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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n 03. 2018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 (파리 대왕)

(파리 대왕)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독일의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에서 열린 유대인 학살자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지켜보고 말한 악의 평범성이었다.  이 말이 유대인들의 분노를 샀지만 냉정히 생각하면 사람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악인도 선인도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잘 간파한 말이다.  


「파리 대왕」은 윌리엄 골딩의 소설로 198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작가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고, 인간 내면의 폭력성과 잔인함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문명사회의 허위와 인간본성의 결함을 풍자하고 비판하게 된다.


풍부한 문학적 장치로 다양한 의미가 함축된 소설은 단순히 소년들의 탐험과 모험의 이야기가 아님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외부와  단절된 원시의 세계를 설정하여 어른이 배제된 극한 상황에서 소년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는지 보여줌으로써 어른 세계, 더 나가서 인간 세계의 모습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이성과 광기, 문명과 야만,  어른과 아이, 민주와 독재 등 이분법적 논리에 의한 상반된 가치를 인물과 사건을 통해  표출함으로써 비판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문명세계에서 온 아이들이 그것도 당시 세계 제일의 문명국이라 자부하는 영국의 아이들이 야만적으로 타락해가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이성과 합리의 가면이 얼마나 취약하고 위선적인지 적나라하게 밝힌다. 결국 이성이 무너지면서 통제 불능 상태가 돼  잔인하게 변해가는 소년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본성을 억누르는 사회적 제도가 파괴될 때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새로운 핵전쟁이 도래했고, 이를 피해 비행기로 후송되던 한 무리의 영국소년들이 무인도에 불시착하게 된다. 소년들은 처음에는 나름대로 문명인답게 질서와 원칙을 지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민주적으로 지도자를 뽑고 의견의 합의를 거쳐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지도자  랠프와 성가대를 지휘했던 잭이 서로 의견대립을 보이고 결국 두 패로 나눠진다. 랠프는 구조받기 위해 봉화를 피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잭은 당장 생존을 위한 사냥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들 사이에 대립과 갈등은 산꼭대기의 정체모를 존재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더 깊어지고 마침내 폭발한다.

멧돼지 사냥에 성공한 잭과 패거리들은 불 주위를 돌며 흥분과 광기에 휩싸다.  마침 산 꼭대기 두려움의 실체가 낙하산에 매달려 죽은 병사임을 확인하고, 사실을 알려주러 내려온 사이먼은 짐승으로 한 잭과 패거리들에게 무참히 살해 된다.

그 후 살상을 맛본 소년들은 양심과 죄책감이란 이성의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동물적 본능에 탐닉한다. 잭의 지휘로 반대파인 이성의 소유자 피기를 끝내 죽이고 랠프마저 해치기 위해  인간사냥까지 한다. 마지막 랠프가 그들에게 쫓겨 목숨이 위태로울 찰나 섬에 불이 붙고 그것을 발견한 영국 군인에 의해 소년들은 구조된다.


소설 속에는 상징적인 소재들이 등장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소라나 안경, 봉홧불, 채색한 얼굴, 암퇘지 머리, 짐승 등이다. 책의 제목 '파리대왕'부터가 히브리어인 바알세블(사탄)을 의미하고 있다. 소라는 민주 사회의 이념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권위(법) , 규칙과 질서를 상징하고 있다. 처음에 랠프는 소라를 이용해 질서를 잡는다. 소라를 들어야  발언권을 얻을 수 있는 것도 민주적 절차이다. 피기의 안경은 지식인 또는 문명을 나타내는 도구이다. 잭과 패거리 얼굴 채색은  문명인에서 야만인으로 변함을 의미한다. 짐승은 소년들의 마음 속 두려움과 공포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처럼 풍부한 상징과 비유적 표현은 이야기에  다층적 의미를 생산하며 독자가 사고를 해 읽도록 유도한다.


이 작품이 세계문학으로 인정받는 것은 시대를 초월해 인간본성과 같이 변하지 않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환경과 상황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 소설 속 채색한 얼굴처럼 익명으로 인터넷에 접속했을 때  타인을 맹렬히 비난하거나 욕설을 하며 돌변하는 모습이나,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학생이 소설 속 잭과 소년들처럼 무리에 휩쓸려 잔혹하게 다른 학생을 폭행한 경우, 또 과거 마녀사냥이나, 나치 전체주의 등 집단 광기로 인간과 사회를 파괴시킨 것 역시 어느 시대나 존재하는 인간본성의 심각한 결함을 보여주고 있다.

예로부터 인간 본성의 문제는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파리대왕'처럼 인간의 악함을 외부의 환경보다 내부에서 찾으려는 경우도 있지만, 맹자나 루소처럼 인간본성은 선하지만 환경이 인간을 악하게 만들었다고 보는 견해도 분명 존재한다. 사실 무수한 이론과 관념적 사고는 본질을 감싸고 있는 허망한 껍데기에 볼과할지도 모른다. 숱한 이론과 연구로  인간의 본성을 밝혀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라도  짐승과  다른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무어라 해도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믿음을 갖고  스스로 삶을  성찰하고, 탐욕과 이기심을 늘 경계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때 인간본성의 악한 면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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