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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n 07. 2018

대화가  필요해 !

 

 날씨가 흐려서인지 마음까지 우중충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정수와 수업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오후의 일이 걱정이다. 정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쭉 수업 지도를 해 온 아이다. 그런데 올 해 중학교 2학년이 되더니 부쩍 책 읽는 것을 게을리 하고 수업도 노골적으로 귀찮아했다. 수업할 때마다 무엇이 그리 불만이 많은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싫은 티를 냈다.

     

“선생님, 책은 왜 읽어야 하나요? 공부는 왜 하죠? 싫은데 억지로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정수의 뜻밖의 말에 당황했다.

“정수야! 책을 많이 읽게 되면 세상을 좀 더 잘 알 수 있어서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도움이 될 거야.”

 너무 빤하고 교과서적인 답변인 것 같았지만 달리 설명할 이 생각나지 않았다.

 “선생님, 됐어요, 그런 얘긴 수도 없이 들었어요. 학교에서, 학원에서, 부모님한테요. 이제 듣기 싫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래, 네 말 뜻은 이해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을 것 같구나, 오늘 수업할 책을 못 읽었으면 다음 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읽어 놓도록 해라.”

“선생님! 저는 공부보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거예요.”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뭔데? 아니,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우리 다음 주에 진지하게 대화해 보자.”

 아이의 집을 급히 빠져 나오면서 왠지 뒷덜미가 잡힌 것처럼 개운치 않았다. 녀석은 지금 중2병을 앓고 있다. 누구도 피해가지 못하는 병이다. 오죽하면 ‘북한에서 중2가 무서워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말까지 생겼을까!

     

 동안 성실히 따라오던 녀석이 중학생이 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중1 때는 그런대로 기본적인 것은 군말 않고 했다. 하지만 2학년이 되면서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할 말도 가리지 않고 대 놓고 하더니, 급기야 수업도 대충하고, 무기력해지기까지 하니, 어머님의 걱정도 태산 같았다. 그래서 바쁜 시간 중에도 정수 어머니와  상담을 하느라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선생님, 요즘 우리 정수가 공부를 하지 않으려 해요. 그뿐 아니라 그렇게 착하던 애가 말대꾸를 하고, 성질을 내니 그 이유를 통 모르겠어요.”

 “어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사춘기를 겪는 대부분의 청소년이 급격한 신체, 정서적 변화로 감정 제어가 잘 되지 않아 그럴 거예요. 이 시기는 온 세상이 자기가 최고인 듯 우쭐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는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대요.”

 “네 선생님, 저도 중2가 그런 감정 변화가 가장 심한 때라고 들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들도 중2 지도하기가 가장 힘들다고 하네요.”

 “아무튼 어머니, 제가 아이와 진지하게 대화를 해 볼게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지금 시점은 아이를 나무라는 것보단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의 행동을 최대한 존중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정수와 마주 앉았다. 어머님의 배려로 오늘은 수업 대신 아이와 진지한 대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과일과 음료수, 과자를 마련해 놓은 탁자를 마주하고 정수를 바라보니 왠지 학생과 스승이 아닌 독립된 인격으로서의 만남처럼 새롭고 설레는 기분에 어쩐지 살짝 긴장되기도 하였다.

 “선생님! 오늘 무슨 날인가요? 항상 ‘책 읽었니?’ 하시더니 오늘은 평소와 달라서 어색하고 이상해요.”

 “오늘은 너와 격의 없이 대화하고 싶어서 그래, 편한 마음으로 네 생각을 얘기 해 주길 바란다.”

 녀석의 낯빛이 일그러졌다.

 “할 말 없어요.” 퉁명스럽게 말하고 딴청을 한다.

 “네가 이러는 이유를 선생님 나름 알아 봤단다. 물론 이론적인 연구들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참고할 만은 하다고 본다. 너를 비롯해 많은 청소년들, 특히 중2병을 앓는 이유는 사람의 뇌 가운데 전전두엽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사람의 감정을 억제해서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판단하도록 만든다고 해. 이 부분이 발달할수록 자신의 감정을 잘 제어할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 부분은 인간의 뇌 가운데 가장 늦게 발달한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밝혀냈지. 그런데 중2인 15세에 무렵 이 부분에 큰 변화가 생긴다고 하는 구나. 뇌 속 신경세포를 연결해주는 시냅스라는 것이 있는데, 이 나이에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시냅스들이 우수수 떨어진다고 해. 그래서 이것을 가지치기라고 부르는데, 마치 나무가 가지치기를 해야 잘 자라 듯 사람도 마찬가지지.”

 순간 무심하게 있던 녀석의 눈빛이 반짝했다.

 “사람은 어떻게 가지치기를 하죠?”

 “음, 그래 사람도 분명 가지치기를 할 수 있어. 풍성한 나무를 가지치기하면 좀 볼 품 없지? 하지만 더 크고 건강한 나무로 자라려면 그만한 희생은 따르는 법이란다. 사람도 마찬가지야 네가 겪는 시간이 가지치기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야, 더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기 위한 시련이지.”

 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격한 감정에 도취돼 울먹거렸던 것 같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아이는 당황하고 있었다.

 “말 나옴 김에 선생님이 하고 싶은 말을 할게. 공자가 왜 하필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는지 아니?”

 “……”

 “중2병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공자도 너와 같은 시기에 힘겨워했단다. 예전에 그 나이엔 결혼도 하고 사회생활도 해야 했기 때문에 이런 감정의 변화를 겪으며 사는 게 쉽지 않았지. 이 시련을 공자는 배움으로 이겨냈다는 구나.”

 “하지만, 공자는 성인이잖아요. 나와 비교하지 마세요!”

 “비교하는 것이 아니야, 공자는 어린 시절 매우 불우하게 살았다고 해. 공자는 사생아로 태어났지, 아버지를 일찍 여위고 가난한 무당이었던 어머니가 살림을 꾸려갔단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공자의 마음을 이해해 보렴. 그도 분명 평범한 우리처럼 열등감, 근거 없는 자만심, 분노, 불안, 열정이 뒤섞인 감정의 질곡을 경험했을 거야. 그가 성인으로 추앙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인정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 생각해.”

 “……”

 “그래서 말인데, 너의 온갖 불만을 다 이해한단다. 그건 이상한 게 아니야, 사람이면 그 시기에 누구나 겪는 문제야. 어렵지만 이시기를 잘 견디고, 제대로 배우고 노력하면 너도 공자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녀석의 표정을 살펴보니 조금은 마음이 동요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 어느 새 시간이 다 됐네, 앞으로 시간은 얼마든지 많으니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자. 꼭 책을 읽고 토론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깐!”

 녀석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번진다.

 “네, 샘! 좋아요. 그런 의미에서 담 주도 우리 진지한 대화해요. 책 읽고 수업하는 거 말고요.”

 “으휴…, 다음 주까지 선생님이 한 말 잘 생각해보고, 책 읽는 문제는 너한테 맡길게.”

 

하늘을 보았다. 아침에 비라도 올 것 같이 잔뜩 찌푸려 있던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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