을 열심히 노력하며 산다 해도 이 세상이 흘러가고 있는 방향이 거짓된 것이었다면 커다란 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의해 작은 점과 같은 나의 존재가 휩쓸려 갈 수도 있다. 만약 그것이 거짓인지 몰랐다면, 휩쓸려가면서도 나를 위한 진실이었다고 믿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세상이 보여주는 정보가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키우는 것은 개인의 영역에서 성실히 노력하며 사는 것만큼, 때에 따라서는 그 이상으로도 중요할 수 있다.
세상의 많은 정보는 진실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정보는 '자본의 흐름'을 만드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그 목적에 의해 거짓이 진실인 것처럼 생산되기도, 특정 부분만 가려지기도, 진실자체가 아예 사멸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정보가 제공되는 '프레임'을 파악하고 표면적으로 보이는 정보 그 이면의 이면까지 파악하고 따져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왜 이 정보를 지금 제공하는 것일까?' '정보 중 이 부분은 왜 가려진 것일까?' '이 정보는 무엇을 의도하는 것일까? '와 같은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무엇이 거짓인지 파악하기 힘들 때에는 '일관성'을 따져보는 것도 좋다. 거짓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일관성 없이 필요에 의한 가짜진실을 만들고 유도한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변함없는 결을 가지고 있다. 거짓의 조각들은 서로를 이어주고 관통하는 기준이 없지만 진실의 조각은 본질적인 핵심을 향하고 있으며 모두가 맞춰졌을 때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다.
그리고 거짓은 정보 그 자체로서 순수한 목적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 이면의 또 다른 목적으로 이끌기 위한 기능을 하는 수단일 뿐이다. 진실은 진실자체이기 때문에 그 이면의 추가적인 목적성을 갖고 있지 않다.
가장 가려내기 어려운 것은 진실에 일부의 거짓이 섞여있을 때이다. 이 때는 핵심적인 부분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따져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완전히 진실인 것만을 찾으려 하면 일부가 거짓이고 본질적인 부분은 진실인 정보를 거짓으로 오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을 가리기 위한 어떠한 의도가 원하는 방향으로 휩쓸려 가는 길일 것이다. 두 가지 방향의 정보가 대치되고 있을 때에는 '핵심적인 부분'에서 무엇이 진실인지를 기준으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특정한 정보 중 아직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거짓으로 결정하지 않고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때까지 공란으로 남겨두는 것 또한 진실에 가까워지는 데에 도움이 된다.
우리가 무엇을 진실로 믿느냐에 따라 그 정보는 힘을 얻고 실질적인 세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개인들은 진실을 판별할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단편적으로 정보를 판단함으로써 너무 쉽게 믿을 권리를 넘겨주지 않고, 주체적으로 충분히 따져보는 것을 선행하는 것이다.
정보를 큰 그림 속에서 거시적으로 보고, 또 작고 세부적인 부분을 따져보며, 그 정보의 앞과 뒤의 흐름도 살펴보고 맥락을 읽으면서 파악하다 보면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진실의 가닥'을 잡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