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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n 12. 2018

불안과 공포의 메타포,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페이소스가 짙게 깔린 짧은 단편을 읽었다. 인물 간의 대화도 거의 없이 전개되는 소설은  한 가족의 망적이고 비참한 황을 비정하리만치 냉각된 어조로 서술하고 있어 더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주인공이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붉은 편지 한 통을 받으면서 시작되는 소설은 사육장 쪽 병원을 찾아 헤매는 가족의 참담한 모습으로 끝맺는다.


편혜영의 단편집 「사육장 쪽으로」 수록 작품 중 하나인 (사육장 쪽으로)의 분위기는 왠지 카프카의 ‘성’을 연상시킨다. 성이 불안과 공포의 상징인 것처럼 개 사육장 또한 공포의 상징이다. 그리고 꼭 들어가야 함에도 결코 닿을 수 없는 성처럼 주인공 가족이 필히 사육장 쪽으로 가야함에도 그곳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사방에서 개 짖는 소리에 방향을 잃어버린 한 가족의 비극적 상황도 미완성의 (성)처럼 결말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주인공 극히 평범한 소시민이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 교외에 위치한 전원주택에 살고 있다.   전원주택의 풍경은 도시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부분 가장이 그러하듯 아침이 되면 도시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하고, 저녁이 되면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온다. 전원주택은 마치 공장에서 생산된 공산품 같다. 철제로 뼈대를 세우고 조립식 자재로 모서리를 맞춰 나사로 조여 만든 같은 모양의 집들,  속에  사람들도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는 전형적인 도시인이다. 그런데 어쩌다 전원주택으로 오게된 것일까?  처음엔 일반 직장인들처럼 융자를 받아 연립주택을 구입해 살았다. 그러다 '전원주택이야말로 진정한 도시인의 꿈이 아니겠느냐고' 달콤한 말로 부추기는 중개업자의 말에 현혹돼 있는 빚에 또 빚을 얻어 전원주택을 구입한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주택은 낭만적이지도 전원적이지도 않다. 개성도 새로움도 없는 획일적인 삶의 모습이다. 도시의 규칙성을 빼닮은 기계적인 생활, 식욕도 성욕도 수면도 같은 시각에 일정하게 찾아왔다. 여자들도 똑같은 모습으로 남편을 배웅하고 서로 눈인사를 나누면 바로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전원의 낭만과 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일상의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 전원 주택으로 왔지만 삭막한 도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삶을 풍자함으로써 작가는 우리 사회의 의식없는 쏠림현상을 비판하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전원주택 주변 어딘가에 개 사육장이 있어 밤낮없이 짖어대는 통에 개들과 관련된 소문만 무성하다.  실체 없이 떠도는 소문은  공포심을 조장한다. 소설은  현대인의 삶을 위협하는 공포의 메타포를 이야기 구석구석에 배치해 각종 강박적 위협 아래 놓인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의 근원을 통찰한다.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파산통보를 받고, 경고장을 붙인 집행인이 언제 집에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것, 그가 매일 도시로 출근하기 위해 달리는 신작로와 고속도로에서 대형 트레일러나 덤프 트럭 같이 큰 차들이 그의 차 앞뒤에서 공격적으로 질주하거나 스쳐지나간다는 것, 전원주택 뒤에 있는 야트막한 산은 불길하게 무덤을 숨겨놓고 있다는 것, 위험한 도사견이 사육장을 탈출해 민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것 등 도처에 존재한다.


결국 사육장을 탈출한 개가 주인공의 아이를 물고,  위급한 순간에도 치매에 걸린 노모를 돌봐줄 이웃조차 없어 주인공과 아내는 다친 아이는 물론 노모까지 차에 태우고 정신없이 병원을 찾아 헤맨다.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사람들은 무심하게 병원이 사육장 쪽에 있을테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짧지만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소설을 통해  평범한 소시민을 위협하는 삶의 조건이 과연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비정하고 냉혹한 실존적 삶의 조건이 주인공을 위협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불행을 겪는  근본적 원인은 주체성의 결여와 정확한 현실 인식 부재와 같은 스스로 문제에서 기인됐다고 생각한다.  전원생활에 대한 막연한 감상과 환상에 젖어 타인의 말만 듣고 뚜렷한 계획이나 목적없이 전원주택을 구입한 것처럼 타율적이고 수동적인 삶은 사상누각과 같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주인공의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그의 비극적 상황이 소설 속에만 국한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물질 만능 사회에서 비주체적이고 수동적 삶에 길들여 살아간다면  소외와 불안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또한 인간의 삶을 공격하는 적이 외부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허영과 욕심, 성찰 없는 삶 또한 우리 자신을 위협하는 내부의 적이란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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