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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에 대하여

'지나간'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by flowbella





용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착하게 살려고 마음먹어도 세상에 치이다 보면 사람들이 가만 놓아두지 않는 느낌이 든다. 선한 마음으로 웃으며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도우려 마음먹어도 오히려 만만하게 생각하고 이용하려 하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혼자만 착하게 살려고 마음먹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상엔 악이 넘치고 결국 남보다 앞서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닐까? 더구나 나에게 잘못한 사람, 날 무시하고 상처 준사람을 용서할 필요가 있을까?


나도 참 오랫동안 미워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정확히는 나에게 상처를 줬던 특정한 사람뿐 아니라 상처받으면서도 믿었던 바보 같은 나 자신과 보고만 있었던 많은 사람들을 포함한 '그때의 기억 전체'가 미움의 대상이었다.


상처받은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 잊은 듯하다가도 문득 떠올라 생생한 고통을 준다. 잠을 자기 전이나 씻을 때처럼 일상의 긴장을 내려놓았을 때 틈을 비집고 들어와 다시 나를 괴롭힌다.


내가 찾은 용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계속 이어지는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이다. 얼마동안은 그 사람에 대한 미움과 분노로 가득 차 똑같은 상황을 하나하나 되새기고 재생하며 곱씹었다. 그렇게 곱씹을수록 내 감정은 더해지고 그 사람의 잘못이 더 선명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날, 몇 년이 지나도 계속되는 머릿속 드라마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용서받을만해서나 그의 죄가 가벼워서가 아니라, 내가 그때의 기억 자체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어서 용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그 사람은 내 인생의 영역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 상태였다. 그 사람 없이 흘러온 시간이 꽤 됐지만 나 혼자만 덩그러니 과거의 상처받던 자리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그를 용서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내 상처가 깊어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 수 없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를 단죄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그 사람의 잘못을 잊으면 그가 잘못했음을 세상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나의 억울함이 해소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잊는다고 해서 과거에 있었던 일이 사라지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주변사람과 자신이 생생히 기억하고 살지 않아도 '그 사람의 인격으로서' 내면에 차곡차곡 쌓여 남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기억하든, 하지 않든,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현재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생각하며 살든, 아니든 '과거에 걸어온 길'이 한 사람을 만드는 데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분노와 억울함 때문에 고통받으면서도 현재의 시간까지 그와 관련된 기억에 붙잡혀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과거에 그 사람과 엮여서 상처를 받고, 힘들었던 것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와 미래의 시간까지 그렇게 미워하는 사람과 엮여있고 싶지는 않다.


우리에게는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든 상관없이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 힘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처받았던 기억자체를 놓아주고, 현재 내 삶에 영향을 줄 수 없도록 끊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 사람과, 그 상황과, 그때의 무력했던 나와는 무관한 사람으로서 현재를 살아보는 것이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로운 인생을 살다 보면 기분이 나아지고, 당당하고 안정적인 새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 과거에 상처받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경험을 하기 전과 같을 수 없다는 생각'자체를 놓아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치유되고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과거의 상처를 놓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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