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by 별샘


10년을 일했던 학원이 문을 닫아 그만 두던 날, 정들었던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에 많이 울었다.

24살. 졸업 후 바로 취직한 학원은 처음엔 초보라는 이유로 100만 원 겨우 되는 월급으로 일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순진했고 어렸다.

대학 때 아르바이트로 잠깐 파트타임 강사로 일한 경력으로는 안된다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배우며 원장을 꿈꾸라던 그때의 원장님.

박봉과 많은 일에 힘이 들었지만 해마다 나타나는 이쁜 아이들의 모습에 그만두기를 늘 주저했다. 그렇게 지내온 시간이 10년이었다.

이 아이들만 졸업하면 그만둬야지, 얘들만 졸업하면 다른 곳으로 가야지 했지만 정이 뭔지 쉽게 옮기진 못했다.

길어질 이야기지만 그때 얘기를 잠깐 해본다면 6시부터 1시간 공강시간이 있었다. 처음엔 몰라서 저녁도 굶고 일했지만 나중에 일이 좀 편해졌을 때쯤 저녁시간을 이용해 집이 가까워 저녁을 먹고 오거나 같이 일하는 선생님과 같이 먹고 들어오거나 했다. 멀리 가지도 않았고 학원 앞 분식집 정도. 그런데 출근 후 나가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학원에 있어주길 바라셨다. 그렇게 가끔 주신 저녁은 접시에 달걀, 멸치, 김치, 밥. 정성껏은 아니지만 챙겨주시는 마음에 감사하며 먹었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 원장님께 큰절을 해도 모자랄 정도이다.

학원 청소, 학원비 영수증 관리, 학생관리, 상담전화, 못 받은 학원비 독촉 전화, 수업.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나마 늦게 들어오셨던 과학선생님께서 내 일이 많다고 건의해 주어 학원비 영수증 관리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가끔 못 받은 학원비에 대해 전화하는 건 시키셨지만.

나는 이런 일들이 강사로써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험기간이 되면 주말도 없이 한 달 내내 출근은 기본이고 지금처럼 시간제한이 없어 새벽 2시고 3시고 일을 해야 했다. 물론 보강비는 없었다. 그로 인해 대상포진까지 얻었던 그땐 왜 그렇게 무식하게 일했을까.

연차가 쌓이면 월급을 올려주시겠다던 약속은 150만 원의 월급에서 멈췄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월급이겠지만 현재 옮긴 학원의 초봉도 안되는 월급이었다. 그 후 주말엔 미안하다며 보강비 10만 원을 얹어 주셨다. 시급으로 따지면 아마 보강비가 월급보다 더 많지 않았을까. 한 반이 20명이 되면 주겠다던 인텐시브는 22명이 되는 순간 두 반으로 나뉘었고 그에 따른 보상도 없었다. 아이들이 그만두면 모두 내 책임이었다.

다행히 이런 나의 노력을 알아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들이었다. 나의 고생을 응원해 주었고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던 학생들이 많았다. 일이 힘들어 보이면 청소도 도와주고 책 정리도 해주며 나와 함께 해준 학생들이다.

이 긴 시간 동안 그분에게 고마웠던 게 없던 건 아니다. 엄마같이 아플 땐 걱정해 주시고 챙겨주셨던 부분은 분명 감사할 일이다.

앞서 말했듯 첫 직장을 오래 일했기에 월급과 퇴직금 같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똑똑하지 못해 알아보지 못한 것도 있다. 3년을 일했을 때 원장님이 제안을 하셨다. 내 월급에서 10만 원을 빼서 1년 동안 적금 통장을 만들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게 퇴직금이라고. 그때 좀 더 알아보지 못했던 내 잘못도 있지만 그러시라 했고 1년 단위로 세 번의 통장을 받았다. 그걸 제외하더라도 일한 시간에 대한 퇴직금은 더 많았다.

마지막 날 딱 일한 날 수만큼 60만 원의 월급을 받았다. 그럴 수 있다. 당연히 일한 만큼의 날만 계산해서 받아야 한다. 그런데 무언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나의 20대 절반 이상이 들어간 이곳에서 퇴직금도 없이 나가는 게 너무 억울하다 생각했다. 마지막 자리에서 둘만 남아 퇴직금에 대한 언급을 했고 우선 집에 가 있으란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사실, 다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그래도 못 받은 만큼의 절반의 금액은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아무 연락이 없어 카톡을 보내려 보니 학원을 폐원시킨 모습을 올려두셨다. 1년 뒤 다시 열거라 하시더니 퇴직금 소리에 바로 폐원 시키다니.. 이러려고 생각해 보자 하셨구나.

이튿날 연락을 드렸고 돌아온 메시지는

"지금까지 받아 간 그 통장 다 뱉어내"라는 말이었다.

