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몸에 이상이 생겼다. 5개월이나 월경을 하지 않았다. 그때 일이 힘들어서 대상포진도 걸리고 면역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살도 10킬로나 빠졌을 때였기 때문에 그냥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았던 동네 산부인과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이거 너무 위험합니다. 바로 조직검사 해야겠습니다."
네? 암일 수도 있다고요?
의사들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얘기한다지만 무섭고 두려웠다. 그런데 그때 내가 누워서 가장 먼저 했던 얘기는
"선생님 저 보험이 없는데 지금 검사 안 하면 안 될까요?"
엄마가 몇 달 전부터 실비보험을 꼭 넣으라고 했지만 나는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으면 진작 엄마 말을 들을걸.
의사 선생님은 한시가 급하다며 그대로 조직 검사를 진행했다.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을 나오자마자 길거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지금이야 담담하게 결과를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땐 어렸으니까.
엄마에게 알리기가 겁이 났다. 보험이 없어 미안하기도 하고 몸도 제대로 관리 못했다는 마음에 선뜻 알릴 수가 없었다. 일단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다리에 힘이 풀린 채로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는 내 말을 듣자마자 울어버렸다.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도 더 울어버리는 친구. 그렇게 한참을 친구와 통화하며 울다 집으로는 갈 수 없어 이모네로 향했다.
어릴 때부터 자매같이 자란 이모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죄인이 된 것처럼 눈물이 났다. 이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이모는 당장 엄마에게 이야기하라고 했다.
"안돼. 결과 나오면. 엄마 걱정하잖아."
"그래도 엄마한테 말해야지."
이모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이모네 집에 와보라고. 이모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와서 나를 보라고 했단다. 엄마는 한 걸음에 이모 집으로 왔고 이불을 덮어쓰고 울고 있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엄마는 차분히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엄마에게 오늘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엄마는
"괜찮아."
한마디 하고는 울지 말라고 했다. 속으로
'저기 엄마, 딸 암일 수도 있다는데 반응이.......'
흐르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엄마 근데.. 나 보험을 아직 안 넣었는데.."
"지금 보험이 중요하나. 완전 헛똑똑이네. 결과 언제 나온다는데?"
"3일 정도 걸린대. 빨리 해준다는데."
엄마는 알겠다며 울지 말고 그때 병원에 같이 가자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몸관리를 왜 안 했냐, 보험 왜 안 들었냐,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 화를 낼 줄 알았던 엄마는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키고는 쿨하게 가버렸다. 그때서야 진짜 별일 아닌가? 싶은 생각에 쉴 새 없이 뛰던 심장이 안정을 찾아갔다.
3일 후, 엄마와 함께 찾은 병원에서 들은 병명은 난소 기형종. 난소에 혹이 생겼단다. 의사는 당장 수술을 해야 하고 난소도 다 잘라내야 한다고 했다. 개복 수술을 해야 하고 한쪽에서 발병하면 다른 한쪽에서도 발병할 수 있다는 말도 했다. 그 말은 결국 나중에는 두 개의 난소를 다 잘라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엄마는 다른 방법은 없냐며 의사에게 물었지만 없다고 오늘 당장 입원하고 수술을 하자고 했다. 아직 결혼도 못했는데 난소를 다 잘라야 한다니. 이보다 더 나쁜 상황은 없을거라 생각했다. 그때 엄마가 혹이 생긴 난소가 어느 쪽이냐 물었을 때 의사 선생님은 머뭇거렸다.
"왼쪽이었나? 글쎄요. 다시 초음파를..."
엄마는 그 말에 바로 괜찮다며 나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바로 택시를 타고 시내에 있는 가장 큰 산부인과로 갔다. 예약을 하지 않아 대기 시간도 길고 빨리 수술해야 한다는데 다른 곳으로 온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는 어느 쪽에 있는지 기억을 못 하는 걸 보고 믿음이 가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착각할 수도 있지만 딸의 다른 장기도 아니고 자궁에 문제가 생겼는데 좀 더 정확하게 알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2시간을 넘게 기다린 후 진료실을 들어갔다. 이미 이전 산부인과에 부탁해서 보내준 자료를 보고 계셨던 원장님이 나를 바라보았다.
"시집 언제 갈 거야?"
"네? 아직은 생각이 없는데.."
"되도록 빨리 가. 뭐 큰일은 아니지만 재발할 수도 있으니까. 복강경으로 혹만 떼면 돼요."
"난소도 잘라야 하고 심각하다고 했는데 아닌가요? 개복 수술 안 해도 되나요?"
"위치 보니까 난소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복강경으로 구멍 세 개만 뚫어서 수술 가능해요. 날짜를 언제로 잡을까요?"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게 수술이 간단한 게 없다지만 복강경으로 할 수 있다는 말에 아이들의 시험이 먼저 생각났다. 엄마에게 아이들 중간고사가 끝난 후에 하고 싶다고 하니 엄마는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결국 내 의견에 따라 한 달 뒤에 수술하기로 했다.
"그런데 혹이 더 커질 수도 있어요. 지금은 5센티 정도 되는데. 만약 그 사이 아프거나 하면 바로 와요."
엄마는 나오면서 처음으로 잔소리를 했다. 진작 말했으면 마음고생 안 하고 큰 병원에서 바로 진료할 수 있었는데 뭐가 겁난다고 숨겼냐고. 엄마한테 혼날까 봐 그랬다니 아픈 딸을 혼내는 엄마가 어디 있냐고 했다.
나는 이때 우리 엄마 멘털이 진짜 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달 뒤에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미루는 바람에 2센티나 더 커졌지만 큰 문제없이 수술이 끝났다. 간단한 수술이라고는 했지만 꽤 오래 고생을 했다. 병원이 싫어 통원하기로 하고 서둘러 퇴원을 했다.
아빠와 집으로 가는 길에 아빠에게 엄마의 멘털에 대해 얘기했다.
"니 앞에서 당연히 담담한 척해야지. 엄마가 더 호들갑 떨면 네가 더 겁낼 텐데. 엄마 니 수술하러 들어갔을 때 엄청 울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수술하기 전에도, 수술하고 나서도 괜찮다고 계속 쿨하게만 말하던 엄마가 수술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펑펑 울었다니.
"부모는 원래 그래야 해. 애 쪼금 다쳤다고 난리치고 그러면 애가 더 놀래고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고 그러니까. 만약에 네가 진짜 큰 병이었으면 엄마도 앞에서 티 안 내려고 했어도 티가 났겠지만 큰 일일수록 대범하게 대처해야 돼."
그러고보니 아빠는 무심할정도로 모든 일에 담담했다. 그럴수도 있지. 괜찮다. 해결할 수 있다는 듯이. 큰 일일수록 더 그랬다. 어떤 일이든 침착하라는 말이었다. 물론 살아가면서 침착할 수 없는 순간도 분명 오지만 난리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더구나 부모라면 더 그래야 한다고 했다.
아빠와 엄마의 말이 나이를 먹은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같은 상황이 왔을 때 나는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빠처럼, 엄마처럼 살아가기 위해 항상 노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