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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l 08. 2018

악몽이 돼버린  편혜영의 (소풍)

천상병 시인은 「귀천」에서 이 세상 소풍이 아름다웠노라 말하지만 그의 삶의 궤적을 보았을 때 시인에게 이세상은 아름답고 안전한 여행지는 아니었을 것 같다. 아마도 시인은 삶을 달관했거나, 세상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편혜영의 「소풍」도 마찬가지이다. 주인공들은 평소 원하던 여행을 가게 되지만 왠지 이 세상은 그들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소풍을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나 또한 소풍길이 악몽이 돼버린 경험이 있기에 책의 내용에 프로 공감이 갔다. 게다가 책 속 인물인 ‘여자’와 내 처지가 너무도 비슷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소설 속 남자와 여자는 모처럼 벼르던 여행을 간다. 여행 한 번 가기 힘든 현실이었기에 힘들게 잡은 여행은 더욱 기대되고 설레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여행은 처음부터 삐걱댄다. 여자의 수업 때문에 밤늦게 출발한데다 안개까지 두껍게 내려앉아 그들이 가는 길을 방해한다. 앞차의 후미등에 의지해 고속도로를 거의 기다시피 가는 여행길은 그야말로 불안하기 짝이 없다. 얼마 전 안개로 대형사고가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서술자의 설명은 여행길이 순탄치 않으리란 불길한 예감을 다.

     

여자와 남자는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마트에 들른다. 남자는 여행지에 가서도 살 수 있는 것들을 한가득 카트에 담는다. 여행갈 때 갖춰야 하는 것들이 여행도 가기 전에 그들을 지치게 만든다. 여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초겨울에 어울리지 않는 두툼한 오리털 잠바를 걸친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멀미도 그녀를 괴롭힌다. 여행은 들뜨고 신나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들의 여행은 하나도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도리어 불편하고 성가시다.

     

일상의 걱정과 고민을 고 가볍게 떠나야하는 여행이건만 여자는 가는 내내 이런저런 생각에 심사가 편치 않다. 아이들 글짓기 학원 강사인 여자는 여행에서 돌아온 후 보강할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이 부분에서 나 또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같은 경험을 했기에 여자에게 깊이 공감했다. 개인 사정으로 못한 수업을 보강할 땐 여느 때보다 배는 더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하루도 수업을 미룰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밤낮 없이 일하는 남자와 함께 힘들게 여행 시간을 맞췄다.

     

그들에게 여행은 남들처럼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던 차에 여행을 가게 되자 남자는 도시인이라면 한번쯤 이런 곳으로 여행을 가줘야 한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그리고 여자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졌다. 고단한 일상을 단 며칠이라도 탈출할 수 있는 여행은 평소 그들에겐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크나큰 위안이고 안식이며, 또 소진한 힘을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여행은 악몽으로 변한다. 사실 누구나 가보지 않은 길을 안내해 주는 지도와 같은 훌륭한 지침서들로 무장하고 길을 나서지만 실제 길을 가다보면 종종 지도 밖의 낯설고 생경한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인생의 길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목표와 계획을 철저히 세워도 의외의 뜻하지 않은 일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여자는 일련의 두려운 일들이 모두 안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안개는 저승사자처럼 계속 그들 앞을 가로막고, 덩치 큰 트레일러와 탱크로리는 무슨 배짱인지 어둠과 안개 속에서도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작은 차를 위협한다. 여자는 휴게소에서 잠시 만났던 탱크로리 기사가 한 말을 기억하고 섬뜩해진다. ‘탱크로리를 운전하면 다른 차들이 덤비지 않아서 편하죠.’

     

불안하고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을 때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앞을 막아선 대형차를 향해 욕설을 퍼부은 남자 때문인지 덩치 큰 차의 난폭운전이 이어진다. 영문은 알 수 없지만 덩치 큰 차가 계속 남자의 주행을 방해하자 결국 남자는 국도로 빠진다. 그런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뭔가 튀어나와 남자의 차에 부딪힌다. 남자가 차에서 내려 뒷수습을 할 때 여자는 그 참혹한 것을 외면한다. 끝내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다. 다시 고속도로로 나왔을 때 덩치 큰 차가 어디선가 나타나고 그것을 피해 달리다 결국 남자의 차는 가드레일을 들이박는다.

 

언젠가 남편과 고속도로를 달리다 소설처럼 보복운전을 당해본 적이 있었다. 차간 거리도 좁은 상황에서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갑자기 우리 차 앞에 끼어드는 차에 너무 놀라 남편이 상향등을 켜며 경고를 하자 그때부터 보복운전이 시작됐다. 차선을 넘나들며 차의 주행을 방해했던 것도 소설 속 상황과 너무 흡사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생생해지며  당시 끔찍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소설은 나에게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소설 속의 여자는 결코 낯설지 않다. 아니 오히려 너무도 친근해 주변의 친구,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삶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시민의 삶과 맞닿아 있다. 비루하고 피곤한 삶에서 벗어나길, 반복되는 기계적 일상에서 탈피하길 소망하는 소시민의 꿈과 이상이 소풍을 통해 상징적으로 발현된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은 소풍을 망쳐버린 것처럼 때론 그들의 꿈을 짓밟는다. 한때 백일장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재능 있었던 여자가 프로작가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처럼 또는 대학 축구선수였던 남자가 프로선수도 못 되고 아파트를 짓고 있는 것처럼, 여행의 목적지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다시 돌아가야  하는 그들처럼, 꿈과 현실의 괴리는 크기만 하다.

편혜영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인 대형트레일러 탱크로리 같이 거대한 기계들은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메타포이며 그로 인해 발생되는 분노와 좌절 같은 부정의 감정들은 인간의 삶을 피폐하고 참담하게 만든다. 소설은 어쩌면 인간의 실존적 삶의 터전인 현실에서는 더이상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으로의 소풍은  부재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문장은 안개에 쌓인 길처럼 모호하고 불확실한 길을 걷고 있는 인간 실존적 삶을 암시하는 듯했다. 인간의 최종 종착역은 알지만 지금 가고 있는 길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삶의 핵심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있다.

'여자는 멈추어 선 채로 허공에 매달린 이정표를 읽었다. 모두 처음 보는 지명이었다. 이정표는 언젠가 도착할 도시의 이름을 알려줄 뿐 여기가 어딘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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