와.. 이럴 수 있을까? 차라리 지금 많이 어려워 챙겨줄 수 없을 거 같다 미안하다 했으면 그런 분노의 감정은 생기지 않았을 것 같다. 순간 너무 어지러웠고 내가 믿고 따르던 그분이 맞나 생각했다. 이리저리 알아봐도 내가 뱉어낼 돈은 없다. 만약 그걸 걸고넘어진다면 그 통장을 넘기고 내가 일하고 못 받은 보강비, 퇴직금까지 모조리 받아 낼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소송으로 넘어가도 시간이 걸릴 뿐 당연히 받을 수 있다는 답변도 받았다. 그간의 학원에서 일한 모든 증거도 있었고 나에게 힘을 주겠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응원해 주신 학부모님들도 계셨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10년 세월의 허무함과 속상함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다른 말은 할 수가 없어 한마디만 문자로 남겼다.

"끝까지 가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이런 대접받을까 무섭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게 부끄럽습니다. 앞으로는 학원 하지 마세요."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문자를 보낸 후 아빠와 친구의 도움을 받아 준비를 해나갔다. 학원을 옮기고 한 달도 안 된 무렵이라 적응도 안되던 시기이고 이 일로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시기었다.

일을 해도 마음이 안 잡혔고 화만 났다. 내 시간이 억울하고 아깝기만 했다. 난 도대체 이곳에서 뭘 배우고 뭘 가르쳤던가.


며칠 고민을 하던 중 부모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중,

" 아빠 누가 봐도 내가 이기는 싸움이긴 한데 마음이 이상하다. 뭘 얻었는지 모르게 허무하고 속만 상한다. 돈 때문에 그 시간이 이렇게 되는 게 마음이 아프다."

묵묵히 듣고 계시던 아빠가 한 말씀하셨다.

"그 돈이 당장 필요하나. 돈이 없으면 힘드나."

"그렇진 않아. 그냥 보내온 시간이 억울해서 그래."

"그럼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라. 물론 네가 그냥 넘어가서 나중에 너랑 같은 상황의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네가 보내온 시간이 허무하지 않겠나. 그래도 너를 따르는 아이들이 남았지 않나. 힘들다면 굳이 돈 때문에 그러지 마라. 돈은 받지 못해도 그 시간을 보내며 네 주변에 남은 보물들이 많다."

엄마도 물론 같은 의견이셨다.

"잘못한 일은 다 되돌려 받는다. 그래도 그간 챙겨줬고 오랜 시간 일했던 곳이기도 하니 힘들 것 같으면 안 하는 게 낫지 않겠나."

주위 사람들 대부분이 고구마 100개를 한 번에 넣은 것 같다고 말했었다. 왜 안 받아내냐 왜 싸우지 않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엄마 아빠와의 대화 후 나는 준비하던 모든 것들을 그만두었다. 고작 돈 몇 푼에 (지금 와서야 아쉬워 후회하지만) 지나온 추억들까지 허무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상대는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그래, 더는 하지 말자. 그까짓 돈 안 받고 말자.

결정은 했지만 마음이 쉽게 잡히지는 않았다. 자신의 말에 겁먹어 도망간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그 사람 모습에 자존심도 상하고 괜히 포기했나 하는 마음에 결정을 후회하기도 했다. 가르치는 일이 천직이라 생각하며 즐겁게 일하던 내 모습도 없었고 그렇게 이쁘던 아이들도 더 이상 이쁘지 않았다. 일이 지겨워졌고 힘들어졌다. 그 시간을 벗어나지 못할 거 같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

다른 직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지겹던 시간, 나를 따르던 아이들이 지금 일하는 곳으로 다시 등록을 하였다. 실업계 쪽으로 가는 몇몇을 제외한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이곳으로 온 것이다. 다른 곳도 가봤지만 적응이 안 된다며 다시 찾아주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아빠가 말한 보물이 이런 거구나.

낯설었던 학원이 예전 학원과 똑같은 느낌이 들었고 나를 따라준 아이들에게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의욕 없이 쳐져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그 사람과의 싸움을 포기하는 것보다 더 자존심이 상했다. 그 후로 출근할 때마다 스스로를 응원했다. 잘 할 수 있다고. 초심으로 다시 열심히 해보자고.

졸업한 학생들도 있지만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찾아주고 함께 해주는 학생들이 아직 있다. 그때 만약 부모님의 조언을 듣지 않고 물어뜯는 진흙탕 싸움을 지속했다면 나는 과연 아직 강사를 할 수 있었을까?

절대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일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지금쯤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 반드시 그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만이 자존심을 지켜내는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싸우지 않고 쉽게 돌아선 나를 아마 조롱하고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진실된 마음이 있으면 나를 찾아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모든 걸 잊고 누구보다 즐겁게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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