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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y 31. 2018

마음을 울린 두 권의 책

슬프지만 아름다운 성장소설 두 권을 다시 읽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잔잔한 감동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두 권 모두 어린이의 시선에서 삶을 바라보고 있어서 만큼 순수하고 진솔한 느낌과 생각들이 잘 표현돼 있습니다. 이는 두 작가 모두 자신의 어릴 적 체험을 바탕으로 풀어낸  소설이라 그 마음이 더 생생히 느껴지나 봅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작가는 브라질 소설가 (J. M. 바스콘셀로스)입니다. 어릴 적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어렵게 성장했지만 그 경험이 밑거름이 돼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었죠.

또 한 작품은 뉴베리 상 수상작인 「그리운 메이 아줌마」입니다. 이 소설도 서정미 넘치는 아름다운 표현들로 제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 중 하나인데요, 작가는 미국 버지니아 주 출신(신시아라일런트)로 이분 또한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작품 속 배경인 ‘딥 워터’처럼 작가도 춥고 가난한 산마을에서 외롭고 힘든 시절을 겪었지만,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성장합니다.


 작가의 공통점은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무엇보다 자존감을 잃지 않고 살았다는 점입니다. 불우한 환경을 탓하고 남을 원망하고 자신을 미워했다면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작품을 쓸 수 없었겠죠.

     

우선 두 작품은 성장소설이지만, 어른들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다름 아닌 어른들이기 때문이지요.

(나의라임오렌지나무)에 나오는 5살 제제는 호기심이 많고 영리해 알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잠시도 가만있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심한 저지레 때문에 실수도 많이 하게 됩니다.  이같은  아이의 단순한 생각과 순수한 행동이 편견에 가득 찬 어른들의 눈엔 단지 썽쟁, 사고뭉치, 게다가 위험하고 다루기 힘든 망나니, 못된 아이로 비춰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아빠와 잔디라 누나는 아이의 못된 행동을 바로잡는다며 심한 폭언과 폭력을 일삼아 제제를 아프게 합니다.


가장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가족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은 어린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라 여기게 만듭니다. 제제가 자신은 악마가 아닐까 의심하는 부분이나, 가족에게 고통만 주는 아이라 생각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겠지요.

 

어릴 적 아픈 상처를 경험한 것은 「그리운 메이 아줌마」의 주인공 서머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머는 아기 때 엄마를 잃고 6살 때까지 친척집을 전전하며 자랍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무도 자신을 맡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어린 아이의 심정이 오죽할까요. 아이의 상처받은 마음을 표현한 구절이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오하이오에서는, 항상 누군가가 해야만 하는 숙제 같은 신세였던 그 곳에서는 먹는 일이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내가 잠깐씩 지냈던 집들은 하나같이 음식에 대해 몹시 까다로웠고…,중략…, 어쨌든 나는 어느 단추를 눌러야 컵 속에 먹을 것이 떨어질지 몰라 허둥대는 실험실 속 생쥐가 된 심정이었다.’

     

아이에게 큰 상처와 슬픔을 주는 것은 대부분 어른들입니다. 물론 일부러 그런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는 아이들을 위해서 한 행동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어른들의 이기심에서 나온 경우도 많습니다. 저 또한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합리화한 것들이 지나고 보면 제 욕심과 바람에서 시작된 것임을 게 됩니다.

     

작품 속 두 주인공의 삶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삶의 주어진 고통과 역경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극복할 때 진정한 생의 의미를 통찰할 수 있는 혜안을 얻고, 면을 하게 만들 수 있겠지요.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면서 겪는 아픔을 지혜롭게 극복할 때 한층 더 속이 깊어지고 성숙해짐을 깨닫게 됩니다.


외적으로는 작가지만, 소설 속 인물인 제제나 서머가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성숙하고 사려 깊은 아이로 장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 가득하고, 인간을 이해할 줄 아는 훌륭한 멘토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제제가 포르투갈인 뽀르뚜가 아저씨를, 머가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 그리고 친구 클리터스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참! 제제가 외로울 때 말벗이 돼 준 친구 아기 라임오렌지나무 밍기뉴도 있군요.

     

행복은 시샘하는 것들이 많아서인지 너무 짧습니다. 그러나 행복하기만 하다면 인생의 풍파도 없고 그만큼 강하게 내면을 단련하지 못하겠죠. (조커)란 책에서 지혜로운 노엘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인생수련법’을 행하는 것도 ,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우리 속담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삶의 보편적 진리란 어디서나 통하는 것 같습니다.

     

서머는 이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해 주는 메이 아줌마를 잃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습니다. 제제 또한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준 뽀르뚜가 아저씨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자 모진 고통의 시간을 보냅니다. 일상을 함께 했던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는 한 공간 속에 그와 함께  있었던 나의 부재를 뜻하기도 합니다. 부재가 초래하는 결핍과 상실의 아픔은 때론 살아갈 의욕을  빼앗아버립니다.  오브 아저씨나 서머, 제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한 동안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기고 간 사랑이 너무도 충만하고 넘치는 것이기에, 남겨진 사랑이 아직도 넉넉하기에  앞으로 삶을 지탱해줄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이제 만남보다 헤어짐이 더 익숙할 시기가 오니 마치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삶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디 삶뿐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줄 알면서도 막상 그런 일을 당하면 그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이미 부모님을 잃은 아픔이 있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이 작품이 나에게 크고 깊은 울림을 주나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면서도 절제된 슬픔 같은 것이 느껴져 더 애절합니다. 비록 사랑하는 분들은 곁에 없지만 그들의 영혼은 늘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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