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등불 Sep 26. 2021

너라는 존재

네이버에서 10년 가까이 연재하고 있던 심리 웹툰 「닥터 프로스트」가 이번주로 완결을 맺었다. 총 연재 기간으로 따졌을 때는 10년이 아니지만 웹툰이 시작된 시점부터 종료된 시점으로 따졌을 때는 10년이다. 아마 웹툰 작가에게 있어서는 그보다 더한 시간일 것이다. 닥터 프로스트 웹툰 작가 이종범은 심리학 학사출신이다. 그는 만화 그리는 것과 심리학을 좋아했다. 그래서 함께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그것을 웹툰으로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그려나가고 싶은 것들을 혼자 그려내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러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닥터 프로스트는 시즌이 4개로 구성되어 있지만, 탄탄한 스토리를 위해 10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고, 그 결과 많은 팬이 형성되었다.



그를 보면서 나를 보게 된다. 그 사람도 나도 심리학 전문가의 길을 걷지 않고 있다. 그 사람도 나도 전문가 수준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사람 심리와 관련된 무언가를 한다. 그는 만화와 심리학을 합쳤고, 나는 글과 심리학을 합친다. 그의 오랜 연재 과정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반드시 전문가 과정까지 밟아야 심리학 영역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심리학에 대한 애정과 열정만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는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심리학 분야를 나왔지만, 여전히 심리학이 좋다. 여전히 사람들을 관찰하고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그들의 성장을 돕고 싶어 한다. 심도 있는 심리학 서적이나 웹툰, 칼럼 읽는 것 역시 좋아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특정분야만 보려 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영역 내에서 사람에게 일어나는 심리현상을 보려 한다. 그리고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토대로 생각하고 글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과 삶을 다루는 글을 쓴다. 인간의 심리상태에 상당히 민감하다 보니 글을 써 내려감에 있어서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은 좋다. 때로 힘든 점이 있다면 내가 경험하지 않았어도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그 감정들을 깊이 경험하다 보니 빨리 지친다. 그래서 무엇이든 밖으로 표출하여 나를 살게 하려 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웹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시즌 1은 2011~2012, 시즌 2는 2013~2014, 시즌 3은 2015~2016, 시즌 4는 2019~2021으로 진행되었다. 시즌 1이 시작할 때부터 시즌 4로 끝날 때까지 모두 보았고, 시즌 3을 보고 있을 무렵 시즌 1,2를 정주행 하고, 시즌 4에서 완결각이 보여서 시즌1~부터 다시 또 정주행을 했다. 매번 볼 때마다 새롭다. 주요 주인공인 프로스트의 성장과정과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결말을 이토록 입체적으로 풀어내는 것에 대해 매 순간 감탄한다. 여러 차례 정주행을 했던 사람으로서 마지막화를 보니 기분이 상당히 묘하다.



댓글에는 이 웹툰덕에 심리학과에 입학했다는 말이 많다. 비슷한 내용의 댓글들은 보는데 그들이 꿈꾸는 세상과 현실을 마주했을 때 겪게 될 아픔. 그걸 생각하니 맘이 편치 많은 않더라. 하지만 결국 본인이 겪어야 할 일이고, 그럼에도 직진이냐 아니면 후퇴냐의 차이다. 직진이 되던 후퇴가 되던 모두 본인 삶에는 값진 시간이 될 거다. 그저 나는 덜 아프길 바랄 뿐이다.



중간에 웹툰 보는 것을 그만두었더라도 어느 정도 보았더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주요 주인공이 있다.

백남봉(프로스트 : 백발미남 좋은또라이), 윤성아(조교였던 사람, 나중에 교수이자 천재됨), 문성현(흑발미남 나쁜또라이), 송선(백남봉 동료), 천상원교수(남봉이 사람 만들어준 용강대 심리학과 교수, 문성현 주변인에 의해 죽음).

이들이 대표적인 주인공이지만 후반부에 와서는 김창규 기자, 강유리 대장, 천진한 경장, 매니가 큰 몫을 해냈다. 그들 안에서 펼쳐지는 개개인의 성장과정들,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히 알겠는 건,

1.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을 곁에 두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2. 사람은 누구나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하는 자는 내공이 쌓이지만, 변하지 않는 자는 아집만 강해진다. 내공은 한 개인을 성장시키지만, 아집은 한 개인을 고립시킨다.



난 이 두 가지 현상을 너무나도 가까이서 오랫동안 경험했고, 드라마와 웹툰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닥터 프로스트 웹툰 내에서는 주변에 사람을 잘 만나 잘 성장한 남봉이와 잘못 만나 파멸의 길로 접어든 문성현.

나의 아저씨 드라마 내에서는 주변의 사람을 잘못 만나 온갖 고생을 다한 이지안과 이광일, 하지만 제대로 된 어른을 만나 삶의 방향을 다시 잡은 이지안과 이광일.





닥터 프로스트 마지막에 남봉이는 성현에게 다음과 같은 말은 전한다.


당신이 나에게 이야기했죠

나에게 부족한 건 자기 확신이라고

나는 인간에 대해 잘 모릅니다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해서도

그래서 나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던 건 당신이었군요

당신에게 부족했던 건

자기 의심이었던 겁니다



이 말을 듣고 문성현은 말한다

나를 만들어낸 건 나 자신

부럽다고 말하지 않겠어



한때 천교수가 남봉이에게 했던 말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조금씩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태어나.

어떤 단점은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그 사람을 나타내기도 하지.

정말로 중요한 건

너에게 어떤 문제가 있느냐가 아니야.


네가 지나친 모든 순간들

네가 만난 모든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이 너를 키워준 거다

그게 너라는 존재다


그러니 자신감을 갖고

계속 너의 그림자를 직시하며

살아가면 된다


이 그림이 얼마나 소름돋는 그림인지는 웹툰을 본 자만이 알 수 있다. 사진출처 : 네이버 웹툰 닥터프로스트




내 생애 최고의 웹툰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