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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n 10. 2018

두려움의 정체

 늦게 귀가하는 날, 매번 다니던 큰 길을 놔두고 지름길인 골목을 택했다. 다른 날보다  늦어진 까닭에 마음이 조급했다. 집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선택한 이었다.


골목길 양 옆으로 다세대 주택이 반 쯤 허물어진 채 문짝이 없는 창과 방들은 시커먼 목구멍처럼 여기저기 뻥 뚫려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재개발 공사가 중단돼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었다.

     

 낮엔 그런대로 봐줄 만하던 골목길이 졸지에 공포영화에 나오는 곳처럼 으스스하고 괴기한 분위기로 바뀌어 있었다. 가로등마저 힘없이 깜빡거리며 희미한 그림자를 풀어 놓았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은 공포의 대상이다. 그것들은 가냘픈 빛을 받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내 그림자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갑자기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에 발길을 재촉했다. 몇 분의 짧은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지고, 골목은 끝없이 이어진 것 같았다. 폐가를 스칠 땐 어둠 속에서 나를 지켜보는 눈동자를 같았다. 심장이 쿵쿵 뛰며 가빠진 숨소리에 지레 놀라 짧은 비명을 질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뛰면서 별의별 생각이 떠올랐다. 매스컴에서 보고 들었던 불행한 사건들, 끔찍한 사고들, 범죄에 희생된 평범한 사람들, 갑자기 두려움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펑하고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을 때 안도감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제야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파트 불빛이 이때처럼  따스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정신을 가다듬고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아까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본 것은 확실한가?  확신할 수 없었다.


냉정히 생각해보니 내가 두려움을 느낀 정체는 스스로 만든 마음 속 허상이었다. 사실  골목길을 들어서면서부터 내 마음 속에는 이미 어떤 의혹이 자라고 있었다.  늦은 시간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골목길, 희미한 가로등 불빛, 무너진 폐가, 어둡고 음침한 곳에 있을 법한 정체모를 존재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 처음부터 내가 만든 각본에 따라 주변의 것들은 그렇게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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