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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Aug 16. 2018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

김경욱의 단편집 「위험한 독서」는 제목부터 독자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보통의 상식을 뒤엎는 모순어법을 통해 책을 읽기도 전에 왜? 독서가 위험한지 궁금증을 유발하고, 제목이 함축한 의미를 유추해보도록 한다. 나름 추측해보니 독서가 내면적 성찰의 도구로 쓰일 땐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가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될 때는 평온한 마음을 가차 없이 흔들 수 있기에.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다층적이어서  그 의미를 단순함 속에 가둘 수 없지만, 이 책을 읽고 작품 속에서 말하는 ‘위험한 독서’의 의미를 이렇게 이해했다. 상담자와 피상담자의 관계를 독자와 책의 관계로 환치시키면서 독자가 책을 탐독하듯 상담자인 ‘나’가 피상담자인 ‘그녀’를 탐색하게 되고, 독자가 책에 빠지듯 ‘나’는 그녀에게 매료돼 결국 그녀에게 집착하고 중독되는 위험한 독서를 해버렸다고.

     

대체적으로 신체의 병은 이상부위를 알 수 있기에 진단과 치료가 쉽다. 하지만 마음의 병은 보이지 않고 가늠하기도 어려워 그만큼 치료받기 힘들다. 만약 누군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면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할까? 사회적으로 정신과 병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아직 존재하기에 사람들은 대체 치료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음악이나 미술, 독서, 반려동물 등 다양한 대상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얻고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자 한다.

 

책 속 주인공 독서치료사 ‘나’는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듯 책으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상처를 치료한다. 피상담자의 심리 상태를 확인하고 그에 적합한 책을 추천한다. 모든 약효가 플라시보 효과라면 책은 심리적 효과 면에서 뛰어나다. 게다가 아무리 많이 섭취해도 부작용도 없고 중독이 돼도 좋은 그야말로 탁월한 치료약이다. ‘나’의 책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은 무척 강하다.

     

‘나’는 피상담자가 어떤 책을 읽는지를 알면 의 내면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서를 지도하는 입장에서 볼 때 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  읽는 책을 보면 그 학생의 취향과 성격, 더 나가서 가치관 내지는 세계관 정도를 알 수 있고, 책 읽는 행위를 통해 그 마음의 상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연인에게 배신당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피상담자 그녀가 상담자 ‘나’를 찾아온다. 처음 독서치료에 반신반의하는 그녀에게 ‘나’는 확신을 주기 위해 ‘고대 그리스 테베의 도서관 입구에는 ‘영혼을 치유하는 곳’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고 말한다. ‘나’는  자신이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자존감 회복을 위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권한다.

     

처음 여자는 ‘나’에게 요령부득의 읽어내기 힘든 책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외지고 남루한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된 책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책을 탐독하듯 그녀의 내면을 탐색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다. 점점 그녀를 알아갈수록 그녀가 ‘당신’이 되고 ‘나’는 ‘당신’에게 중독된다. 결국 '나' 와 그녀는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그후 그녀는 자취를 감춘다. '나' 는 나타나지 않는 그녀의 흔적을 찾다 그녀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끊임 없이 그녀의 근황을 확인하며 그녀에게 집착한다.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는 독서치료사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설정해, 책 읽기를 통한 내면탐색, 욕망의 발견, 아픔이 치유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또한 작가는 세련된 문체와 비유적 표현으로 상담자와 피상담자의 관계를 독자와 책의 관계로 환치시키며 소통의 문제를 심도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책을 안 읽는 인간과 책을 못 읽는 인간.(p.12)’

독서와 관련된 일을 하는 나로서는 무척 공감되는 문장이다. 정보의 홍수라 할 만큼 많은 분야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양도 어마어마해서 책을 선정해서 읽는 문제는 무척 어렵고 중요해졌다. 수업에 필요한 책이나 전문도서와 같이 목적을 두고 도서를 구입하는 것 외에 막연히 교양과 지식 습득을 위해 책을 읽으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 ‘나’는 책을 읽고는 싶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 어떤 책을 읽을지 몰라 갈등하는 사람, 책을 읽어도 마음의 허기를 채울 수 없는 사람은 자신에게 오라고 한다.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 당신의 독서목록은 그 자체로 당신의 자서전이고 영혼의 연대기이다.…중략…, 독서를 통해 발견해야 하는 것은 교묘하게 감춰진 저자의 개인사나 메시지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니까.(P.16)


작가는 책 읽는 행위의 본질적 의미는 정보나 지식습득 같은 외적인 것이 아닌 자신의 내면과 조우하는 길이라 말한다. 책은 내면의 거울이 돼 자신을 적나라하게 비춰주는데, 그럴 때 그것을 부정하거나 도피해서는 안 된다. 힘들어도 아픔과 고통의 실체를 직시함으로써 스스로 상처를 치유해나갈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내용은 독서법에 관한 언급이었다. 기존의 교과서적인 독서법에서 벗어나 내면적이고 근본적인 독서법을 비유적 표현과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현명한 독자가 되려면 독서를 통해 교훈을 찾지 말고 공감을 하라. 저자의  삶이나 의도 같은 외적인 요소에 구애되지 말고, 책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  결국 독서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진정한 자아를 찾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니, 책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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